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8년 6월 12일

불안과 망상 그리고 범죄 사이에서
몰카범죄에 대한 단상

2018년 5월 19일 서울 혜화역에서는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는 홍대 누드크로키 모델 몰래카메라(몰카) 사건의 피의자 검거 및 구속을 계기로, 몰카범죄 수사 및 처벌에 있어 피해자가 여성일 때와 남성일 때 그리고 가해자가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항의하고 몰카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경찰은 이 시위에 애초 500여 명 정도가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시위 당일 혜화역에 모인 여성의 수는 12,000여 명의 규모였다.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점은 불법촬영 혹은 몰카범죄에 대한 집단적 불안과 분노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몰카로 인해 일상에 만연해진 불안, 몰카범죄를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음으로 인한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불안과 불신을 번번이 무시해 온 사회적 태도에 대한 분노가 폭발적으로 응축해서 분명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 목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카범죄와 그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몰카범죄는 언제 발생하는가? 최근 공공장소에서 “불법촬영 신고가 예방입니다”라는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다. 신고는 사건 발생 이후 사건 접수를 포함한 일련의 후속 조치를 뜻하는 것이지, 사건에 대한 예방이 될 수 없다. 불법촬영 장면을 신고하든 불법촬영 장비로 추정되는 것을 신고하든 이는 이미 발생한 범죄에 대한 것이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고가 예방이라는 문구는 결국 몰카 사건의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뿐 아니라 몰래카메라 설치 및 촬영 행위 자체는 아직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실제로 몰카가 범죄이기 위해선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하는 경찰관 개인에 의해 몰카 사진이나 영상의 심각성, 범죄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최종적으로 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경우 경찰이나 검찰은 불법촬영 가해자를 가볍게 다루어 왔으며, 판사는 가해자의 촉망받는 장래나 지금까지의 사회적 기여를 더 많이 걱정하며 계속해서 정상을 참작하기도 했다. 이럴 때 몰카 사건은 범죄로, 불법촬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몰카범죄에 따른 피해의 발생은 더욱 복잡하다. 몰카범죄에 따른 피해는 직접적 촬영 여부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몰카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몰카범죄의 직접적 대상이 되었던 피해자는 피해 발생 장소뿐 아니라 안전하다고 여긴 모든 공간에서 극심한 불안을 겪는다. 몰카에 찍히거나 몰카를 발견한 적 없는 사람도 몰카범죄의 공포와 불안을 일상에서 겪는다. 몰카범죄를 직접 겪건 겪지 않건 일상의 모든 공간이 불안으로 물드는 것, 이것이 몰카범죄가 야기하는 중요한 피해다. 그러나 일군의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근거 없는 과대망상 취급하며, 몰카 설치가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구멍을 점검하는 것을 두고 ‘왜 구멍마다 허탕이냐’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몰카 촬영이 이루어져야만 범죄로 구성되고 피해가 발생한다고 믿는 수준에서 불안은 피해가 아닌 망상인 것이다.

 

이처럼 몰카범죄의 발생과 몰카범죄에 따른 피해의 발생은 등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상당 경우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발생한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는 몰카범죄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낼 수 없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엄중한 조사와 처벌은 몰카범죄의 피해를 불식시킬 수 없다. 몇몇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진다 하여 몰카범죄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몰카범죄에 대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미온적 태도가 그 불안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 이외의 관련 기관들은 무엇이 몰카범죄인지 무엇이 몰카범죄의 피해인지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몰카범죄를 중범죄로 인식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몰카범죄의 예방은 신고가 아닌 관련 기관이 실천하는 최대한의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몰카범죄 근절을 위한 관련기관의 최대치의 노력이 몰카범죄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을 해소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관련 기관이 실천하는 최대치의 노력은 몰카범죄 근절을 위한 최소한의 시작일 뿐이다.

 

 

정희성 외부기고자

hoyjh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