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의 변 – 유병서 인터뷰

8

 

유병서(영상원 영상이론과 05 입학, 12 졸업)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생회관을 ‘개척’한 여러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석관동 새 캠퍼스 건물이 지어지면서 비워진 건물을 친구들과 점거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살았다. 의릉 건너편 무대제작실습소와 함께 있는 낡은 건물은 어느새 ‘학생회관’이 되었다. 그게 2007년 즈음이었다.
이후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겨울 ‘예술가들의 서바이벌’을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에 출연했다. 평소 들어왔던 그에 대한 평판은 극과 극이었다. 의도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좋은) 평도 있었고 진정성이 없다는 (나쁜) 평도 있었다. 한예종 졸업생으로서, 또는 작가로서 어떤 사람인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인터뷰는 4월 23일 경복궁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진행됐다.

선나리 “05 학번이면 황지우 총장이 재임하던 때인가요?”
유병서 “그렇죠.”
선 “사실 저로서는 ‘유병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학생회관’이거든요.”
유 “그때 새 캠퍼스 건물이 지어지면서 원래 있던 학교신문사 등이 빠졌어요. 그래서 그 건물 1층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었어요. 따고 들어가서 열쇠를 바꿨죠. 다들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뭔가를 선언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때 동아리연합회장도 했었는데 그걸 방패막이로 썼었죠. 그때만 해도 동아리방이나 학생회관이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를 하면 학기 초에 200만원씩 줬어요.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처음에 얘기했던 게 ‘돈 주지 말고 공간을 달라’고 했었죠.”
선 “학교한테 돈을 안 받겠다.”

그는 갑자기 황지우 전 총장 시기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이른바 ‘한예종 사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황 전 총장과 심광현 교수가 징계를 당했고, 야심차게 추진하던 U-AT 사업은 엎어졌다.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복직은 이루어졌지만 어떤 상처는 그대로 남았고, 당시에 존재했던 문제는 사건에 휘말린 채 묻혀버린 경향도 있었다.

유 “그리고 시인이 행정가가 되었을 때 당연히 따라붙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행정이라는 것은 어떤 배제 매커니즘의 수장이니깐, 우리가 익히 아는 피가 거꾸로 솟는 어떤 시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이미지였죠. 그걸 매우 낭만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었죠. 하루는 조교실에 갔는데 청소를 하더라고요. 김명곤 전 장관이 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때 스크린쿼터 문제도 있고 해서 데모를 할 테니 교문 앞에 모여 달라는 글을 올렸어요. 황지우 총장한테 전화가 왔죠. “데모를 해야 되겠나?” “해야 되겠다.”
학내에 있던 이른바 진보 인사들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비판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정치와 예술이 만날 때는 첨예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문화와 생산, 노동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봤어요.
예술가가 정치에 휩쓸려들어갈 때 어떻게 소화해내냐는 문제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 잘못을 어떻게든 우리가 학교 안에서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때 한예종 사태가 터져버린 거야. 도처에 사안을 명쾌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 붙어서 마치 그것을 운동처럼 하는 것을 보고 사실 좀 아니다 싶었죠. 근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어느 날 시청에 갔다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를 봤는데,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한 사람을 대할 때 예술적인 부분과 그 바깥 부분들, 현실적 부분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찰스 부코스키 같은 소설가는 예술적으로 훌륭하지만 여자 패는 망나니였다고.
두 선생님의 징계는 어떻게 보면 교수라는 상징자본이 아니라 그들의 일자리 문제인 거예요. 정치적 이유로 해고당했을 때 실존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리고 그 실존적 저항에 인간적으로 도와준다는 것도. 그 맥락을 저는 생각 못했어요.”
선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비대위가 그렇게 활동했는데 정치적 자산으로 남지도 못했고, (근래 총학생회가 추진했던) 학생회관 사업도 지리멸렬하고, 영감다방도 또 망하고, 생협도 공식적으로 엎어졌어요.”
유 “점거라는 게 버려진 공간을 의미 있게 탄생시킨다는 거잖아요. 그전에 있던 조합이나 동아리 같은 조직은 어떤 관습적인 것들이었는데, 지금 시대에 맞지 않아요. 지금 세대들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재구성을 해야 하는 것 같고, 공간 하나를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게 당연히 어렵죠. 학교와 너무 거리가 가깝게 되었을 때 생각할 문제도 있고.
결국에 대학이란 것은 자기 삶에 대해서 예술이란 뭔지, 문화란 뭔지, 영화가 뭔지 자기 삶에 대해 정교하게 질문하는 시간인데 그런 건 학교에서 알려주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문제의식을 정립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근데 한예종 같은 대학에는 동아리가 맞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자율적인 모임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고 봐요.”
선 “가능할까요?”
유 “이제 가능하게 해야죠. 그때 우리는 공간 문제라고 봤거든요. 그 거점을 확보하는 게 우리 세대에선 급선무였고, 다만 그런 자율적 움직임들이 학교라는 시스템과 맞아버리는 순간 날이 무뎌질 우려가 있어요. 구조를 지탱할 힘이 없어진다고요. 결국 (자율적 움직임이 활동할) 구조적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게 협동조합인데, 그것도 다 지원금 받아서 하잖아요. 망할 수밖에 없지. 주체를 바로 세우는 게 대학교 과정이죠.”

