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11월 29일

그렇게 다시, 연극은 삶을 말한다.

<살아보고 결정해(live and let die)>: 극장 밖에서 펼쳐진 11일간의 연극릴레이

 

이번 달 1일부터 11일까지 연희동 ‘플랫폼 팜파(platform pampa)’(이하 ‘팜파’)에서는 <살아보고 결정해(live and let die)>라는 이름으로 연극릴레이가 펼쳐졌다. 팜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39에 위치한 주택으로서 이번 연극릴레이의 기획 심이다은(무용원 예술경영전공 15)이 실제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연극릴레이에서 △윤채미(연극원 연극학과 15) △표햇님(연극원 연극학과 16) 두 명의 드라마터그와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 △세카이와 우쯔꾸시이 △먹어보고 결정해 △기억하는 태도 4개 공연팀은 극장 밖에서의 작업들을 통해 연극과 삶에 대해 고민한다.

ⓒpampa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은 본래 사람들이 직접 만나 자신에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공연을 보는 장소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프로시니엄 무대[1]가 양식화되면서 연극은 점점 더 사실적인 장면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극적 환상이 중요시되었고 무대 위에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약화된다. 극장은 말하는 곳이 아니라 보여주는 곳이 되었고 관객들은 눈앞에 일어난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사실적인 무대를 잘 살펴보는 데 치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되면 이제 보는 것, 19세기 사실주의에서 말하는 치밀한 관찰과 분석은 더이상 확고한 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성 이면의 정서와 감정, 결코 정돈되지 않는 복잡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감정을 정치적으로 다루었던 시기는 없다. 더이상 우리의 감정은 무한정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으로 부상하고 예술가는 낭만주의적인 ‘천재’ 이미지를 점점 벗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어느 머나먼 서구의 가장 전위적인 예술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 한국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에 의해 일어난다.

 

<살아보고 결정해>의 참가자들은 이제 막 연극을 배워가는 학생들로서 그 변화에 함께한다. 우리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이 연극릴레이의 참가자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과감하게 벗어났다. 이들은 연극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공간에서 뛰쳐나와 작업을 하고 그것을 연극릴레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연극은 공연 프로그램북의 “어디쯤 살고 계신 것 같나요.”, “요즘 사는게 어떠세요?”라는 두 질문처럼 다시 삶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팜파. 집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팜파는 극장 밖에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새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극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의 거주자들은 공연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공연장소를 제외한 집 안에서 생활하거나 잠시 외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팜파를 찾아가는 과정은 조심스럽다. 집 자체도 연희동 골목길을 따라 주택가 깊숙한 곳으로 한참 걸어가야 나온다.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 그리고 다시 삼거리 ‘연희동 사진관’의 왼쪽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오다 보면 가게 하나 없는 완전한 주택가가 보이는 식이다. 이에 자연히 누군가의 집을 직접 발로 걸어 방문하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팜파에서의 공연은 곧 집에 대한 작업이 된다. <살아보고 결정해>의 4개 팀은 우선 이 공간의 특성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에서 김나은 작가(연극원 무대미술과 16)는 집의 1층과 2층 사이 계단을 얇은 커튼으로 가려 대기 공간과 공연 공간을 구분한다. 관객은 이 공연에서 혼자 2층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공간 안에서 20분간 자유롭게 행동하다 다시 내려와 20분간 작가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한다. <세카이와 우쯔꾸시이>에서는 관객이 집의 거실, 작업실, 창고 순으로 이동하며 출몰극장[2]의 연극을 관람한다. <먹어보고 결정해>에서는 관객이 퍼포머 임재혁(연극원 연기과 16)과 함께 차고에서 음식 재료 맞추기 게임을 하고 1층 주방으로 올라가 함께 요리를 한 다음 각자에게 주어진 집의 개인 공간으로 이동해 마지막 식사를 한다. <기억하는 태도>에서는 관객이 팜파의 차고 공간에서 출발해 △부엌 △거실 △1층과 2층 사이 계단 △2층 화장실과 같은 집안 장소를 돌아다니며 연극을 관람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살아보고 결정해>에서 관객은 팜파라는 공연장에 찾아옴과 동시에 심이다은의 집에 방문한다. 여기서 관객의 정체성은 타인의 집을 방문하는 손님과 극장의 관객 사이에 놓인다. 팜파에서 관객은 말 그대로 집에 잠시 방문하여 그 곳에 잠시 살다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팜파는 △기획자 심이다은이 사는 곳 △관객이 잠시 살다 가는 곳 △연극의 상연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곳으로서 ‘live and let die’의 ‘live’가 발생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에서 관객이 혼자 남겨지는 팜파 2층. ⓒpampa

 

연극, 다시 관객과 만나다.

