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4월 14일

소년은 본인이 네오라고 생각하려다 말았다

우리는 사람. 우리는 오해하고 스쳐 지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모든 것은 움직이며 시차를 만들어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질 낮은 해상도를 가진 우리의 감각. 우리의 나약한 인식은 오차와 왜곡으로 수렴한다. 종종 우리는 선후 관계와 인과관계 사이에서 길을 헤매기도 한다. 우리는 자주 미워하고 많은 것들을 감춘다. 부끄러운 생각들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의 것을 포착하지 못한다. 또 우리는 자주 절망한다. 위계와 지표 사이에서 우리 모두 한 번씩은 외로웠다.

 

원뿔은 밑에서 보면 원이지만 앞에서 보면 삼각형이라고. 우리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위치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시공간은 너무나도 쉽게 생략되고 세상은 표준화되고 단순화된다. 사람들은 모여 집단을 이루고 유치한 규칙들을 정하고 경계를 만든다. 모두 너무나도 쉽게 손가락질한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들은 울부짖는다.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손가락질당한다. 갖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또 우리는 소유한다. 필요 이상으로, 혹은 모자라게. 세상에는 충분히 많은 집과 음식이 있지만 모든 겨울은 사람을 죽였다. 나는 그런 것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괴롭힌다. 우리는 질투하고 해를 끼친다. 우리는 험담하고 거짓을 말한다. 우리는 얼굴을 붉히기도, 억지로 웃기도 한다. 가끔은 도망치기도 한다. 때에 따라 우리는 근육을 다르게 쓴다. 자세와 몸짓, 목소리와 표정이 바뀐다. 우리는 꾸미고 위장한다. 아무래도 허영을 걷어내는 방법은 없나 보다. 또 우리는 욕망한다. 아주 많이. 그러므로 우리는 매혹하고 매혹당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의지한다. 우리의 상상력은 수많은 허상을 발명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기댄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름밖에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무엇에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우리가 나는 가엾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왜 누가 죽어야 하나. 왜 어떤 사람은 잘 곳이 없을까. 왜 우리는 서로에게 박탈감을 전해야 하나. 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어째서 무기를 만들고 총구를 겨눠야 하나. 권위는 어디에서 생겨나며 그 지위를 차지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과 다른 것은 무얼까. 우리는 왜 우리를 구분 짓고 소외시키고 격리하나. 우리 아빠는 무엇 때문에 불평도 없이 매일 회사에 가나. 장조와 단조, 화음과 불협화음, 도레미파솔라시도는 누가 정한 것일까. 그 사이음들은 음악이 될 수 없나. 곡선뿐인 우리의 육체가 어째서 이렇게 네모반듯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걸까. 규칙과 권위, 관습 같은 것들은 어째서 이렇게 힘이 셀까.

 

우리는 어째서 주어진 것들에 반응만 하며 살아가나. 수동성이라는 고질병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 걸까. 편견과 고정관념, 그 모든 일반화와 범주화를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제한적인 삶을 살아가는 걸까. 왜 우리는 검열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숨기고 감춰야 하는 걸까. 왜 밥은 같이 먹으면서 똥은 같이 싸지 않는 걸까. 그 모든 기준과 규칙은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 어째서 사람들은 정규분포표 같은 거로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외계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사가 열일해서 외계인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그들의 생김새와 언어. 그들의 생활 감각과 삶의 모든 형태를 보고 모든 속박이 풀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람. 세상은 흘러왔을 뿐이다. 세상은 이쪽으로 흘러왔을 뿐이다. 이곳은 겹겹이 반사되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무수히 많은 세상 중에 하나. 문이 열리면 저쪽의 나와 이쪽의 나는 서로 얼마나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까. 세상은 흘러왔을 뿐이다. 절대성이라는 허구. 그것이 삶을 앗아가는 게 두렵다. 그러니 이 흐름에 흠집을 내자. 저항하고 거부하자. 우리는 불평가, 문외한, 몽상가, 낙오자, 불법 거주자, 눈엣가시. 멈추지 말고 F5를 누르자. 어떠한 경우에도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자.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고 분노하자.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만큼 세상을 사랑하자. 우리가 말하고 쓰는 만큼 살자.

 

 

고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