그는 말을 한번 꺼내면 멈추지 않았다. 말을 자르기도 쉽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최근 출연한 <아스코> 얘길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최근 ‘아스코 참여기’를 게재하기도 했었다. 근래 활동에 대해 물었다.

선 “프로그램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유 “주변에서 권유가 있었죠. 저도 처음엔 많이 비판했는데, ‘아트로 서바이벌을 해?’라는 질문에 ‘왜? 하면 안 돼?’라는 되물음이 오면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사실 한예종 들어올 때도 다들 시험 보잖아요. 미술 관련 작가상도 서바이벌 구조이고. 결국 문제는 심사 프로세스가 블랙박스라는 데 있죠.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근데 이 프로그램의 기본적 성격은 블랙박스를 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로세스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겠고. 그래서 ‘그냥 있지 말고 한번 안으로 들어가서 즐겨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개인적으로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전환점을, 마치 유학을 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작년 겨울에 촬영을 시작했죠.
선 “왜 영상이론과에 들어갔어요?”
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영화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과 답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먼저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상이론과에 입학했고.) 그런데 영화계의 실물이나 한국의 영화 매커니즘이란 게 아주 짜증난다고. 영화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그 시선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미술은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술계에 기웃거려도 봤는데 미술계도 영화계만큼 그렇더라고요. 계보 따지고, 출신 따지고….”
선 “개인적인 우려나 걱정 같은 건 없었나요?”
유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재연되는 데 대한 부담이 있었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과거의 만행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근데 카메라에 비춰지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제작진의 노고랄지,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도 굉장한 재미였고. 마치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재밌었어요.”
선 “본인은 만족하세요?”
유 “텔레비전 나오는 것에 대해선 부끄러움이 있죠. 재밌게 작업하고 재밌게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사실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예술이 왜 사회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게 단순히 재미만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이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짜 예술가들이 보면 “저 새끼 저거…” 하겠죠. 근데 그런 비판들도 맞으면서 크는 거니깐.”
선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고, 물론 저는 진정성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예전에 누가 저한테 그랬어요. 자기는 유병서가 진정성이 없어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는 ‘개인적인 진정성’과 ‘프로그램에 대한 진성성’을 나눠 답변했다.

