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8년 5월 29일

완성과 미완성 – 위대한 예술가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은 위대함과 범용함을 판단하는 감각의 정밀한 작용을 필요로 한다. 이 감각에 오류가 생길 경우 그 예술은 인간 혐오적인 탐미주의의 색채를 띠거나, 껍데기뿐인 세련미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한 인간이 인생의 어느 중요한 순간에 우연히 영혼의 위대한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일관적인 위대함을 보여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것이다. 내 생각에 우연히 획득되거나 처음부터 타고나는 위대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위대함이란 끊임없는 정신적 추구의 결과물이다. 왜냐하면 위대함이란 몸을 던져 헌신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은 이것을 통찰하고 이해한다. 무언가를 양보하고 있다는 것은, 예를 들어 자신의 쾌락을 양보하여 모든 사람에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훌륭하지만, 아직 헌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헌신한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이며, 우리는 영원히 희생하고자 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진정으로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헌신하는 예술가라는 관념은 지금 상당히 낡은 것이 되어 있지만, 약간 더 생각해볼 때 우리는 현대에 예술적 창조라는 것 자체가 기진맥진해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새로운 정열들의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걸작을 박제된 고전으로 취급하거나, 기계적인 존경만을 가짐으로써 거장들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자기 만족적인 표현의 영역으로 후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결국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깊이까지 뚫고 들어감으로써, 이전 시대의 거인들과 어깨가 나란히 할 수 있기를 열망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세속적인 전복이나 독창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깊이에 도달함으로써 예술가는 인간이 꿈꾸는 영원의 모습을 전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동시대 예술의 편견이나 규칙을 다소 변경하거나 추가하기를 꿈꾸는 것이 전복적인 예술이 가진 야망의 한계라면,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은 영원한 깊이에 도달함으로써 영원히 완성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진정한 걸작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너무 추상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세계의 모든 상징이 서로 얼크러지는 듯하고, 모든 미묘한 감정들에 불멸의 표현이 주어져 가슴에 새겨지는 듯한 걸작의 마력이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진정한 걸작이란 여러 시대 동안에도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걸작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시대는 매우 불행한 시대이며, 걸작을 낳기 위해서는 그 시대 모든 예술가와 모든 감상자의 협력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다.

 

아일랜드의 유명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대표작인 <율리시스>를 출판 직전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수정했으나, 그 책을 자신의 40세 생일에 맞춰 출판하기 위하여 수정을 중단했다. 그래서 결국 <율리시스>는 미완성의 작품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작품은 여러 이유로 당한 지점에서 중단될 수 있을 뿐, 그 표현력의 한계에 도달해 절대적으로 완성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이런 고민을 했던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완성의 관념은 인간적인 표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미완성 상태일지라도 이미 완성 자체를 표현하고 있으며, 세계의 궁극적 완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위대한 작품은 나아가 완성의 척도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꿈과 희망, 고통과 절망이 중첩되어 솟아난 듯한 마술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그리하여 현실은 완성되고자 예술을 모방하게 되고, 예술가는 하나의 운명이 제시되었음을 이해한다.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헌신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이 단순한 현실의 재료 재조립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고, 동시에 모든 것을 완성하고자 한다.

 

 

김강철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