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10월 15일

비평가, 예술가, 시인의 몸

아네트 미켈슨, 헬레나 알메이다, 허수경의 부고를 전하며

 

지난 9 ⠂10월 △미술 ⠂영화 평론가 아네트 미켈슨 △퍼포먼스 ⠂사진 ⠂회화 작가 헬레나 알메이다 △허수경 시인이 타계했다. 그들은 각각 비평가와 예술가 그리고 시인의 몸을 거쳐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매체와 마주했다. 늘리거나, 부수거나, 견디면서.

 

09.17. Toward Snow

미술 ⠂영화 평론가 아네트 미켈슨(Annette Michelson)은 뉴욕대학 인문과학대학원에서 몇 년간 영화를 가르쳤고 잡지 <아트포럼>(‘Artforum’)에서 비평가이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모더니스트 비평보다는 대중성과 접근성을 중시하기 시작한 1971년 이후의 <아트포럼>에 “완전한 역겨움(total disgust)”을 느낀 미켈슨은 1976년 미술 평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잡지 <옥토버>(October)를 공동창간한다.

『Annette Michelson, ca. 1966』, 2014.M.26, ⒸPETER HUJAR/THE GETTY RESEARCH INSTITUTE/THE PETER HUJAR ARCHIVE, LLC

우리학교 석관캠퍼스 도서관에는 <옥토버>와 그의 저서 세 권이 비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On the Eve of the Future – Selected Writings on Film」을 펼쳐보자. 아방가르드 미술가 조셉 코넬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쓴 글이 눈에 띄는데, 당시 미켈슨이 회상한 코넬에게서 미켈슨 자신을 겹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목은 아래와 같다.

 

그에게 귀중한 기억은 두 가지이다.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던 옛 영화 잡지의 노란색 표지. 그리고 <제니의 초상>(1948)의 세트장이던 센트럴 파크에서의 “고혹적인” 산책. “폐점 후의 시간이었고, 제니퍼 존스도 거기에 없었지만, 그 세트장은, 그 사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너무도 경이로웠다.”

 

미켈슨은 “코넬의 영화적 작업을 둘러싼 배경은, 우선, 그의 삶과 영화 매체의 생애가 정확히 동연(同然, coextensive)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동시에 코넬을 비롯한 아방가르드 영화 작가들이 영화를 정신적 사건으로, 그리고 육체적 경험으로 간주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미켈슨에게 영화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체화하기 위한 인식론적 잠재력이다. 그렇게 몸에 새겨진 경험과 사건의 인과를 규명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었다.

 

따라서 그는 문학에서(1), 어떤 때는 극장(2)이나 역사 자체(3)에서 ‘영화적인 것’을 반추하며 맞물릴 수 있는 역사의 궤적을 늘어뜨린다. 그러나 “매체로서의 시네마와 시네필리아의 종언에 대한 은유가 떠돌던 세기말”에도 역사와 비평가 사이 동연이 가능했을까. 이에 95년도의 미켈슨은 “하지만 (..) 영화에 주어진 첫 번째 세기가 그 복잡한 역사를 아울렀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확장된 구성 체계와 함께 거뜬히 미래를 견뎌낼 것”이라고 쓰며 영화, 동시에 비평가의 몸으로 현전(現前)하던 자기 자신에게도 확장된 생애를 부여했다.

 

09.25. My Work is My Body, My Body is My Work

헬레나 알메이다(Helena Almeida)는 1934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리스본 대학 미술 학부에서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부터 회화적 평면에 의해 표상되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1969년 이후 “내 작업은 내 몸, 내 몸은 내 작업”이라는 선언과 함께 흑백 사진⠂바디 아트⠂퍼포먼스 아트의 영역으로 침월(侵越)한다.

 

알메이다의 작업에는 평면에 기초한 예술가의 생산물과 평면을 상대하는 예술가의 지각이 동시에 담긴다. 말 그대로 ‘그의 작업이 그의 몸이며 그의 몸이 그의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제시(presentation)와 재현(representation) 간의 길항을 그려보도록 유도한다. 두 단어는 미술⠂사진⠂연극⠂영화 등 분과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여기서는 ‘재현’을 ‘원본의 모사와 그 모사에서 의미를 취하는 과정’으로, ‘제시’를 ‘특정 행위 자체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다소 거칠게 구분했다.

