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EPARTMENT SEOUL – ‘롱 라이프 디자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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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과 한강진역의 중간, 그 골목 사이 사이에는 수수께끼 같은 상점들이 숨어있다. <아마도 예술>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언덕 중턱에 조금 규모가 있는 상점이 있다. 상점의 이름은 디앤디파트먼트 서울(D&DEPARTMENT SEOUL)이다. 유리창 너머엔 여러 물건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손님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놓여있다. 상점의 조명은 물건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들어온 손님을 편하게 한다. 이곳의 물건들은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성이 있다. 물건을 들어올려 만져보거나 점원으로부터 물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카미 글라스(KAMI GLASS)라는 나무 재질의 컵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여느 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를 아주 얇게 다듬어 만들어진 이 컵은 두께가 2mm가량이어서 플라스틱보다 가볍고 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2mm로 얇게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수분과 수축량을 오랜 시간 동안 조절한 후 장인이 표면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 이쯤 되면 이 상점이 장인이 만든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뒷 진열장에서는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보던 에메랄드색 떡볶이 접시와 모나미 볼펜도 진열되어 있다. 도대체 이 상점은 뭘 파는 곳일까.
디앤디 서울 매장 한쪽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 디앤디파트먼트는 다섯 가지 기준을 가지고 올바른 물건을 선정합니다.” 그 다섯 가지 기준은 첫째,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해. 둘째, 먼저 사용해본 물건. 셋째, 되사서 다시 팔 수 있을만한 수명의 물건. 넷째, 수리해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물건. 마지막으로는 제작자가 꾸준히 만들 물건이다. 매장에 진열된 물건은 이 다섯 가지 기준 아래 놓였다. 디앤디의 창립자인 나가오카 겐메이는 올바른 소비를 만들고 지역의 제조업을 지키기 위해선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보다는 이미 ‘잘 디자인된’ 물건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디앤디에선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롱 라이프 디자인’은 그야말로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이다. 여기에는 선인의 지혜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오던 전통 공예품도 있고 평소에 우리가 항상 사용해오던 일상용품, 그리고 오래 쓰게 만드는 매력적인 물건도 포함할 수 있다. 매장 한쪽에 있었던 다섯 가지 글은 바로 ‘롱 라이프 디자인’을 나가오카 겐메이의 시선에서 고르는 기준이다.
디앤디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굴하면서 가격 경쟁이나 새롭고 화려한 디자인에 밀려, 좋은 물건인데도 사라져야만 하는 현재 소비와 생산 구조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잘 디자인된’ 물건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점점 사라진다. 소비자는 겉으로 보기에 두 가지 물건이 같아 보인다면 싼 물건을 선택할 것이다. 중국산 태국산 등 외국에서 값 싼 물건이 들어오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국내 제조업 회사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결국엔 회사 문을 닫거나 제조업을 포기한다. 물건을 가격이나 겉으로 보이는 것들로 판단하게 되면 제조업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먼 미래에는 소비자에게 더 큰 피해가 간다. 소비할 수 있는 선택권이 줄어들어 저질의 상품을 다른 비교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골라야만 할 수도 있다.
