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원초경』의 ‘한국 영화(사)’ 서술에 관해(1)

텅 빈 아카이브에서
세계적으로 무성 영화의 2/3이 유실되어 있다. 특히 식민시기 아시아 영화들은 필리핀의 영화사가 닉 데오캄포가 “문화적 집단 학살”이라 부를 정도로 쾡한 아카이브만이 전해지는데, 그 중에도 식민 통치와 군사 독재를 연이어 경험한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1998년 첫 발굴 전까지 식민시기 영화가 한 편도 남아 있지 않았을 정도다. 2014년 현재에도, 식민시기 영화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아리랑>이 아직도 복원되지 않았으며, 다른 많은 영화들 역시 시나리오나 방송극 대본 같은 잔재로 혹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투사된 것이나 투영된 것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많은 기성 영화사가들은 텅 빈 아카이브를 기원에 대한 강박으로 채우거나,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연구의 막다른 골목으로 보거나 기존 연구와 동일한 서사를 반복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근대의 원초경』의 저자 김소영(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은 이러한 연구를 지양하며, 동시에 이러한 경향들을 징후로 읽자고 제안한다. 김소영은 보다 생산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식민시기의 아카이브를 영화사 연구의 대안적 방법론을 찾는 출발점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영화사를 기술하는 방법론으로 본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대의 원초경’적 방법론을 제안한다.

 

근대, 근대성, 경, 원초경
먼저 본 저서를 꿰뚫는 키워드는 제목이 환기하듯 ‘근대(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근대성은 다른 한국영화사 서술에서 쟁점으로 던져졌던 근대화나 발전 담론과는 다른 괘를 그린다. 김소영은 영화학자 레이 초우의 <원시적 열정>과 역사학자 하루투니언의 작업처럼, 비서구에서 모더니티라는 논점을 비롯하여 성차적 모더니티, 그리고 모더니티와 영화라는 시각장치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한편 ‘원초경’이란 용어는 프로이트의 개념인 ‘원초적 장면’을 전유한 것으로, “아이가 보고 환상을 품으면서, 해석한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 행위, 성폭행, 그리고 부모의 성관계를 지칭”한다. 김소영은 여기서 장면을 ‘경(鏡)’으로 치환하며, 영화 같은 “기계 복제 이미지들로 구성되는 근대 시각장의 기원적 순간, 조선 영화의 첫 장을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로 확장시킨다. 그러니까 ‘경’이라는 표현을 통해 거울이라는 시각적 영역을 가리키는 동시에, 회상된 사건 즉 해석된 사건이라는 점 역시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정신분석학에서도 원초적 장면에 대한 구성은 해석적 실행의 장으로 여겨진다. 이는 “사건이라는 개념을 존재론의 지반에서 전치시키고 존재론적으로 미결정된 상호텍스트적 이벤트를 의미하면서 역사적 기억가 상상적 구성, 아카이브적 진실 증명과 상상적 자유 유희 사이의 특이 공간에 위치”하게 되는데, 김소영은 일종의 계보학적 시도를 염두에 두며 원초경의 특이 공간, 사이공간을 해석하려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초경은 서로 다른 영역이 마주치는, 긴장이 상주하는 곳인 경계(境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유는 김소영의 저작들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김소영은 영화이론가이자 평론가, 그리고 감독으로서 그간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통해 반 주변부라는 경계에 위치한 남한이 처해있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새로운 역사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경’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는 김소영의 여성사 다큐멘터리 3부작 중 하나인 <황홀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근대의 원초경』은 이러한 김소영식 사유 혹은 문제의식의 일관성 있는 연장이자, 식민시기 한국영화에 대한 방법론적 제안이자 시도다. 이 책에는 거장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더불어 현대영화이론과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역사학이 한 텍스트 내에서 절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근대의 원초경’을 조선 영화의 기원 지점, 초창기 영화사에 하나의 방법론이자 전망으로 도입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식민시기 영화들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기억과 상상적 구성, 아카이브적 진실 증명과 상상적 자유 유희’ 사이에 영화적 배열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론이야말로 “현실과 환영 안에서, 또 그 사이의 문지방적 공간인 영화”, 특히 비/가시적 영화로 존재하는 조선 영화를 이론적으로 가시화 할 수 있는 방법론적 실마리일 것이다.

 

강박과 함정을 피해 한국영화 탐험하기
김소영은 그간의 한국 영화사 서술이 “식민지 조선 영화에서 해방기 영화를 거쳐 내셔널 시네마로서의 한국 영화를 향해가는 선형적 과정으로 설정하고 각각의 단계를 그 한국 영화의 단위의 완성을 위한 단계”로 보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근대의 원초경』은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나 유현목의 『한국영화발달사』등 여타 한국영화사 저작처럼 한국영화 전체를 서술하려는 강박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저작들이 목차를 연대기 순으로 정렬한 데 비해 『근대의 원초경』에서는 경향적인 연대기의 흔적만 남아있다. 김소영은 특정 작품이나 장르를 중심으로 시대적 상황과 키워드에 맞게 재배치해내며, 통상적인 시기구분을 따르면서도 나름의 독특한 해석과 계보학으로 재구성한다. (다음 호에 계속)

(박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