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8년 11월 30일

예술가를 꿈꾸며
전통원 음악과 한지수

우리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출발점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가고 있기도 하다. 이 길에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학기 우리신문은 어떤 식으로든 예술가를 꿈꾸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학생들을 만나보려 한다. 길 위에 선 이들의 인터뷰가 학우들에게 걸음에도 힘이 되길 소망하면서.

 

생황(笙簧)은 한국의 전통 관악기로, 중국의 악기인 셩(笙)이 삼국시대에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된 악기이다. 전통원 음악과 한지수 씨는 생황으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연주자 중 한명이다. 그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정세미

생황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인다. 이유가 무엇인가?

생황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대다수의 피리 전공생들 그렇듯이) 부전공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피리를 14살부터 10년간 하다 보니 새로운 악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렇게 생황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애정 있게 연습하다보니 “생황의 구조가 나랑 찰떡이다”는 느낌도 받았다.

 

베이징에 교환학생을 다녀오셨는데, 생황이 계기가 되었나?

그렇다. 처음부터 교환학생을 간 건 아니었다. 생황을 처음 체계적으로 배운 건 2학년을 마친 후였다. 악기도 없이 무작정 베이징을 가서 생황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한국에는 생황 전공이 없지만 (숙명여대 대학원에 최근에 신설되었다) 중국은 시스템이 잘 갖춰 있는 것 같았다. (3-4살 때부터 생황을 배운다고 하더라) 전문적인 걸 배워보고 싶었다.

그 후 3학년 2학기 때 휴학을 했다. 휴학 기간 때 ‘청춘가악’이라는 공연에서 생황 협연 무대를 처음 섰고, 생황이 점점 나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이듬해 중국에 또 갔다. 그때 간 곳이 상하이였다. 자비로 어학원을 다니며 상하이 음악원 교수님을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뭔가 되게 바보 같을 수도 있는데, 배우고 싶은 게 있는 곳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래서 돈을 내며 배우다 주변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천해줘 그 이후에 베이징에 있는 중국음악학원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그렇게 가게 된 중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었나

중국과 한국이 추구하는 음악이 다르다. 중국은 테크닉을 중요하게 본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생황 자체의 연구가 많이 되어있었다. 다양하고 많은 곡이 있었고, 연주자들의 기술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생황에 대한 접근이 확실히 달랐다. 우리는 생황을 피리 전공의 부전공으로 다루다 보니까 체계적이지 않은데 중국은 전공이다 보니까 차이점이 있었던 것 같다.

악기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 좋은 생황을 만드는 곳이 없어서 전부 중국에서 수입한다. 그래서 악기는 같지만 양국이 악기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중국은 클래식처럼 정제된 소리를 추구하는 반면에 한국은 거칠더라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추구한다. 우리나라 연주자들은 같은 악기여도 어떻게 더 한국적으로 연주할까 고민하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 관리하는 생황과 한국에서 관리하는 생황도 차이점이 생기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성향 차이가 두드러졌다. 중국 학생들은 선생님과 매우 편하게 인사하고,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공부해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토론 수업을 수강한 적 있는데, 친구처럼 자유롭게 수업했다. 그런 점이 한국과 다르다고 느꼈다. 악기 전공자들의 태도도 달랐다. 우리나라는 잘해도 내세우지 않는 게 미덕인데, 중국 학생들은 자존감이 진짜 높더라. 잘한다고 칭찬하면 “나도 알아”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하기도 했다.

