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의 요리사 – 요리가 있었고 아직 시는 태어나지 않았던 때에

가정요리백과전서
어린 아이는 화려한 화보에 중독된다. 내가 집에서 낡은 가정요리백과전서를 발견한 뒤로 매일 애독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책의 붉은 장정을 바라볼 때마다 가정의 기원과 우연의 효과를 생각했다. 보통 굳게 닫힌 방 안에 누워있거나 병원에 입원해있는 어머니가 결코 들춰볼 일이 없을 이런 책이 어떻게 우리 집에서 산소가 다 떨어진 잠수부처럼 경직되어가다가 하필 겨우 유치원을 마친 나에게 구조될 수 있었을까. 나는 책장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을 때마다 팔뚝의 근력을 무자비하게 시험하는 이 책을 하나의 생물체처럼 여겼다. 이를테면 애완견으로. 어쩌면 내가 세인트버나드를 키우겠다는 야심한 미래계획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물도감 사진으로도 확인 가능한 특유의 덩치와 순한 구조견이라는 양면성에 매료되었던 것인데, 당시의 내가 지내던 한가로운 주택가에서 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지길 소망했고 또 누구를 구조할 예정이었는지 지금의 무기력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버지는 이미 내 뜻과 상관없이 대형수조에 수십 마리의 물고기와 새 두 쌍을 키우는 중이었고 내 야망은 결코 언어화된 적이 없다. 나는 그 은밀한 야심을 가정요리백과전서에 쏟아 부었다. 노견의 털을 조심스레 고르듯이 매일 의무적으로 페이지를 넘겼고 책의 의의를 구조하듯이 매년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 현실 속에 요리책이 머무르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내 책장엔 내 돈으로 마련한 초등학생과 신혼부부 대상의 요리책, 전문제빵책자가 십여 권 꽂혀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가정요리백과전서를 보지 않았다. 그 책이 이 팬시한 책들을 낳고 코끼리들이 제 무덤을 찾아가듯 책장 어딘가로 숨어버린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요리일기장을 만들었다. 부모가 거의 머무르지 않는 집에서 나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아버지의 골프채로 동생과 거실에서 하키 시합을 하며 쉬는 시간마다 간간히 반죽을 뒤섞었고 승패와 관계없이 동생과 완성된 아이스크림을 똑같이 나눠먹었다. 동생은 집에서도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고기도 새도 우리 곁을 떠나고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순간의 적막과 등골을 타고 내리는 땀방울만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동생은 내가 잡지에서 오려 붙인 레시피 아래에 별점과 소감을 적었고 나는 나의 실수와 미흡함을 저주했다. 이런 삶이 죽을 때까지 진행되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V 채널
그러나 쭉 빌려 쓰는 삶에 익숙해지는 건 조금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방과 후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친구 집에 가서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4시부터 11시까지 남의 집 부엌을 빌려 쓰는 게 미안한데 그렇다고 사과를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불편한 상황을 인지시키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음악을 틀기도 한다. 친구네 거실 텔레비전은 채널 V에 고정되어 있고 전원을 켜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화면이 밝아진다. 난 거실 바닥이 환해지는 것을 곁눈으로 확인하고 바로 옆의 부엌에서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코코 리와 히로스에 료코는 내가 보든 보지 않든 개의치 않고 쉼 없이 노래를 부른다. 하루에 8번까지 마주할 때도 있다. 가끔 지겨워지면 노래방 채널로 옮긴다. 화면에 핑클이 나오고 가사가 떠다닌다. 립싱크를 하는데 마이크가 꺼져버린 것 같다. 핑클의 상황이 매우 적나라해진다. 우리는 핑클의 뒤에 숨은, 이름 없는 가수처럼 파트를 나눠 노래를 부르다가 자지러진다. 사실 난 핑클을 좋아하지 않지만, 핑클 앨범을 꼬박꼬박 제 돈 주고 사모으는 친구의 취향을 납득하기로 한다. 여긴 친구의 집이니까. 난 옥주현의 다리가 핑클 멤버 중 가장 아름답다고, 분명한 신념을 담아 예언한다. 그것은 바로 몇 년 뒤 현실이 된다. 그러나 나는 매일 6시간 이상씩 요리를 하는 행위가 반복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친구가 요리를 하기도 한다. 친구의 요리는 맛이 없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그릇을 비운다. 어쩌면 친구도 매일 나를 위해 똑같은 희생을 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남동생은 미국에서 농구를 하다가 훌쩍 큰 이후로 더는 내 요리일기에 협력하지 않는다. 동생은 자신이 180cm에 육박하게 해준 일등공신이라고 믿는 햄버거에 미쳤고, 난 샌드위치만 만든다. 책가방에 요리일기장을 집어넣고 친구 집을 나선다. 가방이 무겁다. 가방이 걷는 건지 내가 걷는 건지 알 수 없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학원가가 있다. 환한 골목이 불길하다.

 

음식남녀
별 생각도 없는 이런저런 대회와 학원에 끌려 다녔다. 나는 자퇴를 하고 싶다고 매년 얘기했지만 담임들은 그저 날 문제학생으로 여겼을 뿐이다. 날 편애하는 담임은 내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이런저런 꼼수로 봉사점수를 높여놓았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완강히 저항했지만 이모와 어머니가 신촌을 돌며 알아서 원서를 넣었다. 기왕 넣을 거면 식품영양학과 같은 곳에 넣었으면 싶었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졸업식에서 학교 이름을 드높였다며 공로상을 주었지만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고생은 오히려 학교가 다 한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강의동 앞에서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빵을 구워 파는 것을 보면 가슴이 딱딱해졌다. 전공수업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대신 번역으로 돈을 벌어 쇼콜라티에 강좌를 수강했다. 빨리 자격증을 따고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적당한 요리사는 필요 없었다. 어차피 요리를 빼면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을 쉽게 쉴 수 없었다. 알러지라고 했다. 수술을 받고 약을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먼지에 극도로 취약해졌고 밀가루를 먹으면 얼굴에 물집이 잡혔다. 집에 가만히 앉아 번역을 했다. 구한말의 사정과 러시아 이민족들의 농업 형태와 대기업 생산라인의 혁신안 따위가 노트북 안을 굴러다녔다. 가끔 빈 오븐에 불을 켜고 오븐 바닥에서 올라오는 가스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나의 몸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도 내 사정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서로 주고받은 셈이었다. 졸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회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오래 전에 영화 “음식남녀”의 가천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의 무의식은 어쩌면 내가 가천처럼 요리에 한없는 호감을 품고 그 주변을 맴돌지만 결국엔 외부의 시스템에 녹아들어 현실적인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그 뒤에도 나는 프랑스 유학을 추진하기도 하고 건강식을 만드는 사업에 골몰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고꾸라졌다. 미미한 학문적 호기심에 기대 연극원에 들어온 이후에도 실은 세 번이나 식당을 추진했지만 매번 중간단계에서 중지되고 말았다. “음식남녀”에서는 미각을 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천이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순간 아버지는 재혼계획을 선언한다. 나의 경우로 빗대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8번쯤은 재혼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삶은 굴러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의 메시지에 동의했기에 나는 “음식남녀”의 비디오판을 남몰래 구입했던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까지 그런 식으로 굴러가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천에게 자매들이 있었듯이 내게는 친구들이 있었고, 때로는 웃다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복학을 하면서 나는 조리도구들을 전혀 들고 오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사건의 기록을 지하실에 내버려두고 나오며 문을 확실히 잠그듯이.

 

 

(전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