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아이들은 비밀스럽고 안타까운 노래를 부른다

게임 디자이너 우에다 후미토의 세계

 

게임 디자이너 우에다 후미토는 이상한 방식으로 게임업계에 들어섰다. 물론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가내수공업식으로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한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로베르타 윌리엄즈 정도는 아니겠지만, 학부 시절 그의 전공은 미술이었다. 어느 날 흥미를 느낀 컴퓨터 그래픽스와 CG 렌더링이 그를 게임업계로 인도했다. 워프에서 CG 아티스트로 일하다가 독립해 내놓은 데뷔작 <이코>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3인칭 어드벤처 게임에서 생각지도 못한 동료 개념의 혁신을 보여줬다. 곧이어 <완다와 거상>은 아예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데 이르렀다. 이 두 게임으로 우에다 후미토는 게임사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만든 <더 라스트 가디언>은 이전작의 성취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가 게임계에서 확고한 비주얼리스트이자 구조의 혁신가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게임사에서 보자면, 우에다 후미토는 1990년대를 장식했던 델핀이나 아델린, 인포그램즈를 비롯한 프랑스 게임의 후예라 할 수 있다. 뫼비우스나 엔키 빌랄 같은 혁신적인 프랑스 만화들 영향 아래에 있던 이 회사들은 미국이 만들어낸 게임이라는 매체를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공부했다. 이 시절을 대표하는 게임이 바로 <어나더 월드>다. 이 게임을 혼자서 만들어낸 제작자 에릭 차이는 횡 스크롤 플랫포밍을 면 위주의 그래픽과 대사를 배제한 서사 연출로 재해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어나더 월드>는 마치 무성 영화의 클로즈업이 그랬듯이, 최소한의 표현 양태로 풍부한 감정을 자아냈다. 에릭 차이는 조던 메크너의 <페르시아의 왕자>와 같이 게임의 서사 연출이 플레이와 최소한의 표현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들은 1990년대 말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뒤로 물러났지만, 우에다는 그들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사람들은 흔히 우에다가 만드는 게임을 보고, 시적이다 혹은 예술적이다 라는 표현을 많이 동원하곤 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다. 예술적인 게임이라는 말이 게임의 예술 인정 욕구가 담긴 치기 어린 표현이라고 쳐도, 도대체 ‘시적인 게임’은 무엇인가? 단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내세운 게임을 그럴싸하게 표현한 것인가? 영화 평론가 토니 주는 린 램지의 연출론을 설명하면서 영화의 시적 표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에게 영화의 시적 표현이란 ‘플롯을 무시하고 이미지와 음향으로 구성된 독특함을 감상’하는 것이다. 주는 린 램지의 영화를 분석하면서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프레이밍과 배우의 얼굴, 특정 디테일의 반복이 서사에 대한 유의미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주 역시 시적 표현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만든 영상 에세이를 통해 이미지를 통한 시적 표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에다 후미토가 시적인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라 불릴 수 있다면, 엄격하게 선별된 디테일과 이미지를 신선한 형식 위에 배치해 플레이어를 상상하게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게임들에서 플롯과 장르는 단순함을 고수한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거나 (<이코>), 소녀를 살리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떠나거나 (<완다와 거상>), 친구가 될 괴물을 만난다(<더 라스트 가디언>). 그리고 이 서사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서사와 장르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우에다와 휘하 제작진이 만들어내고 배치한 이미지와 음향 때문이다. 벽화와 조각, 나무와 끝없는 하늘, 샘, 들판, 어두침침한 계단, 비어 있는 방, 그림자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적들……

 

이 이미지들은 궁극적으로 설명 없이 서사 바깥에 배치된 배경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미지들은 플레이어가 따라갈 동선에 따라 반복되거나 변주되면서 끊임없이 서사의 풍경을 장악한다. 이미지의 섬세한 배치 속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와 연관 짓게 된다. 종종 등장하는 장르적 스펙터클은 그 점에서 장르적이기보다는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거쳐야 할 숙명적인 신비로움의 일부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자면 우에다 후미토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데페이즈망 기법 (실제로 우에다 후미토는 직접 그린 <이코> 커버 아트에서 데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울>에 대한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보여줄 때 드러나는 자연의 단순한 아름다움과 제스처의 웅변, 로베르 브레송이 주창한 최소한의 이미지론을 <젤다의 전설>과 <어나더 월드> 같은 선배 게임들의 유산과 함께 게임에 끌어 들인 디자이너다.