 

사랑하거나 경멸하는 예술가의 초상 사진을 한 번 지긋이 바라보자. 작가가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제시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사진 자체는 작가 자신을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술가의 몸은 이런저런 가치로 파편화된 상태로만 사진에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초상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몸짓이나 표정에는 언제나 의미화 과정, 그의 작업 관을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떠올리는 과정이 뒤따른다. 작업 세계가 파편적으로 가리키는 일련의 가치들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Untitled』, 1967, Helena Almeida, ⒸFundação de Serralves, Porto

따라서 예술가의 몸은 단지 그 파편들을 묶어주는 일련의 재현을 통해서만 사진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신체를] 이따금 확장하거나 가끔은 은폐하는 페인트의 얼룩 뒤에서 예술가의 진정한 물리적 신체는 거듭 상실되고 훼손되거나 모호해진다”라는 알메이다의 또 다른 진술은 이에 대한 동의에 기초한다. 그리하여 알메이다는 이브 클랭(Yves Klein)에게서 차용한 파란색 붓으로 자신의 얼굴, 몸, 시선을 긋는다. 그의 몸은 채색될 것을 전제로 사진에 담기는 몸으로, 훼손될 것을 자청하는 몸이다.

 

10.03. 저 사랑의 찬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수경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리고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으며 ‘미귀(未歸)한 채’(4) 약 25년간 타국에서 한국어로 글을 썼다. 정끝별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허수경의 시를 이런저런 잣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엄격성”과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에 뿌리내린다.

 

하지만 허수경 시의 뿌리를 정 평론가와는 다른 맥락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언어에 대한 엄격성’이란 ‘모국어에 대한 애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허수경의 엄격은 철저한 침묵을 통해 드러난다. 언어로 매개할 수 없는 현실을 대할 때, 언어를 휘두르지 않겠다는 침묵 말이다. 언어를 주된 매체로 쓰는 예술가, 그중에서도 시인은 특정한 상(像)을 제시함으로써 지시되는 현실을 한정 짓거나 재현한다. 하지만 “재현하는 행위와 한정하는 행위는 언제나 재현하는 대상에 대한 폭력을 함축한다”.(5)

 

나아가, ‘나’와 ‘너’ 사이에서 각자의 현실이라는 중간 항은 언제나 훼손되기 마련이다. 허수경 시인의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은 ‘나’와 ‘너’ 사이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훼손을 가로막고 보존하려는 고고학적 의지다. 이 의지는 ‘너’를 지움으로써, 오로지 ‘나’로서 현실과 맞물렸을 때 표명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시 가운데 하나인 <공터의 사랑>을 예로 들면, ‘너’(you)는 꿋꿋이 “그대”(my dear)로 불린다. 나의 친근한 상대편을 이르는 ‘그대’로 불려 ‘너’는 나에게로 환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독이 뒤따른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이 과정을 포기했을 때 벌어지는 일은 이러하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이 가을의 무늬>). 거기에다 “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다녀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눈>)라는 자문에 따르면 그 과정에는 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어요”(<나는 어느 날 죽은 이의 결혼식을 보러 갔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언어의 원죄로 인해 ‘너’를 견딜 수밖에 없는 ‘나’의 몸은 어떻게든 현실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김태원기자

lemonadegogo99@gmail.com

 

(1): 「On the Eve of the Future: The Reasonable Facsimile and the Philosophical tory」, 1984, Annette Michelson, MIT Press

(2): 「Gnosis and Iconoclasm : A Case Study in Cinephilia」, 1998, Annette Michelson, MIT Press

(3): 「The Mummy’s Return: A Kleinian Film Studio」, 1995, Annette Michel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4): <그녀의 시는 오래되었으나 – 허수경의 오래된 편지>, 2001, 이광호, 문학과사회

(5): Le Livre d’image, 2018, Jean Luc Godard, Ecran Noir Produ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