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8년 9월 1일

[이주의 도서관 자료] 이혁진 ‘누운 배’를 읽고
중이 떠나도 절은 그 자리에

회사가 기세를 회복할수록 부패와 모략도 활개 하는 아이러니

 

yes24제공

<누운 배>의 화자인 ‘나’는 중국에 있는 조선소에 다닌다. 이 소설은 그 조선소의 진수1)를 마친 배가 바다 한복판에서 기울면서 시작한다. 배는 자동차와 트럭 6700대를 실을 만큼 거대했다. ‘나’는 배가 누우면서 발생한 경제적 손실로 회사가 파산할 것을 걱정했다. 회사가 파산하면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실업자 신세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배는 기어이 누워버렸다.

 

이날 전까지 ‘나’는 한국을 떠나 조선소로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이 인정한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가 누워버린 조선소는 파산하여 전직원이 떠나버릴 결말만을 앞둔 것처럼 보였다. 배가 누운 것은 이전의 시간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었으며, 이제껏 많은 문제가 이 조선소에 누적되었음을 암시했다.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의 저자 로버트 맥키는 “고전적인 이야기들은 절정에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렬한 변화를 터뜨리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배가 누워버리는 이 소설 첫 장면은 기존 이야기의 허리를 잘라 절정만 남기고,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배가 누웠을 때 ‘나’는 고용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다. 누운 배에 대한 책임도 권한도 없는 ‘나’는 소설에서 관찰자였다. ‘나’가 주목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직속 상사인 팀장이 있다. 배가 누운 이후 경영기획팀이었던 팀장은 누운 배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팀장의 목적은 보험 회사로부터 누운 배를 재건조하는데 드는 원상복구 비용만큼의 액수를 타내는 것이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조선소는 결백해야 하며 사고 원인은 천재지변에서 벗어나면 안 되었다. ‘나’를 포함한 팀 전원은 진상에 가까우나 조선소에는 불리한 자료와 기존 기록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조작했다.

 

결국 팀장의 노력은 보험단이 8할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조선소의 입장에서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성과에 대한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회장 측근 임원인 양 이사에게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소 회장은 뜬금없이 “누운배를 다시 세우겠다” 발표했고 회장 측근 임원들은 이 말에 열광해 하나둘 연봉을 반환하기까지 했다. 팀장과 건조 보험금 쟁취에 기여한 컨설턴트 홍 소장은 배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배를 세우려 모았던 자금은 회장의 신사업 필리핀 실버타운으로 몽땅 흡수된 것이었다. 조선소 내 권력의 탐욕스러운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조선소가 살면 연봉이 인상될 것이다’는 달콤한 말로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했지만, 현실은 회사가 기세를 회복한 일이 구성원들의 성공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일들로 지친 직원들은 한 명씩 퇴사했다. 관찰자인 ‘나’는 그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경위를 증언한다. 한 사람이 가고 나면 또 다른 사람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로 떠나는 쪽은 노련한 실무자들이었고 남는 쪽은 회장의 인정을 받은 부패한 임직원들이었다. 조선소는 점점 누구나 개판이라고 탄식하게 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부조리한 상황들을 계속 생산했지만 끝내 망하지는 않았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그 부속물인 인간의 생명을 쥐어짜면서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그러나 절은 중이 떠난다고 소멸하지 않는다. 더한 지옥이 될 뿐이다.

 

관찰자였던 ‘나’ 역시 회사를 떠난다. ‘나’는 떠나려는 이유가 이 회사에 전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가 누울 당시에는 실업자가 되어 귀국하는 일을 가장 두려워했던 ‘나’가 회사 전망이 없다는 말을 임원에게 할 정도로 대범해졌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을 ‘나’의 성장드라마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혁진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비관적인 세계관을 드러냈다. 어느 한 개인이 자신의 회사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듦을 깨닫는다고 해도 그에게는 시스템을 파괴할 권한이 없다는 것. 우리는 영화 <설국열차>의 커티스가 불평등과 모순을 가득 안은 설국 기차를 폭발시켜버린 것과 같은 장면을 <누운 배>의 세계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누운 배>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윤 추구라는 회사의 거대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 비교적 사소하지만 한 인간을 버티게 만드는 소중한 것을 모색하고 수호하며 시스템 속에서 버틴다. 혹은 개인의 신분으로 조직을 떠나는 편을 선택한다.

 

 

하나경 기자

goodteller15@gmail.com

 

1) 진수 : 새로 만든 배를 조선소에서 처음으로 물에 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