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9월 18일

이달의 소녀의 세계 만들기

열두 멤버가 월간으로 솔로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멤버들끼리 짝을 지어 세 유닛으로, 이 세 유닛을 다시 모아 완전체 ‘이달의 소녀’(LOOΠΔ)를 데뷔시킨다는 기구한 기획. 지난 8월 20일, 소속사 블록 베리 크리에이티브는 18개월이라는 기간과 99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거쳐 이를 성사시켰다.

 

첫 유닛 ‘이달의 소녀 1/3’(이하 ‘1/3‘) 시기의 작업물(곡/뮤직비디오)에서는 소녀스러움에 대한 한국 아이돌 산업체의 지리멸렬한 집착 말고는 별다른 요소를 감지할 수 없었다(‘하슬’의 <소년, 소녀>는 예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유닛인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이하 ‘오드아이써클’)의 탁월한 싱글들은 이 기획이 그저 돈 많은 회사의 인형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내기 충분했다. 케이팝 팬층뿐 아니라 퀴어 커뮤니티에 속한 해외 트위터 유저들 사이에서 “Stan Loona”(이달의 소녀 지지)라는 문구를 맥락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만든 것은 오드아이써클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된 멤버 ‘김립’의 <Eclipse>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였다.(1)

 

위 문단의 경우처럼 이달의 소녀를 이야기할 때 곡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작업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둘 수 있다. 하지만 상품과 소비자라는 관계를 벗어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이때 관건은 작업물이 이 기획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된다. 블록 베리 크리에이티브는 데뷔 쇼케이스에서 “하나의 팀이 세 개의 유닛으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세 개의 팀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 이달의 소녀의 콘셉트”라고 말했는데, “세계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달의 소녀가 보여준 일련의 작업은 ‘만들어진 세계’인 세계관(世界觀 fictional world)을 정당화하는가.

 

우선 ‘1/3′ 시기를 살펴보자. 이 시기의 뮤비는 통합적인 세계를 지시하지 않는다. ‘희진’의 <ViViD>는 ‘현진’의 <다녀가요>를, ‘여진’의 <키스는 다음에>는 ‘비비’의 <Everyday I love you>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알 수 없는 비밀(Sonatine)>이나 <지금, 좋아해> 같은 유닛 곡들의 뮤직비디오에서 네 멤버는 각자의 뮤직비디오에서 제시된 몇 가지 설정을 지닌 채 같은 장소로 모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비밀(Sonatine)>과 <지금, 좋아해>는 서로가 지시하고자 하는 세계를 조리 있게 합치할 명백한 서사적 동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에는 화면상에 보이는 멤버들만이 공유될 뿐이다.

 

반면 ‘오드아이써클’이 공개되는 시점에는 이달의 소녀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온갖 세계관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저런 세계관 해석들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 세계관이 제시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세 멤버가 함께 나오는 <Sweet Crazy Love>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세 쇼트는 <Eclipse>의 첫 세 쇼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원환 구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리릭스(lyrics)비디오를 제외하면 오드아이써클의 뮤비는 총 다섯인데, 오드아이써클의 세계관을 파악하기 위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 그 첫 영상의 자리에는 다섯 뮤비 가운데 무엇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 이는 스물다섯 평행세계가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뮤비들 간 순서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오드아이써클의 서사는 셔플(Shuffle)이 강제된 플레이리스트-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달의 소녀 yyxy’(이하 ‘yyxy’)의 뮤비도 오드아이써클처럼 플레이리스트-서사를 따르는데, 기능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오드아이써클의 경우에는 개별 뮤비가 세계관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뮤비들 간의 관계가 세계관의 전조(前兆)를, 세계관의 해석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yyxy의 뮤직비디오들은 yyxy의 개별 뮤비들이 yyxy의 세계관 전체를 지시한다. 그렇다면 yyxy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사 초반에 언급한 “Stan Loona”라는 문구에 “Officially”(공식적으로)라는 수식이 붙게 만든 ‘츄’의 <Heart Attack> 뮤비의 서사, 레즈비언 순애 세계관이다.

 

마지막으로 원점으로 돌아와 완전체를 살펴볼 차례이다. ‘이달의 소녀’로서의 데뷔곡 <Favourite>과 <Hi High>는 세계를 만들었는가. 이번 뮤비들에 따르면 답은 ‘아니다’다. <Hi High>의 “남잔 조심 조심 조심” 같은 가사는 yyxy가 지시하는 세계관과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달의 소녀의 콘셉트를 소개한 주체가 이달의 소녀가 아니라 블록 베리 엔터테이먼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아이돌 담론에서 아이돌명은 영화나 음악 비평문에 등장하는 예술가의 이름과는 성격이 다르다. 아이돌명은 분명 고유명사로서 문장에 위치하지만, 무언가를 고정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이달의 소녀’라는 이름은 이달의 소녀 멤버, 아트 디렉터, 프로듀서, 작사가, 블록 베리 엔터테이먼트 등의 주체들 혹은 이달의 소녀의 작업물의 대유적 표현 사이에서 무엇을 지시하는가. 이것이 <Hi High>가 이달의 소녀의 지난 작업들의 맥락 밖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그리고 이달의 소녀의 데뷔에 대해 규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다.

 

김태원기자

lemonadegogo99@gmail.com

 

(1)이은호,「‘99억’ 들인 이달의 소녀 “우린 유행 만드는 그룹”」, 『텐아시아』, 2018.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