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8년 10월 3일

예술가를 꿈꾸며
미술원 조형예술과 황보민

우리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출발점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가고 있기도 하다. 이 길에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학기 우리신문은 어떤 식으로든 예술가를 꿈꾸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학생들을 만나보려 한다. 길 위에 선 이들의 인터뷰가 학우들에게 걸음에도 힘이 되길 소망하면서.

 

정세미 기자

 

조형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황보민 씨(미술원 조형예술과 16)는 도시 속을 걸으며 목적 잃은 사물 즉 쓰레기들을 줍는, 일명 ‘노마드(Nomad)’ 작업을 2년째 이어오고 있다. 한때 그는 우리학교 뒷산 구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버려진 초소를 제1기지로 명명하고 작업의 근거지로 삼았다. 버려진 조명기와 거울 등을 수집해 각각 화분과 팔레트로 사용했는가 하면 기지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여섯 종류의 일지(생활방식, 문화체계, 기록일지, 생각, 식물도감 그리고 마음)를 작성했다. 황보 씨는 제1기지가 철거된 지금도 노마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얼핏 듣고선 잘 이해되지 않는 작업이다. 도대체 황보 씨는 2년간 무엇을 했던 것일까.

 

어떻게 노마드 작업을 기획하게 되었나

노마드 작업은 보기에 따라 ‘도시 속 현대인의 삶에서의 온 도피’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어떤 ‘저항’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시간이나 장소 그리고 사물 등을 자본으로 환산하는 습관이 있다. 어떤 행동을 하려 해도 돈을 들여야 하는 소비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신물이 났다. 돈을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장소나 사물들을 찾았고, 이를 이용해 다른 생활을 해보면 무언가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목적을 다해서 버려진 어떤 쓰레기들이 있다. 대부분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인데, 그런 사물들을 이용해 작업하거나 원래의 목적과 다른 것을 찾아주었다.

 

수집했던 쓰레기 중 특별했던 것이 있었나

줍고 뿌듯했던 사물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가 있다. 자전거 바퀴는 동그란데, 한쪽을 잘라 세로로 길게 만들면 긴 고무줄이 된다. 탄성이 좋아서 뭔가를 고정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자전거 바퀴 열 개 정도 주운 날에는 기분이 좋았다.

 

노마드 작업은 처음에 ‘우리’라는 테마를 전제하고 시작했던 기획이었다고 들었다

처음에 나는 입학 당시부터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막상 학교에 들어오니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이걸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계속 진행하고 있다.

 

작업 중 물감, 미러볼과 천장, 약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은 자급자족을 위한 새로운 생존법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놀이로 여겨진다.

내가 완전히 사회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현대사회와 아지트를 왕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장을 의식한 화려함을 중요시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화려함을 먼저 갖춰야. 아지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도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인만의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만들었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컨택트arrival>란 영화가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해 시간이 바뀔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다. 12시간, 24시간과 같은 도시의 시간 체계는 나의 아지트 생활에 적용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식물을 키우면서 관찰하는 작업을 할 때 있어서도 그런 시간 체계는 불편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시간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 느리다는 말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컨택트>를 보고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면 나의 시간 체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일반적인 언어와 달리 그림 하나로 문단이나 문장이 표현할 수 있고, 한가지 문양 또는 모양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문자 체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숫자를 만들고 그것을 시간 체계로 바꾸었다.

 

그 문자를 활용해 노마드 작업의 깃발을 만든 것을 보았다.

나의 아지트 이름인 제1기지를 깃발에 그린 것이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그 밑에 내가 있다면, 이 둘 사이에 기지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제1기지다’라는 의미다.

 

영화 <컨택트> 외에 이 작업에 참고한 영화가 있나

<캡틴 판타스틱>과 <인투 더 와일드>가 있다. 나는 이런 영화를 자연 영화라고도 부른다. 자연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서의 삶과는 다른,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업해 온 공간, 제1기지는 어떻게 선정되었나

한동안 혼자 걸어 다니며 도시 속 버려진 공간을 찾아다녔다. 후보에 오른 공간으로는 학교 뒷산 버려진 초소, 동작역 근처 반포천을 따라 한강까지 이어지는 고가도로 밑, 강변북로에서 동부간선도로로 돌아서 빠지는 공터 등 다양하게 있었지만 그 중 초소가 미술원 작업실과 가까워서 ‘제1기지’로 삼기로 했다.

약 2~3주 동안 ‘이 아지트를 내가 써도 될까’, ‘여기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을까’하며 계속 그곳을 주시했다.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자 삶의 터전 마련을 위해 짐을 옮기자는 생각을 했다. 엄청 큰 짐을 들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곳에 짐을 내려놓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학교 경비 아저씨 3분이 뒤에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래서 짐 내려놓으려다 말고 산에서 내려와 ‘아, 오늘은 아닌가 보다’하고 일지에 썼던 기억이 있다.

짐을 기지에 옮기고서도 외부인이 들이닥쳐 짐을 가져갈 것이 걱정되었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해 기지 입구에 이름 모를 잡초를 심어 사람 지나간 자국을 확인하였다. 줄기와 잎이 이어지는 부분에 붉은빛이 나서 그것에 ‘적 꼬리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1기지가 지금은 철거된 것으로 알고있다.

경비 아저씨들은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에 대해 별말씀이 없으셨다. 문제는 문화재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원래 나의 아지트는 안기부의 숙소이자 학교 주변의 의릉 소속인 터였는데 나중에는 문화재청 쪽에서 행정적으로 이 초소가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 내 아지트는 철거된 상태다.

 

제1기지가 철거된 후에 노마드 작업 방식이 불가피하게 변경되었을 것 같은데

많이 당황했다. 기지 철거 이후 인간관계가 틀어지거나 소중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등의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많이 찾아왔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없어진 짐이 눈에 들어왔다. 제1기지 2층에 있던 짐들이 다 없어졌는데, 없어진 짐을 찾아 떠나는 작업을 했다. 의릉 사무실에 찾아가 물어보고, 철거 업체 대표자 전화 번호를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작업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아직 다른 터전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동식 수레처럼 만드는 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

 

노마드 작업을 바탕으로 ‘흉내내는 시간’이란 의미의 <Time to pretend>라는 제목의 전시를 했었다. 관객과의 만남은 어떠했나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찍었던 영상을 재생했다. 물감, 미러볼과 천장 등을 제1기지에서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과 키웠던 식물들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작성한 일지를 한 장씩 뜯어서 벽에다 붙임으로써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전시를 본 관객 중에는 숫자체계-시간체계-문자체계를 갖춘 것을 중요히 받아들였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평이 나왔다. 그중 “황보민은 새로운 자신의 종교를 만들었다” 같은 기분 좋은 평도 있긴 했지만, 애초에 ‘숫자체계-시간체계-문자체계’는 나에게 미션의 하나였지 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이러한 반응이 아쉬웠다. 이는 이 작업에서 계속 수정하려고 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사람들이 내 작업을 보았을 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예를 들면, “나의 이런 작업이 에너지가 있어서 재미있다” 아니면 “목적 없는 생활인 것 같아 한심하다” 같은. 더불어 나의 노마드 생활방식이 도시 속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 내 초소처럼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임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하나경 기자

goodteller1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