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5월 27일

[리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시네마 밖에서

 

영화 <프로토타입>, <부드러운 살결>, <고전주의 시대> 리뷰

 

전주국제영화제 전경 ⓒ안서연 기자

 

지난 5월 3일 개막해 12일에 폐막한 제 19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이번 영화제는 매진되지 않은 영화를 찾기 어려워 겨우 6편을 예매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가운데 세 편의 영화, 블레이크 윌리엄즈의 <프로토타입>, 드니 코테의 <부드러운 살결> 그리고 테드 펜트의 <고전주의 시대>를 보며 한 문장이 떠올랐다. 캐나다의 실험 영화감독 아이제이야 메디나는 3월 21일 자신의 텀블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시네마는 영화 만들기의 한 장르일 뿐이다”.

 

3차원의 어둠 : 블레이크 윌리엄즈의 <프로토타입>

 

<프로토타입>은 캐나다의 영화잡지 [시네마 스코프]의 영화 평론가 블레이크 윌리엄즈가 2년간 제작한 첫 장편 영화이다. 블레이크는 토론토 대학에서 3D 시네마를 가르치는 학자로, 그간 중단편 분량의 3D 영화 작업을 이어왔다. 지금껏 3D 영화들은 보이는 것, 곧 빛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대표적으로  <언어와의 작별>(2014)에서 천국의 이미지는 변화한 시청각의 장에서 감지될 수 있는 절대적인 미를 향한다. 여기서 절대적인 것은 새로운 형태의 빛, 디지털 3D 이미지의 노이즈가 만들어내기 때문에 일상에서 감지할 수 없는 빛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적 없는 새로운 빛을 대하는 환희는 켄 제이콥스의 <손오공을 탐구하다>(2011)와 같은 현대의 3D 영화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감각이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경우처럼 기존 ‘시네마’의 특정적인 풍경-서부극적 풍경-을 디지털 3D 이미지로 사막화시켜버릴 때에도 시각성-빛-은 그 중심적인 매개로 기능한다.

 

<프로토타입>은 1900년 가을, 텍사스주 글래브스톤에 몰아닥친 허리케인을 다루는 영화이다. 당시에는 라디오와 같은 정보 수신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글래브스톤 거주민 대부분은 재난을 방지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1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프로토타입>이 영사되는 사이사이에는 검은 화면이 삽입된다. 이때 관객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오직 들을 수만 있다. <프로토타입>은 매체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가항력적인 재난 피해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매체 기술의 발달, 즉 디지털 3D 기술을 통해 ‘시네마’라는 장르에 내재하는 불가항력을 극단적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불가항력을 확장하는 요소로 선택된 것은 어둠, 극장에서 3D 안경을 낀 채 구속적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완전한 어둠이다. 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백설공주>(2000)와 같은 여느 영화들의 어둠과 달리 미학적 장치가 아니다. <프로토타입>의 어둠은 그저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암전(暗轉)이 아닌 암흑(暗黑)이다. 하늘이 너무 밝아 눈을 감은 사람이 느끼는 어둠과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버린 사람이 느끼는 어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형(形)/상(狀) :  테드 펜트의 <고전주의 시대>와 드니 코테의 <부드러운 살결>

 

전주국제영화제 안내 책자는 드니 코테의 <부드러운 살결>을 “인종과 배경이 다채로운 6명의 몬트리올 보디빌더의 일상을 교차시키는” 다큐멘터리로 소개한다. 이어서 코테의 시각에 관해 “‘하드 바디의 슬픔’ 또는 ‘전시된 육체의 비애’에 관한 비유를 담았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왜냐하면 <부드러운 살결>은 오히려 피사체의 의지와 상관 없는 슬픔이나 비애 따위의 감정을 착취하길 거부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코테는 [시네마스코프]와의 인터뷰에서 <부드러운 살결>의 인물들이 “미스테리하지 우스꽝스럽지는 않다”라고 명시했다. 차분한 디지털카메라의 동태는 <부드러운 살결>을 일견 일상성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부드러운 살결>은 이미지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이리저리 변용하는, 디지털 이미지를 둘러싼 일상적인 풍경 반대편에 서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서 대중은 이미지에서 감정을 취사선택할 수 없고 이미지를 바라보는 자신에게서 감정이 발산되길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시네마 스코프]는 이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이 극적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코테는 “지적한 바 전부는 <부드러운 살결>이 사실상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승인과 같다”라고 답하며 “대사들은 각본에 의존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따라서 <부드러운 살결>의 인물들을 다큐멘터리적 인물로 단정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도 극 중 인물이 실제 연기자와 속성 대부분을 공유하므로 이들을 온전한 극영화적 인물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다. 기존 시네마 논의에서 통용되는 원본과 재현, 그리고 현실과 픽션의 개념을 넘지 않는 한 <부드러운 살결>의 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때 테드 펜트가 자신의 영화 <고전주의 시대>를 설명하면서 쓴 ‘리얼리티-픽션’이라는 개념이 용이하게 기능한다.

 

<고전주의 시대>는 필라델피아 독서 모임 그룹의 세 젊은이를 다룬 펜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다. 펜트는 젊은이들의 지적 담화를 차근차근 담아낸다. 여기서 중요한 순간은 대화에서 드러나는 박식함이 아닌, 연속하는 대화의 위선에 미쳐버린 인물이 담화 자체를 중단할 때이다. 한편으로 <고전주의 시대>는 미국 독립 영화의 명맥에서 이어지는 사이코드라마와 언어를 무한정 늘어뜨리는 프루스트에게 각인된 살롱의 경험을 연결하는 하나의 극영화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전주의 시대>는 <부드러운 살결>과 마찬가지로 ‘리얼리티-픽션’으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테드 펜트는 전문 배우가 아닌 자신의 친구들을 고용했고, 배우들이 떠들어대는 지식은 배우들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작성한 각본이다. 즉 가상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속성과 배우들의 실제 삶의 속성 사이에서 일치가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유운성 평론가가 ‘형상-픽션’이라고 개념화한, ‘리얼리티-픽션’이다.

 

<부드러운 살결>의 보디빌더들이 리얼리티와 픽션 간의 불확정성에서 말을 아낌으로서 감정을 촉구할 때, <고전주의 시대>의 학생들은 동일한 불확정성에서 발화를 통해 육체의 현전을 강조한다. 시네마가 시네마로서 기능할 수 있게 만드는 빛 이전의 어둠을 보여주기 위해 블레이크 윌리엄즈가 ‘3D-어둠’을 영화 만들기의 한 ‘장르’로 선택한 것과 같이, 드니 코테와 테드 펜트는 기존 시네마 논의에서 벗어난 영화 이론과 그 정교화를 요청한다. 극장이나 영화제 외부에서 영화를 즐기는 일이 일상이 된 우리가 시네마 밖에서 영화를 사고하길 말이다.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