학술·비평
2018년 12월 8일

우리는 언제쯤 마음 놓고 춤출 수 있을까?
<자, 이제 댄스타임> (조세영, 2013)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은 한국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임신중절수술(이하 ‘낙태’)을 받은 여성들의 사연을 다루었다. 작품은 실제 낙태를 경험한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연을 극영화처럼 재현한 푸티지들을 중간중간 삽입하며 진행된다. 첫 시퀀스, 젊은 시절 낙태를 했던 할머니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만, 생생한 과거의 기억은 그 과거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 중 아무도 당신의 남편을 탓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파트너의 정자가 수정되어 발생한 사건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고 수정된 세포를 지우는 것 또한 자신의 책임이어야만 한다. 5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할머니들의 경험과 지금 젊은 여성들의 경험은 많이 달라졌을까?

 

 젊은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선 순간, 그들의 모습은 블러 처리되어있다. 작품은 그러한 얼굴 가리기를 통해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낙태 경험을 고백하는 것은 당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음 시퀀스, 길거리를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를 고백하는 한 여성의 보이스 오버가 들려온다. 남편 친구의 아내가 과거에 낙태 경험을 고백했으며, 남편은 “걔(친구)도 참 힘들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들에게 아내가 낙태를 결정했을 때의 엄청난 심적 고통과 물리적 후유증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자신의 아내가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성녀가 아니라 창녀였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나는 절대로 고백하지 말아야지.”라는 보이스 오버가 들려온다. 작품을 보는 (여성) 관객들은 그 발언에 공감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짊어진 채 낙태를 결함이라고 취급하는 사회에 맞설 준비가 된 사람은 소수이니 말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블러 처리되었던 여성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 그들의 용기와 결심에 존경하게 된다.

 

 카메라 앞에 선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알게된 후 겪은 심리적·정신적 혼란과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던 파트너에 관해 얘기한다. 증언으로만 그들의 아픔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했는지, 당시 상황을 배우가 재현한 쇼트가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한 쇼트들은 어딘가 과장되어 있다. 주말드라마에서 볼 법한 설정이 그러하고, 작품 후반부의 낙태 시술소 장면과 달팽이 분장을 한 사람과 춤을 추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한 과장은 관음증적 응시를 방해한다. 여성 배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관음증적 태도를 불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재현이 재현임을 보여주는 장면을 삽입한다. 배우의 연기가 연기였음을 아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그것이 재현된 장면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인식은 자신의 얼굴을 용기 있게 드러내고 낙태 경험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추한 시선도 보내지 말 것을 상기한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작품은 윤리적 문제를 피하면서 여성들의 증언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재현 장면에서 지속해서 등장하는 달팽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달팽이는 자웅동체라 파트너와 섹스를 할 필요가 없다. 달팽이가 섹스하는 즐거움을 몰라 불쌍하다고 농담하는 쪽은 남성이다. 그에게 섹스는 쾌락의 일부분이다. 여성들에게도 섹스는 쾌락이지만, 섹스로 인한 결과를 항상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통이기도 하다.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자책, 낙태를 결정할 때의 죄책감과 수치스러움은 (아직) 여성의 몫이다. 2009년에 시작된 낙태법 논란으로 이어진 2012년의 낙태법 위헌결정을 둘러싼 법원의 공판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러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이라는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인 여성의 입장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법조인의 말은 사람들을 코웃음 치게 한다. 하지만 낙태법이 합헌이라는 결과는 코웃음을 분노로 바뀌게 한다. 사람이 만든 법은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바꿀 수 없다는 말은,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이 사회에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없다는 말일까.

 

 낙태법 합헌결정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법 폐지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은 현행법이 여성에게만 낙태 독박 책임을 묻기 쉽게 제정되어 있다며 ‘낙태죄 폐지’와 현재 119개국에서 합법으로 인정하는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을 합법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답변으로 현행법의 문제점과 사회에 팽배한 인습을 해결하는 방안 등을 내용으로 한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 업로드를 통해 청와대가 여성 인권 향상에 관심이 있다는 모습이 드러났지만, 영상에는 또 다른 임신 당사자인 남성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아직도 여성에게만 낙태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함이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증언과 발언, 그로 인해 서서히 변해갈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더 나은 여성들의 삶을 위한 것이기에, 언젠가 희망의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익명기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