하지만 <살아보고 결정해>의 연극들은 이 지점에서 불확실성을 가진다. 공간의 특성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팜파가 집으로서 가지는 속성은 곧 연극적 약속과 공연장에 대한 관객들의 전제를 일부 허물게 된다. <살아보고 결정해>에서 창작자의 대부분은 연극의 상연자로 등장한다. 물론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처럼 아예 배우가 등장하지 않고 관객 혼자 남겨지는 연극도 있다. 그들과 관객 사이에는 특별한 객석 공간 구분이 없다. 창작자와 관객은 같은 공간 안에 던져질 뿐이다. 공연 도중 관객이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다거나 창작자가 관객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될 경우 연극은 기존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살아보고 결정해>는 이런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한다. 각 공연팀은 눈앞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아보고 결정해>는 티켓과 예약 관객 명단 뒤에 이름만으로 존재했던 관객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직접 마주한다. 그 순간 각각의 관객은 더이상 관객들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확실한 개인이 된다.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은 특별하게 구성된 집의 2층 공간에 관객을 20분 동안 방치한다. 관객은 그 안에서 직접 자신의 몸을 움직여 이런저런 행동들을 해볼 수 있다. <세카이와 우쯔쿠시이>는 4편의 짧은 연극들을 집 안 곳곳에서 차례대로 선보이며 관객이 자신이 보고 싶은 위치에서 연극을 보게 한다. <먹어보고 결정해>는 관객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고, 그들이 식사를 하게 한다. <기억하는 태도>는 관객들이 집의 곳곳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움직이는 퍼포머들을 살펴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살아보고 결정해>는 극장 밖으로 뛰쳐나옴으로써 다시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살아보고 결정해>의 연극들은 관객에게 단차가 있는 무대 위의 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당장 관객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작자의 움직임을 감각하게 해준다. 이때 모든 경험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감각된 사건이 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But if this ever changing world in which we’re living / makes you give in and cry / say ‘live and let die’”[3]의 맥락에서 나를 둘러싼 “요즘”과 “이곳”의 세계에 대해 손 끝에서 느껴지는 구체적인 촉각이 된다. 결국 <살아보고 결정해>는 몸의 경험을 통해 각자가 사는 것의 문제에 대해 말하게 해준다.

 

<먹어보고 결정해>에서 퍼포머가 관객과 함께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pampa

 

결국 삶의 이야기로

<살아보고 결정해>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들은 연극이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 갇혀 보지 못한 가능성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관객을 혼자 내버려두는 것, 그저 노래를 듣는 것,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이곳저곳에서 움직이고 말하는 배우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연극이 될 수 있는가? 희곡이나 배우, 혹은 그 둘 모두가 없는 공연도 연극이 될 수 있는가? 그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 연극이 어떤 것이냐는 커다란 물음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은 영원한 미제로 남음으로써 해결된다. 오늘날 연극을 엄밀히 정의할만한 특성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연극의 3요소 희곡·배우·관객마저도 흔들리는 것이 이 시대다. 지금 여기에 확실히 연극인 공연이 있을 뿐 연극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무언가를 연극으로 규정하기 위한 보편적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연이 연극이 되는 개별적 요소가 중요하다. <살아보고 결정해>는 그렇게 연극으로서 자신이 안고 있던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놓고 떠난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플랫폼 팜파 공연 및 대관 문의: platformpampa@naver.com

 

서동완 객원기자

연극원 L410에서 살아가는 중

official05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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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극장의 형태. 모든 객석이 정면의 무대를 바라보고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뚜렷하다.

[2] 박혜지(연극원 무대미술과 졸업), 서공희(연극원 무대미술과 졸업), 이수연(연극원 무대미술과 졸업)

[3] Paul McCartney – ‘Live and Let Die’. 세상이 자신을 굴복시키고 울게 만든다면 남들은 죽건 말건 내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살라는 의미. 여기서 ‘live and let die’는 영어 관용구 ‘live and let live’의 의미를 비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