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10월 29일

길들여진 파괴의 꿈 속에서

뱅크시의 파쇄와 샘 듀란트의 <처형대> 철거를 겹쳐 보며

 

ⒸThe New York Times

 

지난 10월 6일 런던 소더비 미술관에서 경매 중이었던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낙찰과 함께 파쇄기에 갈려 나갔다. 이 모든 해프닝은 뱅크시 본인이 계획한 퍼포먼스였다. 그는 다음 날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액자 속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업로드하며,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명언을 인용해 넣었다. 구매자는 작품의 훼손에도 굴하지 않고 구매 의사를 밝혔으며, 작품의 가치는 경매장에서 책정된 104만 파운드(한화로 약 15억 4천만원)보다 치솟을 전망이다. 소더비 미술관 책임자 알렉스 브랑식은 이 모든 사태에 충격을 받고 “우리는 뱅크시당했다(Banksy-ed)”고 표현했다.   

 

뱅크시는 20년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원불명 그래피티 예술가로, 소더비 이전에도 수차례 공공장소에서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잠입해 쇼핑카트를 밀고 있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놓고 사라지거나,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자신의 캔버스 작품들을 노점상에게 위탁해 저가에 팔아 치우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 선보인 파쇄 퍼포먼스도 전세계의 이목을 잡아 끄는데에 성공했으나, 기획 단계에 있어 회의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경매장 앞줄에 앉아 있었던 예술 투자 고문관인 모건 롱은 “알람이 꺼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이는 소더비 측에서 리모트 컨트롤로 파쇄기 작동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구매자의 신원 누출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는 점도 덩달아 의구심을 키웠고, 이에 대해 소더비 측은 “이런 상황을 전에 겪어보지 않았”으며 “계략은 없었다”고 전했다.

 

ⒸThe New York Times

 

공공미술은 지속적인 설치에서 일회적인 프로젝트로 무게를 두기 시작했고, 설치된 오브제가 촉발시키는 사회 문화적 담론의 충격과 풍성함이 작품의 가치를 좌우했다. 아방가르드의 계보 속에서 공공미술은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지만, 그 명칭에서부터 성립 불가능한 모순을 품고 있었다. 예술은 공공 현상이 되는 순간 “예술가의 자기 부정과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에 대한 경의를 포함해야”1)하며,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확인시켜주는 ‘제한된’ 역할에 공공미술의 ‘무한한’ 기능을 맡겨버리는 결과”2)로 내몰리기 쉽다. 국가, 기업, 갤러리 등 공공미술을 지원하는 제도와 단체는 작품이 제아무리 반제도적 공격을 품고 있다한들 미리 예견하며 협조하고 있기 마련이다. 서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이면은 필연적인 공모 관계로 묶여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떤 의도를 품고 있든지, 그것이 공공 현상으로 넘어가면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다. 작가의 비판의식은 공공미술이라는 단계에 발을 딛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작년 6월, 미국 미네소타 주의 도시 공원에 설치되었던 샘 듀란트의 <처형대>라는 조형물이 다코타 주민들의 공분을 사 나흘 만에 철거되었다. 작품의 윤리성 논란으로 다코타 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샘 듀란트와 워커 아트 센터는 다코타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하며 <처형대>의 저작권을 양도했다. 철거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떻게 철거하느냐가 2차 논쟁거리였다. <처형대>의 운명은 화장에서 매장으로 낙점되었고, 원주민 위원회 대표자 리스는 “불이 붙으면 그것은 신성하다”며 화장에서 매장으로 전환한 이유를 밝혔다. 샘 듀란트는 철거 이전에 진술서를 발표해 자신이 원래 의도했던 바와 의도의 좌절 그리고 깨달음을 적어 넣었다. “제 작업은 백인들에게 불편을 조성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지만, 당신들의 항의가 이제 제게 불편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3)

 

뱅크시의 경매작 파쇄와 샘 듀란트의 저작권 양도-철거는 말 그대로 자기-파괴(Self-Destruct)였다. 전자는 작가의 의도대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후자는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처형대>는 실패한 것인가. 공공미술의 성립 가능성을 확인사살하는 사건에 불과한가. 공공미술의 모순과 한계를 뚫고 나오는 새로운 대안의 실마리를 보여주지는 않았는가. <처형대>의 파괴는 누가 의도한 것인가. 항의한 다코타 주민들? 주민들의 공분을 예상했을지 모를 워커 아트 센터? 이 모든 논란을 계산에 두고 조형물 설치를 감행했을지 모르는 샘 듀란트?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거나, 모두의 의도가 뒤섞여 또 하나의 새로운 의도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뱅크시의 파괴는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았지만, <처형대>의 파괴 과정은 작가와 갤러리뿐만 아니라 다코타 시민들을 포함한 대중 전체를 “불편한 공간”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점이다.

 

임근홍 객원기자

 

1) 「What Is Public Art?: Time, Place, and Meaning,Hilde Hein, Wiley, 1996

2)  미술, 공간, 도시 – 공공미술과 도시의 미래, 맬컴 마일스, 학고재, 2000

3) 「A Statement from Sam Durant」, sam durant, Walker new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