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5월 9일

한국 영화 비평의 원령(怨靈)
잡지 [FILO]

‘특별한 영화’는 기성 평론의 부재로 사라졌는가.

 

[FILO]는 ‘영화를 비평하는 일에만 몰두하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모여든 평론가들이 만든 영화 비평지다. 작년 12월 [FILO] 필진들은 텀블벅 후원으로 7000만원 가량의 금액을 모아 올해 3월 창간호를 발행했다. ▵허문영▵정성일▵이후경▵남다은▵정한석과 같은 기성 평론가가 주요 필진이었으며 해외 평론가인 에이드리언 마틴과 영화감독인 스와 노부히로, 그리고 fantasy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해 온 김병규 평론가도 글을 내놓았다.

 

영화 비평지를 평할 때, 특정 영화에 관한 어느 평자의 비평을 아무개는 반대하거나 아무개는 동의한다는 방식은 가치가 떨어진다. 이러한 찬반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영화이지, 비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비평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해당 비평이 다루는 영화나 영화에 관한 평자 견해에 천착하기보다는, 비평을 가능하게 만든 기반과 독자에게 도착하기까지 비평이 만든 궤적을 그려보는 일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FILO]를 펼쳐보기 이전에 [FILO]의 텀블벅 후원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게시글을 살펴보면서 이 비평지가 전제로 삼는 논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게시글의 첫머리를 여는 문구는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이다. 이것은 [FILO]가 내세우는 잡지로서의 가치인 셈이다. 이어지는 다음 단락을 읽어보자. “좋은 영화, 중요한 영화, 특별한 영화가 곧잘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요즘, 그런 영화들에 글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유일한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이 문장에서 “유일한 잡지”라는 표현은 “좋은 영화, 중요한 영화, 특별한 영화가 곧잘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요즘”을 [FILO]가 전혀 파악하고 있지 않거나, 부정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오큘로], [아노], [txttxttxt] 등등 ‘요즘’, 영화에 관한 잡지는 많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이다. [FILO]의 필진이 이러한 잡지들을 자양분 삼기 시작한 씨네필들과 마주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대신, 이러한 잡지와 잡지들이 만들어내는 논의들은 “영화들에 글과 사랑을 아꼈다”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태도는 소개 글 중반에 명확해진다. [FILO]에 따르면 “1995년에는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맞아 <씨네21> <키노> <프리미어> 등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잡지들”이 줄지어 나왔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잡지의 독자들은 영화 비평을 활자 언어에서 벗어나 유튜브, 블로그 서비스, SNS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전유하기 시작했다. 필진 상당수가 [키노]에도 참여했던 [FILO]는 이러한 전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키노>의 폐간은 그러한 전환을 예고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깊은 사유와 섬세한 언어가 담긴 종이잡지, 지면비평을 통해 영화를 음미하는 방식은 이젠 불가능한 걸까요?”라고 질문한다.

 

필진의 세대가 만들어낸 잡지인 [키노]를 “깊은 사유와 섬세한 언어가 담긴 종이 잡지”라고 은근슬쩍 상정하는 셈인데,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잠시 제쳐두기로 한다. 이어지는 문장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원칙과 논리에 의해 외면당하는 영화마저 끌어안으려는 영화비평은 설 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전제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새롭게 나타난 독립 영화잡지들은 ‘이런저런 원칙과 논리’로 어떤 영화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FILO]에서 다루어지는 영화들과 새롭게 나타난 독립잡지들이 다루는 영화들을 나누어 어느 쪽의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담론적으로, 비평적으로 외면당해온 작품들인지 비교해보면, 결과는 꽤 명백하다.

 

다시 첫 단락으로 돌아오자.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영화들에 바쳐질 페이퍼 매거진으로서 책이 주는 기분 좋은 무게감, 종이의 질감이 주는 차분함, 정돈된 글이 주는 명쾌함이 영화와의 더욱 특별한 만남을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문장 어디에서도 [FILO]가 다른 영화 잡지들과는 다르게 나아갈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묘사하는 책의 물성 자체는 종이 텍스트에 익숙한 필진 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종이라는 매개에서 별다른 향수를 느끼지 못할 이들과는 상관없는 지향이다. 여기서 ‘차분함’이란 우리네 평론가들이 젊고 방종한 씨네필인 댁들에게 선사하는 차분함을 돌려서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식 지면에는 평문을 처음 써보는 김병규 평론가를 ‘신인’이라고 명명하는 모습은 한국 문단의 고질적인 원령인 ‘등단 제도’를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FILO] 창간호는 주요 필진과 편집진이 사랑하는 대상이 영화인지, 영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자신들과 자신의 지위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