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7월 18일

나라 지켜낸 독립유공자, 역사 지키는 후손들

정재진 ‘광복회’ 서울지부장 인터뷰

 

우리가 사는 나라, 도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되었던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역사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면서 봉기한 의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있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1945년 나라가 해방되기까지 독립운동가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목숨과 재산을 내놓으며 국권 회복을 부르짖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바탕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만큼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신문에서는 광복절 73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로 이루어진 단체인 ‘광복회’ 서울지부에 방문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유산 ‘광복회’

 

인터뷰 중인 정재진 서울시 광복회 지부장  Ⓒ안서연

 

정재진 ‘광복회’ 서울지부장은 ‘광복회’를 한국 독립의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단체의 주목적은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1965년도에 창립된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당사자와 후손 중 집안 대표자 1인이 회원 자격을 갖는다. 국가보훈처에서 인정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수는 약 1만 4천 명으로 이 중 절반가량인 7천여 명이 ‘광복회’ 에 가입되어 있다. 전국 15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 ‘광복회’의 주요 활동은 △삼일절 및 광복절 기념행사 주최 △역사강좌 제공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프로그램 시행 △독립운동 해설사 양성 △학술대회 개최 등이 있다.

 

도시가 역사다.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프로그램’

 

‘광복회’는 활발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먼저 ‘광복회’는 내년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제목의 강의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민들은 3~5월과 9~11월 초에 강의를 신청해 2시간씩 4회의 교육을 이수할 수 있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정동 일대에서 진행되는 ‘황제의 밀서를 전하라’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모바일게임 형식의 역사 탐방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안내된 사적지를 답사하는 것이다. 이 외 서울시 12코스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행사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매주 토요일마다 ‘광복회’에서 파견한 해설사가 서울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역사를 안내하는 행사로 지난 4~6월에 진행하였고, 9~11월에도 같은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이 행사의 평가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이 넘는다. 높은 만족도에는 전문 해설사의 안내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활용한 편리한 자료 제공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문화탐방 ‘황제의 밀서를 전하라’ Ⓒ광복회

 

“서울 시내에는 약 230곳의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어요. 그중 가장 좋은 곳들을 뽑아서 12코스로 연결해 놓은 것이죠. 이 행사를 위해 경력 있는 문화유산 해설자들을 60시간 동안 교육해 파견하고 있어요. 만약 단 한 가지 코스를 추천해야 한다면 2코스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충단 남산 일대를 돌아보는 코스죠. 대부분 장충단이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오늘날로 치면 현충원이에요. 과거 을미사변으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때 희생당한 분들을 모셔서 이곳에 안장시켰죠. 그런데 이제는 역사가 뭉개져서 장충단 공원으로만 기억되고 있어요. 또 근방 신라호텔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습니다. 그곳은 박문사 자리였어요.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모신 신사(절)가 있던 곳으로 그 신사를 지을 때 건설 부자재를 모두 우리네 궁궐에서 뜯어다가 썼죠. 이런 얘기가 가슴 아프게 들어올 겁니다. 모두 다 참여할 수 없다면 1, 2, 3코스라도 둘러보세요. 교육적 가치가 가장 높습니다.”

정 지부장은 대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약속도 덧붙였다. “만약 학생들이 15명 이상 그룹을 만들면 개별 탐방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일시와 코스를 정해 신청만 하면 해설사를 보내줘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싶은 이유가 광복회에 들어와 역사를 공부하며 이런 것들을 더 젊어서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장자로 광복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들어와보니 제가 역사를 너무 잘못 배운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공직자로 30여 년을 국가를 위해 일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라에서 가르친 역사가 전부였죠.

저는 우리나라 역사학 거두로 불리는 서울대 이병도 박사의 책으로 한국사를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병도 박사는 민족반역자 이완용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두 사람은 조선 총독부 시절 ‘조선사 편수회(일제가 한국역사를 그들의 통치 목적에 부합하도록 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에서 일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일제로부터 만들어진 역사가 과연 온전했을까요? 제가 그런 책을 들고 공부했어요. 이런 사실을 나이 70살이 넘어서 알았죠. 얼마나 억울한 일이에요.”

