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8년 9월 18일

예술가를 꿈꾸며
연극원 연출과 김소현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출발점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가고 있기도 하다. 이 길에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학기 우리신문은 어떤 식으로든 예술가를 꿈꾸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학생들을 만나보려 한다. 길 위에 선 이들의 인터뷰가 학우들에게 걸음에도 힘이 되길 소망하면서.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우리학교에서 ‘K’Arts 플랫폼 페스티벌’이 열렸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학생들의 공연 및 전시를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생활예술제이다. 올해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여진 가운데 유난히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 있었다. 연희운문극 <애매해海>는 시로 대본을 쓴 전통연희극으로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섬, ‘아마도’를 찾는 육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로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극을 구성했고, 극장 대신 갤러리에서 공연했다. <애매해海>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은 미술 영상이었다. 작년 디자인과 졸업 전시회에서 공개된 작업은 공연으로 확장되었다. <애매해海>는 △미술원 △연극원 △전통예술원 △무용원 △영상원 5개 학과 학생들이 모여 만든 다원 예술이기도 하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김소현(연극원 연출과 15) 씨를 만났다. 벌써 새로운 작업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애매해海>는 어떤 극인가.

모든 것이 자유롭게 부유하는 ‘애매해’가 배경이에요. 육지 사람들은 ‘아마도’라는 환상의 섬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아마도’는 수많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죠. 작품은 총 6연으로 구성된 시인데, 연별로 외모∙나이∙ 등수∙ 돈∙시간과 같은 그물에 갇힌 사람들을 그렸어요. 그리고 그물들을 하나씩 벗어 버리면서 자신을 ‘나’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우리 삶에는 뚜렷하지 않고, 딱 떨어지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빛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끔 그것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수치화시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형화된 틀에 갇히기엔 너무 ‘애매한’ 나, 훨씬 더 크거나 작은, 또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나’를 인식하면서 꿈의 공간 같던 ‘아마도’는 마음속 그물을 버리는지에 따라 어디든, 언제든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이야기 전달 방식이 간접적이었다. 운문이 대사를 대신했고, 춤과 음악이 여백을 채웠다.

저는 추상적인 방식이 좋아요. 직접적인 표현보다 더 많은 여지가 만들어지고, 의미가 풍부해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일반적인 대사를 대신할 언어들을 찾게 되었죠. 운문극은 연극원 레퍼토리 <물의 정거장> 공연을 통해 처음 접했어요. 그때부터 운문극이 제 머릿속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전에 연출했던 무용극에서 운문을 활용했어요. 서사로 흘러가는 극이 아닐 때 시가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느낀 계기가 되었지요. 운율과 여백을 가진 시가 감각들을 많이 자극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춤 역시 언어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기획 과정을 자세히 듣고 싶다.

첫 기획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원형은 미술원 디자인과 14학번 김다윤 씨의 작업이었어요. ‘월요일은 싫어魚’로 시작하는 요일별 물고기와 그들이 사는 ‘애매해’를 형상화한 것이었죠. 형상화 방법은 전통연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어요. 전통적 요소가 현대적으로 표현된 작업이었어요. 전시 후 다윤 씨는 ‘애매해’라는 공간을 더욱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했어요. 공연 중 표현을 빌리자면 관객들과 헤엄치고 싶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아요. 공연을 통해 관객과 현장에서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죠.

<애매해海> 이전부터 다윤 씨와는 몇 번 같은 공연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다윤 씨가 공연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아는 사이였는데 ‘K’Arts 플랫폼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가 평소에 전통 연희에 관심이 많을 걸 알고 계셨거든요. 그렇게 제가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컨셉을 생각한 건 다윤 씨이고 저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공연 속 이야기를 붙인 것입니다.

 

공연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

원작자 의도와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윤 씨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질문과 답변은 의미를 좁혀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한 편이에요. 올 3월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구체적으로는 6월부터 두 달 정도 대본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해왔어요.

