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8년 9월 13일

르네상스 치정극, 『말피』를 2018년 한국에 올린다는 것은,

연극  『말피』, 9월 16일까지 혜화동 동양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

21세기 관객에게 가장 잘 알려진 르네상스 드라마의 주인공은 햄릿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맥베스 부부,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그리고 리어왕과 코델리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7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관객에겐 조금 다른 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탬벌레인과 포스터스 박사, 그리고 말피 공작의 이름도 나왔을 것이다. 존 웹스터의 『말피 공작의 비극』은 처음 공연한 1612년부터 지금까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극이다. 동생들의 집착에 가까운 감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집사와 비밀 결혼을 감행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주인공. 누나에게 근친상간적인 집착을 보이며 결국 파멸에 이르는 쌍동이 동생. 누나와 닮은 정부를 감춘 채로 형과 누나의 파멸을 지켜보는 남동생.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만 결국 버림받는 하인. 신분이 높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 이유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남자. 줄거리만으로도 흥미를 끌어당기는 치정극이다.

 말피는 르네상스 드라마의 여성 인물 중에서 누구의 딸이나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줄리엣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드문 주인공이며 줄리엣과 달리 자신의 사랑으로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다. 그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의 권력을 믿으며,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 충실하다. 그는 동생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사와 비밀 결혼을 하고 임신한다. 그렇지만 임신이 드러나면서, 말피는 순식간에 공국의 군주에서 처벌받아야만 하는 부정한 죄를 저지른 여인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작가 존 웹스터는 단 한 번도 극에서 말피의 욕망과 사랑에 대해 비난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그는 말피의 죽음을 순교에 가깝게 그리면서 사회의 규범에 반해 자신의 욕망을 실행하려 했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단죄받는지를 그린다.

 자신의 계급에서 인정하지 않는 결혼과 출산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말피는 군주가 아니라 방종하고 문란한 여성이 되어버리고 결국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받는다. 주인공 말피의 힘은 바로 그 순간에 나온다. 말피는 그 전락의 순간에 “나는 말피 공작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이 모든 학대를 견디면서 자신이 믿었던 사랑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웹스터는 부당한 학대를 겪는 말피를 따라가면서 그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와 그 여성 혐오에 동조하는 계급 간의 갈등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페르디낭의 첩자 보솔라는 자신의 분노를 자신을 버린 주군이 아니라 그런 있는 자들에게 “치마를 걷어 올리는 년들”에게 표출하면서 혐오의 방향을 자신보다 약한 여성에게 돌려버린다. 페르디낭과 추기경은 공공연하게 여성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면서 말피의 욕망을 통제하고 구속하려고 한다. 웹스터는 부패한 사회가 어떠한 식으로 혐오를 배출해 내고 그러한 혐오로 결국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권력을 재생산할 뿐이라는 걸 이 작품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극에서 동생 페르디낭은 말피에게 이렇게 답한다. “그런 여자들을 마녀라고 부르지.” 사회가 정한 순종적인 과부의 길을 밟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또 다른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 그리고 또 다른 동생 추기경은 그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높은 피가 이렇게 더럽혀진다고!” 그리고 이 모든 비난에 말피는 이렇게 답한다. “그래도 나는 말피의 공작이다.”

 『말피』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과거의 흥미진진한 치정극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여성 혐오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갈등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사회의 타락과 부가 결국 인물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주면서, 지금 현재 여기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 행동했을 때 왜 여성은 더 심하게 단죄받는가? 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는 사회는 왜 위험한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만 하는가?  

 

마정화 강사

연극 『말피』 번역ㆍ드라마터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