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류 :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난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녀일 뿐”

 

시즌 2 오프닝
시즌 2 오프닝

 

현재 넷플릭스에서 전시즌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중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는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탈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찰일기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과 신경증 사이 상관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뮤지컬 드라마이다. 뮤지컬 장르로 신경증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결정은 일견 아이러니해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조울증, 경계선 인격장애에 뮤지컬만큼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프레임 내부에 위치 짓고자 이리저리 움직인다. 풍경은 인물의 춤과 노래 속으로 스며들어 자신을 찬미한다. 사랑이라는 듣기 좋은 관념은 한 여성, 레베카 번치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레베카를 둘러싼 온갖 시청각 매체를 매개로 침략을 진행한다. 침략당한 레베카는 사랑의 찬가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뉴욕 로펌의 잘 나가는 변호사인 레베카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겪는 조울증 환자이다. 고등학생 시절 난생처음 사랑한 남성, 조쉬와 마주친 레베카는 이 만남을 신의 계시로 간주한다. 그리고 조쉬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웨스트코비나로 이사해버린다. 그 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신 나간 전 여친’이라는 어구의 여성 혐오적인 측면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정신 나간 일들뿐이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처럼 레베카도 버림받기 두려워하며 상대에게 떠나지 않으리라는 확인을 계속 요구한다. 애정의 확인은 집착으로, 집착은 범죄로 이어진다.

 

레베카는 충동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해리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레베카에게 현실, 곧 삶은 종종 춤을 추는 이미지 안에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현실은 이미지로 구성된 환상과 같다. 레베카가 존재하는 이미지는 1933년도 뮤지컬 영화 <42번가>에서 비욘세가 2016년도에 발표한 비주얼 앨범 프로젝트 <레모네이드>까지 이어지는 시청각 매체의 역사를 패러디하며 나타난다. <밴드 웨건>이나 <사랑은 비를 타고>와 같은 고전적인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패러디, 전유란 뮤지컬 장르가 유용하게 써먹는 기술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전유는 특별한 위치에 서 있다. 전유의 과정에서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가 레퍼런스들을 대하는 태도는 애정이 아닌 불안이다. 불안, 불신, 증오는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정신병동으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는 마음이다.   

 

레베카는 세 시즌 내내 자신의 발자국을 뒤따라 걸으며 그 궤적에 갇혀버린다. 사랑은 반복적으로 레베카를 골병에 빠뜨린다. 그에게 사랑은 재생산의 논리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기를 반복할 때, 레베카는 사랑의 노동력을 다 소진한 줄도 모른 채 감정에 금을 내어가며 다음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레베카는 어째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이미지, 환상에서 존재하기를 지속하는 것일까? 레베카는 관계를 맺고, 약속을 지키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대중매체가 끊임없이 재현하는 사랑의 형상으로 존재하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은 사랑의 양상이지 사랑이 아니다.

 

시즌 3 에피소드 13
시즌 3 에피소드 13

 

극의 마지막 10분에 이르자, 법정에 선 레베카는 자신의 발자국을 뒤따라 걷기를 거부한다. 레베카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나데니얼은 레베카에게 정신병력을 강조해 무죄 판정을 받으라며 “우리 모두 유년기 트라우마의 형상일 뿐”이라는 노래까지 부른다. 레베카도 나데니얼의 노래에 동참해 새로운 사랑을 약속한다. 하지만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는 시청자와 화합을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레베카는 법정에서 스스로 유죄를 선고한다. 레베카는 이 순간을 유일무이한 친구인 폴라와 함께 쇼트(shot)-역 쇼트(reverse shot)로 향유한다. 폴라는 친구의 수감 가능성에 절망하는 대신 뿌듯한 표정을 비춘다. 이때 레베카는 환상, 뮤지컬을 거치지 않은 선택을 내렸다. 레베카의 친구들은 환상이 벗겨진 장소에서 그녀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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