 

이런 시적 표현 속에서 우에다 후미토는 어떤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가? 먼저 그가 만드는 게임들은 익숙한 장르를 재발명하는 지점이 있다. 동료 NPC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코>, 오로지 보스전만 가능한 <완다와 거상>, 퍼즐의 발판이자 탈 것인 거대 생물을 동료로 내세운 <더 라스트 가디언>…… 우에다 후미토는 게임이라는 매체를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주인공과 얽히는 타자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만든 게임에서 관계는 고립된 세계에서 단둘만의 것이며, 안타까운 정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에다 후미토 게임을 한다는 것은 생략과 단아하고 치밀한 디테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안타까운 정서로의 여정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 정서적 여정은 게임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가? 먼저 <이코>를 살펴보자. 플레이어가 만나는 요르다는 플레이어가 알 수 없는 자막을 통해 타자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를 요르다를 자연스럽게 동료로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이코는 요르다의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레이어와 NPC는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리면서 미로의 출구를 찾는다. 반면 <완다와 거상>은 숙명적인 파국과 비극을 게이머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보스전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주인공은 완다는 돌아설 곳이 없다. 완다를 막는 사람은 마지막에야 등장하고, 그나마도 만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보스를 찾아가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이 선적인 구조를 반복할수록 완다와 거상의 싸움은 신화적 비극 속 영웅과 괴물의 제스처로 화한다. 동시에 완다를 이끄는 플레이어 역시 쓸쓸한 신화적 비극의 동반자가 된다. ‘최후의 일격은 안타깝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완다와 거상>만의 비극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일 것이다. 근작 <더 라스트 가디언>에서는 우에다는 <이코>의 미로로 돌아가면서, 외침과 제스처에 주목한다. 이름 없는 소년을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퍼즐을 풀거나 적과 싸울 때 외침과 손짓으로 토리코를 불러와야 한다. 플레이어가 동원해야 하는 번거로운 외침과 제스처는 신뢰와 감정을 긴밀하게 쌓아가고, 마침내 최후의 순간 눈물 짓게 만들며 역치를 쌓는다. 아쉽게도 토리코의 인공지능 디자인은 아직 매끄럽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결말의 제스처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은 유효하다.

 

이 정서를 안개와 미로의 정서라 부르고 싶다. 실제로 <이코>의 소설판을 담당한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판 부제를 안개의 성이라 붙였는데 통찰력 있는 표현이었다. 안개는 시야를 가리고 정보를 차단한다. 하지만 안개는 동시에 우리 주변을 둘러싸면서 이상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안개 너머에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요컨대 안개는 어드벤처 장르의 본질이자 모험의 은유며, 우에다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안개 너머에 도달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 경외감은 드넓은 지평선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폐허가 된 성이기도 하며, 살아 움직이는 거상이기도 하며, 날개 달린 독수리이기도 하다. 우에다가 고립된 폐허와 자연, 소년소녀 주인공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미지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문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문명은 어른들이 만들었기에, 소년 소녀만이 문명 바깥 안개로 향할 수 있다. 소년 소녀들은 숙명적으로 안개의 미로에 이끌리고, 거기서 함께할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끝내 안타까움을 겪어야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의 결말은 그 점에서 우에다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우에다는 마치 유년 시절 겪었던 신비로움과 두려움, 안타까움, 관계의 절실함을 잊지 않으려고 게임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우에다 후미토를 구조의 혁신가라 부를 수 있다면, 신비로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시적 표현을 구체화하기 위해 게임 장르라는 구조를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에다는 놀이와 유희라는 비디오 게임의 본질과 숙명적인 신비로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있다. 때문에 우에다 후미토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어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동료의 손을 잡고 달릴 수 있을까? 레벨 업 없이 거대 보스를 잡을 수 있을까? 괴물을 징검다리 삼아 넘어갈 수 있을까? 독창적인 시적 표현으로 장르를 재구성하는 그의 방법론이 무수한 추종자를 낳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저니>, <라임>, <A.E.R.>,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이코>, <완다와 거상>은 이미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라면 참고해야 할 게임이 되었다. 최초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우에다 후미토는 게임에서 구조와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으며, 그 실험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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