또 극이 추상적이다 보니 설명할 때 역시 어려웠어요. 처음 대본을 나눠줬을 때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한 사람씩 만나 얘기했을 때 다들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줬어요. 같이 생각해 주셨던 거죠. 만약 이걸 저 혼자 하는 것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게 가장 와닿은 공연이었어요.

 

배우나 스태프분들이 장면 구성에 어떤 식으로 참여했나.

움직임 장면이나 대사가 들어가는 장면들도 제가 방향과 기본 구성을 제시하면 무용원, 연극원 배우분들이 함께 살을 붙여주고 수정했어요.

공간과 무대 소품은 원작가인 다윤 씨와 공간디자이너분이 담당했어요. ‘애매해’에 가장 어울리는 소재, 꼭 들어가야 할 요소들을 선정해서 만들어 주셨어요. 공연 장소를 갤러리로 잡은 것도 다윤 씨 의견이었어요.

 

확실히 공연을 갤러리에서 한 점이 특이했다.

바다 심해를 표현하기에는 공연장보다 갤러리가 적합하지 않냐는 의견이었어요. 갤러리라는 공간이 가진 이점이 많았지만, 제약도 있었어요. 갤러리에는 전시 조명만 있고 무대 조명을 쓸 수 없는 구조였어요. 스탠드를 빌려서 사용했는데 조명이 부드럽게 켜지고 꺼지지 않았어요. 무대 조명을 보면 인과 아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그 부분이 안되었던 거죠. 그래서 조명 효과가 거의 없었어요. 중간에 한 번 그림자 장면이 있을 때 사용한 것이 다예요. 객석이 나뉘어 있지 않아 공간에 대한 부분도 잘 계획해야 했어요. 전시장이 울리기 때문에 배우들의 대사 전달에도 어려움이 따랐죠. 그런데 오히려 울리는 부분 덕분에 바닷속 같은 느낌을 줬어요.

 

5개원이나 되는 다양한 전공 학생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원작자분은 미술원이셨고, 전통예술원 연희과 분들은 저와 같은 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16년에 학교 수업을 통해 연희 앙상블 팀 ‘비단’의 팀원을 만났어요. 그것을 계기로 ‘비단’에서 연출도 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전통예술원 무용과 분도 이전에 작업으로 만났고요. 같이 작업을 하다가 이어진 경우가 많고, 연기과 두 분과 무용원 창작과 분만 따로 섭외했어요. 그런데 이분들도 다들 연결 고리가 있더라고요. 연기과 분들은 연극원 같은 학번 동기이고, 창작과 분은 부전공하면서 뵀던 분이고요. 저는 이 공연에 같이 도전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어요. 이런 작업을 실험하고 즐길 수 있는 분들로요.

공연 제작 중에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연 전날 리허설 중 배우 한 분이 자반 뛰기라는 동작을 하다 종아리 부상을 입었어요. 바로 병원에 갔지만 깁스를 해야 했어요. 우리는 당장 사람을 새로 섭외해야 할지, 남은 사람들만으로 진행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했어요. 구상했던 장면에 맞추려면 사람을 섭외해야 했지만 저희는 그림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어요. 우리 극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원에서 모였으니까 서로 분야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실험하는 정신으로 임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들 이런 상황에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어요. <애매해海>는 서로가 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며 만든 공연이었어요. 내려놓았을 때 또 다른 그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연출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연출가로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부족하기에 ‘앞으로 공부계획’이라고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서 말씀드리자면, 계속해서 다양한 언어에 관심을 두려고 해요. 특히 전통연희는 매력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점점 많이 들어요. 다만 전통 분야이다 보니 어디까지 제가 건들 수 있고 해체 가능할지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공부가 정말 필요한 분야라고 매번 느끼고 있어요. 안무법도 창작과 수업을 듣다 보니 숨겨진 게 많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면서 구조적으로 잘 사용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면서 우리를 둘러싼 또 다른 언어들에도 많은 관심이 생기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어느 걸 공부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두게 될 것 같아요.

 

서혜원 기자

hyeohtwo@gmail.com

 

사진제공: 김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