담양 지역의 대나무 제품은 이런 위험에 처해 있다. 담양 지역은 대나무로 유명해 죽녹원 같은 유명 관광지 옆에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기념품을 판다. 그런데 사실 이 제품의 80%가 수입 대나무로 외국에서 제조되었다. 대나무 장인이 많이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 가격 경쟁에 밀린 이유가 가장 크다. ‘진짜’ 담양 대나무제품이 자취를 감추면서, 만들 수 있는 종류도 크게 줄었고 이제는 볼 수 없는 물건도 많다. 디앤디는 담양의 대나무 제품이 그런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하고 한국의 ‘롱 라이프 디자인’으로 담양 지역의 남상보 옹이 만든 ‘진짜’ 담양 대나무 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한다. 디앤디의 한국 ‘롱 라이프 디자인’인 ‘코리아 셀렉트’ 중에는 시장에서 두부장수가 팔던 두부판도 있었는데 이 플라스틱 수납 물건은 내쇼날푸라스틱에서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생소하지만 내쇼날푸라스틱은 1968년부터 지금까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있는 장수 회사다. 흔히 볼 수 있는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휴지통도 원래는 내쇼날푸라스틱에서 처음 만들었지만 중국산 휴지통과 가격경쟁에서 밀려 이제 만들지 않는다. 내쇼날푸라스틱처럼 오래도록 제조업에서 종사하는 회사도 드문데 그렇게 남은 회사조차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물건을 지속적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오랜 전통의 제조 회사에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물건을 생산하게 되면, 꾸준히 이어나간다. 나가사키현의 ‘롱 라이프 디자인’인 일본의 G형 간장 그릇은 모리 마사히로가 백산 도기(하쿠산 도기)에서 디자인해 195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생산되고 있다. 이 간장 그릇은 질리지 않는 생김새를 갖추고 뚜껑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간장이 나오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성이 있다. 백산 도기는 나가사키 현 하사미정의 도자기 회사로 1779년에 만들어져 200년간 도자기를 만들었고, 100점이 넘는 도자기가 굿디자인, 혹은 롱 라이프 디자인 상을 받았다. 이 간장 그릇 또한 1961년도에는 굿 디자인 상을, 1977년도에는 롱 라이프 디자인 상을 받았다.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일본은 이미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일본의 권위 있는 디자인 공모전인 ‘굿 디자인 어워드(GOOD DESIGN AWARD)’에선 따로 ‘롱 라이프 디자인’ 부문을 만들어, 가격이 터무니없이 싼 일용품이거나 특별히 화려하지 않아도 오랜 기간 영향력을 발휘한 물건이라면 상을 준다. 자칫 가격 경쟁에 또는 다른 물건의 새롭고 화려한 모습, 뛰어난 기능성에 밀려 사라질 수 있는 좋은 물건도 다시금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일본 제조업이 좋은 물건을 오래도록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디자인계에서 ‘롱 라이프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있지만 일본 제조 회사 스스로 ‘모노즈쿠리’라는 정신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모노즈쿠리’라는 말은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장인정신이 제조문화에 깃든 것인데 ‘모노즈쿠리’를 표방하는 제조 회사는 굉장한 자부심을 품고 이익보다도 먼저 물건 자체에 혼을 깃들인다. 디앤디 서울 매장 한쪽에 진열된 트루스코의 툴박스는 평범한 도구함처럼 보이지만 ‘모노즈쿠리’가 깃든 물건이다. 트루스코는 TRUST+COMPANY의 합성어로, 회사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트루스코의 툴 박스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 도구를 보관하는 함인데 전문 장인들도 인정하는 높은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이 비싸지 않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윈-윈’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상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서 소비와 생산이 지속해서 순환해야 한다. 디앤디는 가격 중심으로 판단하는 소비문화를 개선하고 지역의 고유한 상권을 지키기 위해 지역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굴한다. 일본에서는 현재 일곱지역에서 그 지역의 상권과 손을 잡고 각 지역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소비자에게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밀리미터밀리그람(MILLIMETER MILLIGRAM)과 손을 잡고 서울에 통산 8호점을 열었다. 디앤디 서울에서는 발굴한 물건을 소비자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있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물건을 체험할 수 있도록 ‘디 스쿨(d-school)’이라는 워크샵을 열기도 한다. 얼마전 디 스쿨 서울에서는 ‘코리아 셀렉트(Korea Select)’인 삼화금속 가마솥의 사용법과 관리법을 알려주었다. 이날 워크샵에서는 스태프들이 가마솥을 사용한 경험과 가마솥의 생산과정을 알아보고, 비슷한 일본 상품인 ‘무수나베’의 소개도 이루어졌다. 워크샵을 통해 소비자는 제대로 된 물건의 쓰임새와 의미를 알게 되고 이는 가격 중심의 소비가 아닌 경험 중심의 소비로 이끈다. 디앤디의 이런 작은 행보가 제조업의 생산 그리고 소비 구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느냐만은 디앤디가 표방하는 ‘지역다움’과 경험 중심의 ‘롱 라이프 디자인’은 많은 디자이너와 소비자 그리고 제조 회사에 어떤 가치를 제시해 줄 것은 분명하다.

(박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