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팩토리 / 율리안 헤첼

지난 4월 14-15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프로젝트로 독일의 예술가 겸 사업가인 율리안 헤첼이 <베네팩토리>를 선보였다. 헤첼은 ‘현존’부터 시작해서 ‘선물’, ‘죄책감’, ‘시장’과 ‘자본’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시하며 한 시간 동안 빈틈없이 자신의 예술과 사업에 대해 말하면서 렉처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 속 예술가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었다.

 

헤첼이 무대에 등장한 뒤 처음으로 꺼낸 주제는 흥미롭게도 현존(presence)이었다. 그는 현대 예술계에서 현존이 함의하는 경제학적 가치를 이야기했다. 그가 현존은 돈이 된다는 말을 꺼내자 관객들은 현존의 의미를 재고하면서 헤첼의 현존하는 몸을 보기 시작했다. 무대 위 재현하는 몸, 예술적 몸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으로 현존하는 그의 존재를 말이다. 이렇게 그는 퍼포먼스의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것은 앞서 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1인으로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의 생존 방식 가운데 첫 번째 방식이다. 헤첼은 ‘현존’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현존하는 몸’으로 관객이 인식하게끔 만들면서 그들의 이목을 끄는 경제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선물, 교육, 죄책감 등의 테마를 던지면서 결국에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SELF HUMAN SOAP’사업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누란 원래는 돼지의 지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헤첼은 인간의 지방을 재료로 비누를 만들어 이를 사업화했다. 관객들은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아티스트가 하는 이 행동이 대체 어떤 예술적 행위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헤첼은 그가 다니던 예술학교에서 약 2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말 그대로 ‘지원’받은 돈이기 때문에, 그는 이 지원금으로 무엇이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원금이란 순수한 지원금이 아니다. 헤첼이 말하길,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물은 일방적 호의가 아닌, 양자 간에 오가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헤첼이 지원받은 금액은 그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학교의 학생으로서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시장가치와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에 쓰도록 주어진 ‘자본’이었다.

 

예술마저 자본주의의 논리에 저당 잡힐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헤첼은 아티스트로서 자본주의 시장에 진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술가로서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마인드를 완벽하게 장착한 사업가로서 진출한 것이 전혀 아니다. 이윤을 내고 성공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기준이라면 그것에 뻔뻔하게 적응하겠다는 것이 헤첼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장으로의 완전한 적응과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예술을 시장가치로 판별하는 자본주의 시장에 아티스트로서 들어감으로써 그 세계에 균열을 낸 것이다.

 

헤첼이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인간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이다. 생존에 필요하고 충분한 정도보다 훨씬 과도하게 먹었기 때문에 고도로 비만해진 유럽인들의 지방을 흡입하여 이를 재료로 비누를 만든 것이다. 인간 지방 비누가 돼지의 지방으로 만들어진 비누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때를 벗길 수 있다면 율리안 헤첼 같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과학자가 이미 시도하고 시중에 인기리에 판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헤첼의 목표는 ‘효과적으로 때 벗기는 비누 만들기’가 아니므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죄책감과 빚을 씻어내는 것이다. “Wash the pain away!” 더러움을 씻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씻어내자는 그의 ‘SELF Soap’의 카피는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헤첼의 인간 지방 비누는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때를 씻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죄책감과 빚, 고통을 씻기 위해 비누로 손을 닦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씻어내지 못하고 찝찝한 느낌을 가져간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최소한의 자본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최대한의 이윤을 얻어가는 자본가의 비윤리적 행태를 비꼬는 것이다. 비누를 팔아 번 돈을 아프리카에 원조하는 행위는 모종의 죄책감을 안고 있는 서구 자본가들의 시혜적 행동을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헤첼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SELF Soap’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흥미를 느낀 관객들은 비누로 손을 씻어보기 위해 줄을 기다린다. 관객은 많지만 그 관객을 기다리는 비누와 세면대는 두 대뿐이다.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손 씻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는 관객도 있다. 이것은 헤첼의 퍼포먼스의 마지막 부분이다. 최소한의 자본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내는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에 따르는 비누 사용, 그리고 홀로 무대에 등장하여 자신의 현존성을 강조한 뒤 렉처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준비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하는 젊은 예술가의 생존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자본주의에 대해 균열을 냄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송유진

(연극원 연극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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