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10월 3일

사용자 인터페이스 안팎의 이미지들

영화 <서치>와 두 편의 LCD 기반 뮤직비디오

‘포스트-온라인’ 시대의 시각장을 영상 이미지로 어떻게 재조직할 수 있을까. ‘데스크톱 액정 화면 내에서 진행되는 영화’라는 기획에 기반해 데스크톱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형식으로 구축된 영화 <서치>가 그 해답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 지난 8월 29일 개봉하여 외화 스릴러 최초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치>는 사라진 딸 ‘마고’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1)

그런데 이러한 <서치>의 스토리는 어딘가 익숙하다. ‘세계를 망가뜨린 유일한 진실을 추적하고 증명한다’라는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인데, 이 조건은 할리우드 고전 시네마가 모더니티를 마주하기 위해 설정해놓은 것이다. <서치>는 이를 답습하며 기획에 내재하는 가능성을 시네마의 새로운 장식물 정도로 제한한다. 포스트-온라인 시대의 시각장을 재조직하는 작업과는 관련이 없다는 셈이다.

서두에서 제시한 질문의 힌트는 <서치>가 상영 중인 극장가 밖에 있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LCD)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영상 두 편을 살펴보자.

전화 받기 : “我打开打开打开”

첫 번째 영상은 중국의 힙합 그룹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의 [We Chat] 뮤직비디오다. ‘위챗’이라는 채팅 앱의 셀프 카메라를 통해 제작된 이 뮤직비디오는 하이어 브라더스의 이런저런 자기 자랑을 아이폰 화면 비율로 담고 있다. 이 뮤직비디오의 맥락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의 래퍼 키스에이프(Keith Ape)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부터다.

 『We Chat』 ⒸCXSHXNLY

전화의 영화적 재현은 ‘당시(當時)’라는 말에 기반한 시청각적 가설이다. 전화 행위는 서로 떨어진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거리로 인해 발신인과 수신인은 하나의 프레임을 공유할 수 없다. 전화 행위는 영화의 사진적 존재론만으로는 지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네마는 현실을 재조직했다. 초기 유성영화 이후 이 현실은 (전화를 거는 쪽의) 쇼트와 이에 반하는 (전화를 받는 쪽의) 역-쇼트로 제시되었다. 각 쇼트의 지시체는 (전화가 성사되는) 이미지를 성립하기 위한 사료로 소모되는데, 이러한 소진을 구조화하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당시, 떨어져 있던 둘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 가설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텔레커뮤니케이션 특히 영상 통화 기술의 발달 이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되었다. 이제 두 장소와 각각의 얼굴들은 단일한 핸드폰 액정 화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가설과 현실의 공간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과 현실의 공간이 한 장소에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2) 이러한 장소에서 하이어 브라더스는 키스에이프의 전화를 받음으로써, 그리고 We Chat을 켬(打开)으로써 가설-현실이라는 당대(the present age)를 가리켰다.

 하지만, 현실 속 영상 통화 기술이 전화 행위를 영화적으로 재현한 모델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결론 도출은 금물이다. 영상 통화 기술은 전화 행위의 영화적 재현 모델과 같은 층위에서 이야기될 것을 거부함으로써만 기능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영상 통화를 주고 받는 때마다 일일이 ‘저 두 사람이 전화를 나누고 있구나’라는 믿음만으로 지탱되던 기존의 통화-영상을 염두에 둔다면, 구현된 기술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영상 통화 기술을 일상적으로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네마가 구축한 통화-영상의 시각적 모델을 잊어야만 한다.

전화 씹기 : “난 나에게 떠날 수는 없어”

지금까지는 영상 통화 기술이 핸드폰 액정 화면 내부에서 펼쳐지는 현실로서 기능하려면 기존 통화-영상 같은 시네마의 전제가 망각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루었다. 이제는 핸드폰 스크린 액정 화면 내부의 현실이 아니라 핸드폰 액정 화면 그 자체의 물성에도 초점을 맞춰보려고 한다. 지난 8월 19일 전시공간 ‘원룸’(ONEROOM)의 ‘[터치 스크린 Touch Screen] -003’에서도 다수의 작업을 상영한 바 있는, 송민정(SERIOUS HUNGER) 작가의 [명왕성] 뮤직비디오를 살펴보자. “스마트폰 내부에서 출발해 명왕성의 세계관 속으로 이끄는” 이 뮤직비디오는 [We Chat] 뮤직비디오처럼 아이폰의 화면 비율로 제작되었다.

『명왕성』 ⒸYOUNG,GIFTED&WACK Records

[명왕성]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정보란은 “본 뮤직비디오는 핸드폰 화면에서 풀 스크린으로 HD 설정 후 보길 권장합니다”라고 재생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구글에 월 12달러만 내면 유튜브의 모든 영상을 재생하는 동시에 핸드폰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 재생’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일상적으로 핸드폰 화면을 만지작거리는 우리는 뮤직비디오 한 편을 풀 스크린의 핸드폰에서 보라는 조건을 말로만 받아들인 뒤, 무시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핸드폰 화면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문장을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여보자. 핸드폰의 액정 화면이 인터페이스와 그가 매개하는 ‘포스트-온라인’의 세계상이기 전에, 핸드폰 액정 화면 자체를 하나의 물질로서 만지기 위해, 우선 손을 한 번 떼보자는 말이다. 이러한 제안은 삼성 모니터를 부수고 그 균열 속에 RGB 값이 난반사되는 퍼포먼스를 촬영한 히토 슈타이얼의 <STRIKE>(2010)를 떠오르게 만든다. 스크린에 내재하는 물질성을 드러냄으로써 스크린이 오브제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 <STRIKE>는 ‘스크린은 실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답안이다. 그런데 송민정 작가는 이보다 은유적인 방식으로 스마트폰 액정 화면의 물질성에 다가간다.

뮤직비디오를 재생한지 2분 45초가 지나자 내 핸드폰에는 ‘no name’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울린다. 거절 버튼이 눌리고 송민정 작가는 내 핸드폰 화면 안에서 셀프 비디오를 찍는다. 그리고 풍경을 찍는다. 그런 다음 자신의 영상을 캡처한다.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내 핸드폰 안에는 아무것도 저장되지 않았다. 여기서 핸드폰의 인터페이스를 지시하는 것은 다섯 번째 문장의 ‘내 핸드폰 안’뿐이다. 반면 ‘내 핸드폰’과 ‘내 핸드폰 화면’은 인터페이스가 아닌 다른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터페이스가 아닌, 인터페이스를 재현하는 기술적 이미지-시네마의 물리적 지지체로서의 핸드폰 액정 화면이다.

핸드폰 액정 화면의 물성만을 쓰다듬기 위해, 우리에게 핸드폰 액정 화면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이자 그가 매개하는 환영적 실재계가 아니라 영화적 이미지를 재생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스크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노리는 효율적 효과나 목적에서 벗어난 갈래로, 일종의 오류이자 노이즈이다. 따라서 [명왕성] 뮤직비디오가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목적에서 벗어난 시네마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스크린을 드러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특정 이미지가 스크린을 조건으로 삼는다면 그 이미지는 시네마의 이미지여야 하는데, 시네마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입장은 (아직까지도)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

(1) ‘서치’, 개봉 16일 만에 200만 돌파…외화 스릴러 최초 [공식 입장], 2018.09.14, 장진리, msn 엔터테이먼트

(2) 흔적의 사유와 길 자체, 2017.04.20, 함성호, [체계와 예술-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6], 이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