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8년 10월 14일

예술가를 꿈꾸며
미술원 디자인과 오태정

우리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출발점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가고 있기도 하다. 이 길에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학기 우리신문은 어떤 식으로든 예술가를 꿈꾸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학생들을 만나보려 한다. 길 위에 선 이들의 인터뷰가 학우들에게 걸음에도 힘이 되길 소망하면서.

휴학 중인 오태정 씨(미술원 디자인과 13)는 ‘rakTANG’이라는 활동명으로 5년 동안 꾸준히 아트 토이를 제작하고 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중국 각지에서 수많은 전시와 페어에 참여해 왔다.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른’을 테마로 만들어지는 오태정 씨의 피규어들은 세계 각지에서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진정한 키덜트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받고 있다. 색감은 화려하고 질감은 단단하지만, 둥글고 곡선적인 형태를 이뤄 위화감을 줄이고 친근감을 높였다. 분명히 어딘가 이상하지만 귀엽고 예쁘다. 과연 오태정 씨는 아트 토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트 토이를 작업하게 된 계기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장난감을 모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진 인형과 다섯 살 때 얻은 해피밀 장난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인형과 피규어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땐 클레이를 만지고 고등학교 때는 지금과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 피규어를 만들곤 했다. 본격적으로 아트토이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기존의 토이는 다른 콘텐츠가 있고 이를 모형화하는 것 정도밖에 안 된다. 피규어 제작에서 만드는 사람은 주체가 아니고 구현해주는 사람일 뿐인데, 아트 토이는 달랐다. 캐릭터를 만들면 그것이 곧 콘텐츠가 되고 제작자는 주체가 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

 

키덜트 문화의 일환인가
키덜트라 말하는 것들이 진짜 키덜트로서 향유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키덜트는 한국에서 많이 변질 하였다. 키덜트 문화에 매체와 기업이 개입하면서 원래의 의미가 흐려졌다. 키덜트라기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가 많다. 캐릭터를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키덜트라고 하는 것 같다.


‘어른아이’라는 테마에 대해서
내 토이 아트 작업에는 두 가지 테마가 있다. 그중 하나가 ‘adult who cannot become adult forever’, ‘어른아이’이다. 어른인데 철없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이 아이 상태에 멈춰 몸만 어른이 된 사람을 말한다. ‘어른아이’ 테마로 만든 아트 토이들은 성별 분간을 어렵게 만들었고, 몇 살의 나이에 정신이 멈춰 있는지 밝히지 않고 나이가 성년을 넘겼다고만 설정했다. 다른 하나는 ‘Get ready for the next battle’이다. 철권에서 다음 전투로 넘어갈 때 나오는 대사에서 따왔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배틀 미소녀 캐릭터이다. 기존 매체 속에 표현되는 소극적이고 타성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싫었고,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자신을 위해 싸우는 주체적인 미소녀를 만들고 싶었다. 전자의 캐릭터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후자의 캐릭터는 내가 지금의 자신에서 더 발전하고 싶은 모습을 표현할 때 이용한다. 결론적으로 이 두 테마는 나 자신을 어느 정도 투영했고, 편견을 다루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편견을 다루는가
내 토이들은 각자의 이름이 없다. 전시 중에 사람들이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따로 없다고 한다. 이름이 생기면 그것이 캐릭터의 특성으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어른아이’라는 호칭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캐릭터 하나를 단정 짓기가 쉬워진다. 그게 싫었다. 나는 과거에 따돌림을 당했고, 주변에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편견과 통념들을 피부로 느껴 왔다. ‘어른아이’ 캐릭터는 약자라서 받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작업 초기엔 남자를 큐리어스, 여자를 샤이로 설정했다. 성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서 비롯된 네이밍이지만 피규어는 전혀 반대다. 샤이가 농구를 하고, 나가 싸우고, 자세가 외향으로 뻗어 나가는 반면 큐리어스는 인형을 좋아하며, 수줍게 웅크리고 있다. 성별의 구분을 없애고 싶었고, 계속해서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하는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그 너머의 사실을 아트 토이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누구나 벌거벗으면 다를 것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아트 토이 외에 회화 작업도 병행하는가
아트 토이만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재학 중일 때 다른 과 수업을 청강할 만큼 관심 있는 분야가 많았다. 토이도 토이지만 회화도 회화대로 하고 싶었다. 어떻게 볼진 모르지만 그렇게 자신 있진 않다. 일본에서 아트 토이와 함께 전시했던 그림 중에 <완전변태 (complete metamorphosis)>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착안했다. 벌레는 두 번 변신한다.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비가 된다. 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태하듯이, 그레고르 잠자도 벌레에서 죽음으로 두 번 변신한다. 그레고르 잠자가 껍질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순간은 죽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그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그의 시체를 치우러 온 청소부 밖에 없었고, 그를 발견해주는 청소부와 관람객의 위치를 동일시하고 싶었다. 그림 속에 반쯤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타인의 존재를 발견해주는 사람의 빛이고, 그걸 보는 관람객이 그 위치에 서도록 유도하고 싶었다. 문틈의 끝에 서서 그림을 보면 껍질 속에 죽은 캐릭터와 눈을 마주치게끔 설계해 놓았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지에서 활동하던데
한국에선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페어를 한 번 해본 뒤로는 참여나 홍보에 소극적이다. 아트토이 문화가 국내에서 아직까진 향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대만 크리에이티브 엑스포에서 탤런티드 100에 선정된 적이 있는데, 대만은 확실히 달랐다.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해주는 의식이 강했다. 우리나라는 작가의 작품을 사진 촬영한다면, 대만에서는 작가랑 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중국은 유행과 흐름이 빠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구가 13억이니까 전체의 2%만 아트 토이를 향유해도 영향력이 엄청나다.

다수의 팬덤이 확보된 것 같다

그만큼 카피가 많이 생긴다. 리셀러들이 내 작품을 판매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어떤 팬 분이 태그해서 SNS에 업로드한 것을 발견했다. 그분을 행사에서 만났더니 리셀러에게서 원금보다 두 배 뛴 가격으로 구매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리콘으로 떠서 복제하거나, 멋대로 다시 만들어서 구매 예약을 받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정식 회사에서 계약서가 와도 내용을 자세히 뜯어 읽다 보면 허황된 조항들이 많이 발견되곤 한다. 지인 작업도 팬층이 두꺼워지니까 카피가 부단히 늘어났는데, 그해 겨울엔 지인의 캐릭터를 모방한 부스가 세 부스나 있었고, 이름도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한국 아트토이의 전망은 어떠한가
내가 데뷔한 5년 전만 해도 내 나이 또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30대 초중반부터 부모님 연배에 가까운 아트 토이 1세대, 2세대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역시 자본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직장이나 학업을 포기하면서 작업에 전념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 예술가들은. 그런데 근 2년 사이 토이 아트 신에 한국 작가들이 주목을 받으며 대폭 늘었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자급자족 능력이 탁월해서 혼자서 모든 작업을 떠맡는 편이다. 외국 작가들 중엔 직접 조형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한국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조형을 할 수밖에 없고, 디자인뿐만 아니라 활동을 위한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편이다. 대량 공산품이 많은 토이 시장에 보다 핸드메이드의 감성을 지닌 한국 아트토이 작품들이 대거 쏟아지면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초부터 홍콩 공장에서 아트 토이들이 만들어질 예정이라 샘플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 4학년으로 복학해서 졸업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게 조금 있기도 하고, 휴학을 3년이나 해서 더이상 휴학이 불가능하다. 재학 중에 작업이 끊기면 빨리 잊히니까 그 흐름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임근홍 객원기자

semsempu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