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5월 27일

백남준 ‘다다익선’ 가동 중단, 앞으로의 거취는?

1003개의 모니터 LCD로 전면 교체 vs 철거 후 오마주 작품 제작

 

<다다익선>의 모니터 화면이 꺼졌다  ⓒ안서연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다다익선>의 모니터 화면이 꺼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TV 모니터 1003대를 쌓아 제작한 영상탑 <다다익선>은 올해로 30년째 미술관을 밝혀왔다.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1932-2006)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하고, 건축가 김원이 작품 설계에 참여한 <다다익선>은 그동안 미술관 중앙을 관통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그러나 <다다익선>은 모니터와 부품의 노후화로 2003년 모니터를 전부 교체하는 등 30년에 걸쳐 잦은 수리와 보수를 거듭해왔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올 초 “작품을 계속 가동할 시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미술관은 결국 지난 2월 13일부터 <다다익선>의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이 후원한 동종 모니터는 이미 단종되어 작품 보존을 위한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불 꺼진 <다다익선>을 두고 미술계 안의 논쟁이 치열하다. △영상탑의 브라운관 모니터를 최신 LCD 화면으로 갈아 끼우거나 △작품은 철거하고 <다다익선>을 추억하는 오마주 작품을 만들자는 주장으로 분분하다. 우리신문은 미술원 미술이론과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가상의 대담을 구성하여 <다다익선>을 둘러싼 미술계의 갑론을박을 정리했다.

 

(아래 내용은 8인에게 의견을 받아 임의 배치한 것입니다)

 

<다다익선> 상영중단을 알리는 팻말  ⓒ안서연 기자

 

부품을 교체하자는 입장

A: 모니터를 LCD 화면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나아 보인다. 기기 교체는 미디어아트라서 가능한 부분이다. 또한 <다다익선> 모니터 교체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다익선>의 형식을 새로운 기계로 계속 이어가는 건 해볼 수 있는 작업이다. 더하여 작가는 생전에 영상 이미지만 온전하게 내보낼 수 있다면 TV 브라운관 대신 새로운 매체를 사용해도 된다고 수차례 말했다. 작가가 기계를 바꾸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기 교체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B: 미디어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여태까지 <다다익선>의 생존법은 보존이 아닌 진화였다. 1988년 제작 당시 <다다익선>은 무성 설치물이었지만 이후 9개의 모니터가 추가됐고, 유성 설치물로 수정됐다. 본래 3개였던 영상 채널은 4채널로 늘었다. 수명이 다한 브라운관을 수리하거나 교체하면서 <다다익선>은 이미 처음과는 다른 외형이 되었다. 죽은 세포를 버리고 새롭게 몸을 구성하는 유기체처럼 <다다익선>은 매 순간 변하였다. 그러므로 다다익선의 보존 및 복원에 있어서 고유성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전제부터 흔들린다.

 

C: <다다익선>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당시의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도 작품을 구성하는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까지 <다다익선>의 수정과 교체는 작품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은 가능한 한 남겨야 하며, 무엇을 얼마나 남길지 집중해야 한다. 철거보단 보존을, 그리고 그 보존에서는 최대한 원형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LCD 모니터로 교체하여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D: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법으로 삼성전자가 <다다익선>에 쓰인 브라운관 모니터를 다시 생산한다면 어떨까.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광고비로 11조 5천127억을 썼다. 삼성전자에 천여 대의 모니터를 생산하는 ‘마케팅’ 정도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원래 있던 재료로 <다다익선>을 보수하자는 타협안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술계, 미술관, 백남준 작가 측을 어렵지 않게 설득할 것이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작품의 탄생, 유지보수, 전시 그리고 재탄생까지 책임져주는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후원자로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이다.

 

오마주하자는 입장

E: 백남준은 생전에 이 작품 의도에 대해 “다다익선이 수신의 절대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다다익선’이라는 작품 제목을 두고 규모로 오해하곤 하지만 실제는 모니터 개수나 물리적 크기를 말하는 바가 아니다. <다다익선>의 정체성은 ‘소통’이다. 당시 신문물 TV가 가져온 범국가적 소통기능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게다가 360도 원형의 외형까지, 작품은 온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러한 맥락 안에서 현재 불 꺼진 <다다익선>은 본 의도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LCD 화면으로 수리된다고 해도 작품이 ‘소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품 의도를 살려 현대적 소통을 의미하는 오마주 작품이 나와야 한다.

 

F: ‘다다익선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다. 전자 매체를 이용한 작품 특성상 장비별 사용 연한이 있다. <다다익선>은 30년이 그 끝이었던 거고. 그렇다면 이러한 매체별 사용 연한을 주기로 두 번째, 세 번째 <다다익선>이 나올 수도 있겠다. 백남준을 계승하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수 있고, 그때마다 백남준 작품은 확대될 것이다. 백남준 타계 후 그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한국 미디어 작가는 아직 두드러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 <다다익선> 시리즈가 등장한다면 새로운 미술계 동향을 이끌 것이고, 세계적 이목을 끌 것이다.

 

G: 개인적으로 <다다익선> 모니터 하나하나를 유심히 본 적이 없다. 최신 고화질 색감에 익숙한 나에게 저화질 화면은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가 사용하는 매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모니터 속 영상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영상이 나오는 화면을 혁신적으로 축소하면 어떨까? 우리가 쓰는 전자기기는 계속 작아져 손에 들고 다니는 크기가 되었다. 30인치가 넘는 브라운관 화면보다 5, 6인치의 스마트폰 화면이 더 익숙하다. <다다익선>이 동시대 기기로 오마주 되었으면 좋겠다.

 

H: 하지만 그렇게 매체만 바꿔 오마주 하는 방식은 매너리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다다익선> 오마주를 통해 원작에 대한 존경심을 표할 수 있지만, 단지 그것에만 멈춰있을 수 있다. 오마주를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마주 작품이 기존 <다다익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나타내어야 한다. 지금과 비슷하게 영상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이전 백남준 비디오 아트가 보여준 도약처럼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는 작품이 나와야 한다. 덧붙여 꺼져버린 브라운관 <다다익선> 또한 가치 있다. 작가 생전에 완성된 작품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의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 작동하지 않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되, 오마주 작품을 새로 만들면 좋겠다. 한 작품의 두 버전이 생기는 것이다. 두 작품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가변성을 비교해볼 수 있어 재미있을 것 같다.

 

미술관 측은 <다다익선>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미술계에서 <다다익선>을 둘러싼 입장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으며, 이번 결정이 다른 미디어 아트 작품들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미술사적 전례가 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현재는 관련 전문가로 이루어진 30여 명을 자문단으로 선정했고, 추후 이들 의견을 수렴해 작품의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국내외 관계자들의 수가 많은 데다, 각자 다양한 의견을 쏟아낼 것이 분명해 작품의 존치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내년께나 되어야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술관에서는 과천관 현관에 <다다익선> 설치와 운영, 수리, 가동중단까지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7월 말이나 8월 초부터 관객들은 이 전시를 통해 <다다익선>의 30년 역사를 관람할 수 있다.

 

서혜원, 최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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