정 지부장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사태도 함께 지적하며 젊은 세대가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추가로 탐방일정 수신 가능. 문의 전화 : 070-7536-4403

 

외면당해온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독립유공자 자손이 친일파가 쓴 교재로 공부했던 것은 한 가지 사례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유공자들은 계속 소외당해왔다. “독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반공 정책을 펼쳤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병사들, 군인들을 불러 이러한 정책을 이어나갔죠. 그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를 죄인 취급했어요. 독립운동을 해서 감옥에 갔다 왔는데 전과자로 분류해버려 사회 활동을 못 했죠. 반면 일제 편에서 있던 사람들은 독립 이전부터 좋은 것들을 누려왔어요. 사업 기회가 많았고 자식을 외국에 보내 공부시켰죠. 결국 이승만 정부에 들어와서도 경험 있고 학식 높은 이들 친일파가 나랏일을 도맡았어요. 독립운동가 집안은 독립운동하는데 자금을 다 쓰고 가난하게 살았어요. 저도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배척을 많이 당했지만 그나마 어렵게 대학과 공직시험에 합격해 이만큼 누리고 있는 거죠. 국민학교 시절부터 공부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어요.” 3년 전 한국일보에서 ‘광복회’ 회원 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2%는 월 소득이 2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광복절 축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통설을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독립유공자들의 경제력은 사실상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들의 이야기이다. “조선총독부 시절 통계에 의하면 1919년도 당시 독립운동에 가담하신 분들을 약 2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잡은 통계니까 더 적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는 300만 명이 넘는다고 하거든요. 그중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3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만 4천여 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그 안에서 7천 명 정도만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했던 독립운동가 故 김용관 선생 역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는 김 선생을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을 이유로 선정에서 매번 탈락시켰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과정은 과연 어떠할까.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게 되어 있어요. 독립운동을 증명할만한 확실한 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독립운동가들은 행적을 숨기고 다녔기 때문에 자료가 거의 없어요. 6·25전쟁 때 사료가 많이 사라진 것도 있고요. 또 독립 후 행적이 묘연하거나, 월북한 사람은 인정하지 않아요.” 정 지부장의 가족도 유공자로 지정되기가 쉽지 않았다. “저희 할아버님은 경남 진주에서 3.1만세 운동을 주동하신 분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가 나중에 전국 교도소를 직접 돌아다니며 증거 서류를 찾아냈죠. 부산 교도소에 할아버지 판결문이 있었어요. 다행히 판결문에 정확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유공자로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힘들었죠. 그렇게 신청하고 5년 뒤에 유공자가 되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보훈 정책이 좀 더 적극성을 띠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민간합동발굴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질지 기대해봐야겠죠. 그렇다고 이 문제가 1, 2년 사이에 해소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일을 바꿀 역사를 위하여

 

“프랑스는 4년 반 동안 독일에 나라를 빼앗겼다 되찾았을 때 가장 먼저 나치 협력자들을 처단했어요. 수천 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죠. 중국도 상당수의 친일파를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사형시킨 사례가 없어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김구 선생을 저격하고, 김창용이라는 군인은 방첩대(간첩 활동을 막는 임무를 맡던 부대)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였어요.”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이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해결책이 있느냐는 물음에 정 지부장은 다시금 역사 공부를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 공부입니다. 국민들이 역사의식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어요. 역사는 한 나라의 혼이자 정신입니다. 우리는 몸뚱이가 아무리 화려해도 정신이 바로 박히지 않으면 실체가 없다고 평가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나라의 정신인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지요.”

 

정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에게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역사 강의용 소책자 28권을 챙겨주었다. “역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과거 나라를 지켰던 선조들처럼 ‘광복회’ 후손들 또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역사를 지켜내고 있었다 .  

 

서혜원 기자 hyeohtw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