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술·비평
2018년 11월 12일

대학국악축제는 안녕하신가요?

바람의 향기가 달라지는 계절, 매년 국립국악원에서는 10개 대학의 대학국악축제가 열린다. 학교마다 고유한 색을 뽐내기 위해서 각각의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매년 열리는 같은 프로그램으로 의무적으로 연주하는 재롱잔치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5개의 대학의 공연을 관람하고 그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색해야 하는 길은 어디인지 고민해보았다. (날짜순으로 기재)

 

소문난 잔칫집 한양대

가장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집하는 한양대는 이번 년에 마침내 전화위복해야만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진부한 공연은 끝내야만 한다. 예년과 똑같은 프로그램 구성으로 어느 공연보다 관객이 적었으며, 대중적이고 쉬운 관현악곡들만 선택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허점이 돋보였다. 관현악단과 협연자는 적절한 콘체르토를 사용하지 못해, 협연자는 빛이 나지 못했고 지휘자는 섬세하지 못한 모습으로 순간의 디테일을 놓쳤다.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준 무대 연출은 얼굴을 찌푸리게 하였다. 대학국악축제의 관람객이 대부분이 국악을 아는 관객인 만큼 실망도 큰 공연이었다. ‘조금 더 잘하는 예술계 고등학교’라는 오명이 붙지 않으려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만 할 것이다. 이 길을 그대로 걸어간다면, 파리만 난리는 시장터가 곧 머지않았다.

 

몸살 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양음악 지휘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관현악만을 공연에 올려 대학국악축제에 새로운 지평을 올리던 한예종이었다. 올해는 어딘가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시작부터 산만하게 하나의 소리로 모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태평소 주자를 3명으로 구성하여 공연 전체를 공통되는 하나로 소리로 통일하지 못하고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태평소 주자의 어찌할 줄 모르는 태도는 관현악을 산란하게 했으며, 매 순간 편안하게 곡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다 된 밥에 태평소 뿌리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산조 아쟁 협연 곡 ‘와운’에서는 파트끼리 2마디가 차이 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타악은 엇박자로 치고 있으며 협연자와 관현악단은 서로 다른 부분을 연주하며 관객들은 제발 무사히 이 곡이 끝날 수 있기를 손 모아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도 지휘자의 허둥지둥하는 태도는 공연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갔다. 다시는 이런 공연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화할 수 있는 곡을 선택해야 하며 개인의 실력은 물론 출중하지만, 관현악은 하나의 소리로 모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수받아 마땅한 서울대학교

한예종과 산조 아쟁 협연 곡이 겹치며 경쟁 구도를 예상한 두 학교는 한예종의 패배로 대결을 시작하게 되었다. 적절한 날짜선택이었다. ‘와운’을 마지막 곡으로 배치한 선택과 협연자의 탁월한 연주 실력으로 소름 끼치는 무대가 완성되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는 관현악단은 완벽한 콘체르토로 협연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선사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눈에 띄었다. 열정 넘치는 지휘자는 흥을 넘치지 못해 관현악단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했으며 무대전환 과정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관현악 사이에 실내악을 배치한 구도, 학부생의 곡을 시도해본 방법은 대학국악축제가 시대에 맞춰 나아간 산물일 것이다.

 

최고보다 최선을 다한 서울예술대학교

아마 다른 대학국악축제를 보고 온 관객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판굿과 스트링 앙상블을 구성하며 여느 다른 대학교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그들만의 맞춤옷을 입은 것이다. 비파와 바이올린, 드럼을 한 무대에서 만나며 실제로 학교의 수업 방식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조금 부족한 악기 실력은 새로운 무대로 선사했다. 전공 악기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부전공 악기로 공연을 하게 되어 빈 공간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지만, 그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연주자들과 학교 모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대중성을 잡으려다 연주를 놓친 추계예술대학교

KBS 상임 지휘자인 이준호 지휘자를 앞세워 1세대 국악 관현악을 중심으로 6개의 협연 곡을 구성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곡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 특유의 유치한 분위기로 중학교 공연발표회 느낌을 주었다. 협연자는 관현악단과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의심하게 했고, 목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판소리 협연자 3명은 찢어지는 목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그와 반대로 경험이 풍부한 노년의 지휘자는 침착하게 관현악단을 편안하게 이끌어갔다. 하지만 그의 곡을 6곡 중에서 2곡이나 편성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이 공연은 대중성을 요구하는 KBS 신년음악회가 아니다.

 

여느 평론에서 말하는 대중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연의 목적에 맞게 대학생들이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앞으로 공연을 이끌어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공연인 만큼 어느 정도 위험성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며, 새롭게 창조해야만 한다. 그들만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아가야 한다. 대학국악축제를 봐야 하는 이유는 현재의 최전선에 있는 대학 국악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의 색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학교들의 모습도 바라볼 수 있다.

 

한 명 한 명의 관객들이 모여 날카로운 귀가 되어주고 그러한 귀가 모여 더 나은 축제의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공연을 보고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대학국악축제는 과연 안녕하신가요?

 

정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