ⓒ정세미

중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중국에서 공연 기회가 많았다. 인상 깊었던 공연이 두 번 있다. 그중 한 번은 베이징대학에서 국제문화제라는 큰 축제에서 태평소로 판굿을 불게 되었다. 그 공연 때 중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들은 태평소 같은 악기를 처음 봤던 거다. 물론 중국에도 ‘소나’라는 나팔형 악기가 있지만 태평소처럼 칼칼하고 호령한 음색이 아니다. 그날 공연이 끝나고 전부 나에게 와서 우리나라 가락과 악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며 메신저 주소를 물어봤다. 한국에서 피리를 10년 동안 불고 질려서 중국에 가서 평소에 늘 하던 걸 연주했을 뿐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 신기했다. 내 전공이 한국에서는 흔하다고 느껴졌는데, 해외 시장에 나오니 그 독특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피리로 한 공연 때도 똑같이 느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황을 해도 피리랑 태평소를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지구 X 김문고 (Onearth X Moongo)를 결성했다고 들었다. 유튜브에 티저와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한지구 X 김문고 팀은 자칭 국악 인디밴드이다. 인디라는 게 요즘은 좀 의미가 흐릿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음악도 영상도 자체에서 다 해결하는 거로 생각했다. 팀의 색깔도 인디하면 생각나는 어쿠스틱 함이 강하다고 생각해서 추상적으로 붙였다. 둘 다 연주하고 가사 쓰고 곡 쓰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문고(김주현, 전통원 음악과 거문고 전공) 씨는 이 학교 들어오기 전에 베이스를 전공하려고 한 경력이 있어서. 기타, 거문고 그리고 작곡 모두 잘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서로 다른 학번인데 김문고 씨가 군대 다녀와서 같이 수업을 듣게 됐다. 그전까진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연습실에서 김문고 씨가 매번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타를 치는 것과 내가 sns에서 공연한 내용을 공유한 것을 보고 서로 ‘저 사람이랑 음악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카톡 할 때 우연히 “같이 음악 하고 싶다”는 얘기가 오고 갔고, 마음이 잘 맞아서 그날 밤새 서로 자신이 했던 음악을 보내주면서 결성이 됐다.

원래는 한지수, 김주현이 본명이라 팀명도 그렇게 지으려고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흔한 이름이라고 만류했다. 오타로부터 지어진 내 별명이 ‘지구’라서 한지구, 거문고 전공 김주현 씨는 김문고라고 지었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어디서 활동에 영감을 얻는가.

요즘 관심사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심리상태, 두 번째는 예술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심리상태는 내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완전 유리멘탈이어서 심리가 늘 불안정하다. 그래서 나를 더 잘 알려고 심리 관련 책을 많이 읽고 늘 체크하다보니 그런 걸 가사로 쓰고 싶었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가사나 글 쓸 때 나의 심리상태를 돌아보면서 쓸 때가 많고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예술철학은 이번학기에 듣게 된 예술과 인간이라는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고 신청했는데 무지한 세계가 펼쳐지더라. 나는 내가 뭔가 못하거나 모르는 거에 대해 너무 창피하고 그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생겼다. 아 이걸 알아야겠다.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업시간마다 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대화를 통해 받는 영감이 되게 많다. 그래서 이번 실기실습 팀플을 준비하면서, 수업 때 들은 의견과 텍스트에 받은 영감을 가져다 녹이고 있다.

 

이번 졸업 연주에도 그런 영감들이  반영되었나

졸업 연주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배워온 것에 어떻게 새로운 옷을 입힐까라는 생각을 계속한다. 그런 고민을 해서 팀원인 김문고에게 편곡을 맡겨 대취타에 전자음악 반주를 입힌 곡이 하나 있고,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제 3세계의 음악, 몽골 음악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친언니인 한지윤 작곡가에게 위촉한 곡이 하나 있다. 그 곡에서는 마두금과 함께 연주한다. 나머지 한 곡은 전통 경서도 민요를 연주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원래는 대학원을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입시 일정이 안 맞더라. 그래서 일단 여유를 갖고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자유인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지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곳으로 신중하게 가려고 한다. 개인 활동을 좀 많이 하는 것이 계획이다. 생황 앨범을 내고 싶고 독주회도 하고 싶다. 다양한 장르와 협업도 해보고 싶다.

아, 또 해보고 싶은 게 있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위축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타인과 잘 지내는 방법을 잘 모르겠고, 무대에 서는 건 되게 편한데 현실 속에서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어색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연극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마추어 연극단이라도 들어가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비우고 자유로워지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아닌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김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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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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