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4월 14일

내 안의 융합, 나와 너의 융합, 우리와 사회의 융합

ⓒ 태싯그룹 - Six Pacmen (2013)

ⓒ 태싯그룹 – Six Pacmen (2013)

 

내 안의 융합

초등학교 때 세운상가에 종종 가곤 했다. LED, 저항, IC, 기판 등등 온갖 전자 부품들은 나를 언제나 설레게 했다. (특히 LED는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상기시킨다) 당시 월간지 “라디오와 모형”이나 “디지털 게임기 제작집” 같은 책이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였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운상가에서 사 온 부품들을 기판에 납땜하여 라디오를 만들거나 게임기를 만드는 일은 나의 일상이었다. 나의 꿈은 언제나 공학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바꾼 것은 쇼팽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들었던 그의 피아노 작품은 하루아침에 나를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예술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집안에서, 부모님은 이를 상당히 당황스러워하셨으며 꽤 오랜 기간 나의 새로운 꿈을 반대하셨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유일한 정보의 창구는 서점과 음반 가게였다. 나는 세운상가 대신 부모님 몰래 교보문고와 동네 음반 가게를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현재는 컴퓨터와 여러 가지 전자 기기들을 통해 음악을 만들고 있으니, 결국 둘 모두를 하는 셈이다. “내 안의 융합”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와 너의 융합

10년 전인 2008년에 나는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 (예술전문사 3년 과정이다) 학생들과 함께 일종의 창작 그룹을 시작했다. “태싯그룹(Tacit Group)”이 그것이다.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고 작품을 만들어갔다. 음악테크놀로지과의 학생들은 대체로 나와 비슷하게 “내 안의 융합”을 어느 정도 이룬 사람들이다. 음악 외에 다른 분야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와 너의 융합”은 서로 너무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면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대신, 내 안의 융합을 이룬 사람들이 모일 때 빛을 발한다. 1999년 유학을 마친 후에 수많은 융합적 작업을 했지만, 너무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는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스스로 융합적인 작업을 하고 있던 사람들과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후 2009년부터 태싯그룹은 학교에서 나와 전문적인 오디오비주얼 공연 그룹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국내외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고, 수많은 “융합예술”의 가능성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올해 10주년 공연을 준비 중이다)

 

우리와 사회의 융합

우리학교 융합예술센터는 2015년 11월 문을 열었다. 영광스럽게도 내가 초대 센터장을 맡게 되었는데, 사실 센터가 문을 열기 전 많은 교수님과 직원분들의 오랜 수고가 있었다. 융합예술센터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하나는 학생들의 융합적 작품 창작을 돕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만들어진 작품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연과 워크숍, 창작지원 공모 사업, 플랫폼 사업, 그리고 외부 기관과의 협력 사업 등을 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창작지원 사업은 캔파운데이션과 협력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창작 결과물을 외부에서 전시 혹은 공연의 형태로 발표하게 된다. 또 다른 사업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의 협력을 통해 판교 ICT문화융합센터에서 “아트 게임(Art Game)”이라는 주제의 강연과 워크숍 등을 준비 중이다.

 

융합예술센터가 학생들의 융합적 작업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그 결과를 외부로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융합적 창작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기존 예술 씬에 영향을 끼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소위 “융합 예술”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실험하고 싶은 것이다.

 

융합에의 도전

소위 “융합 예술”은 기존의 예술과는 뭔가 다르지만, 아직 정의하기 힘든 무엇이다. 즉 아직 답이 없는 분야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전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나는 우리학교 학생들로부터 “융합적”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학교의 모든 학생이 다 융합적 사고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 안의 융합”은 달라지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온갖 테크놀로지를 아기 때부터 경험해 온 세대는 분명 그렇지 않은 세대와는 다른 상상을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고 융합예술센터를 통해 그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을 보고 싶다.

 

 

장재호 교수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