유 “(이 프로그램 안에서) 예술 못하면 죽는다고요. ‘아트 서바이벌’이니깐. 진정성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물론 실존적 죽음은 아니지만 프로그램 안에선 죽음이라고요. 가장 실존적인 프로그램죠. (개인적인 진정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모든 사람한테 진정성을 보여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에 대한 계기는 얘기해 볼 수 있겠지만, 진정성이 없어서 싫다 그러면 ‘네 죄송합니다’ 할 수밖에 없죠.”
선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점은 없다고 보세요? 차지량 씨는 초기 불공정 계약 같은 문제를 이슈화하려고 했는데 좀 묻힌 것 같아요. 본인도 그 계약서를 받았죠?”
유 “쭉 읽어봤죠. 사실 끝까지 읽진 않았어요. 제작사와 계약이라기보단 제작진과 약속 같다고 느꼈거든요. 계약 자체라는 게 원래 불공정한 거예요. 갑과 을이 하는 거란 말이지. 빌렘 플루서 같은 사람들은 프로그램의 문제를 두고 블랙박스라고 했죠. (플루서의 프로그램이란 기계장치에 장착된 전자회로의 연산원리과정으로, 플루서는 이를 밖에서 그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적 기제로 바라봤다. 여기서는 시청자가 티브이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비행기도 블랙박스가 있고 항상 문제가 있지만 사고가 나기 전까진 열어 보지 않죠. 프로그램의 경우는 결국 시청률이거든요. 씨제이이앤엠(CJ E&M)은 여기에 70억원을 들였어요. 전부 다 스폰서로 만든 거였어요. 그러면 시청률을 답보하기 위해서 캐릭터 간의 갈등 구조를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어떤 감정선을 가지고 캐릭터 간의 갈등 구조를 신파적으로, 또는 유치하게 밀어붙인다고 해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포화상태잖아요. 나중에 평가를 받겠죠. 새로운 걸 발견 못하면 당연히 도태될 것이고.”
선 “예술이 흥미위주로 변질되는 것 같다는 물음이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이니깐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 “당연히 재밌어야죠. (제작진들이) 잘할 것 같아요. 워낙 선수들이니깐. 근데 재미만 있으면 <개그 콘서트>죠. 사실 지금까지는 키치였죠. 그럼에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대중이 할 일이고. 질문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재미가 없는 게 제일 큰 문제겠죠.”
선 “4화는 좀 재밌을까요?”(<아스코>는 26일 현재 3화까지 방영됐다.)
유 “몰라요(웃음).”
선 “<아스코>에 대한 다른 글들도 읽어 보셨나요? 어떤 글은 ‘방송 종료 이후에 차지량과 유병서는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어요.”
유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어요. 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어요. 말은 칼이 될 수 있거든요. 평론가는 사회적으로 지닌 포지션도 있고. 물론 걱정이 되죠. 제가 작가라고 불리는 것도 그렇고, 작가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일 테고, 중요한 건 계속해서 어떤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자기가 작업할 조건을 자기가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은 고민이 많이 돼요. 지금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에 먹고 살면서 작업해야 하는 이중 문제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저는 물질적인 작업은 하지 않으니깐 팔면서 살 수도 없고, 돈은 어떻게 벌지? 근데 그걸 해결해나가는 방법도 하나의 미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름대로는 목숨을 걸고 있어요. 정리하면 걱정 많이 되죠. 좋은 작업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계속 작품을 이어나갈지에 대해.”
선 “구상하고 계신 게 있나요?”
유 “올해 잘하자, 이런 거죠. 난지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 있거든요. 1년 레지던시이니까 올해 말까지에요. 작가들도 되게 사이도 좋고. 예정된 전시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제 잘하자, 이런….”

다른 기자가 최근 개관한 영등포 커먼센터에 가봤느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난호 신문에도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지만, 지금 커먼센터는 <오늘의 살롱> 전시를 열고 있다. 영등포역 사창가 근처에 있는 낡은 건물에 입주한 커먼센터는 건물의 세월을 그대로 드러낸 방과 벽 위에 작품 148점을 걸었다.

유 “예전에 커먼센터 디렉터 하시는 분이 트위터에서 제 이름을 언급하며 막 욕한 적이 있어요. 좀 놀랐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나중에 보니깐 여기저기 이름이 올라오고 하길래 궁금해서 한번 가봤어요. 저는 보고 좀 깜짝 놀란 부분이 있어요. 한번 가봤는데, 잘했어요. 자칫하면 장소에 휩싸일 수 있거든요. 근데 여기는 “우리가 돈이 존나 없지만 이 정도 공간은 돼야 해,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 또 “근데 우리는 우리 스타일이 있으니까 이걸로 갈 거야. 조명은 좀 없고 험블하게, 너희들도 알지? 감안해줘” 그런 태도가 좋았어요. 그리고 전부 다 평면이라서 좋았어요. 평면 전시회를 보기가 사실 어렵거든요. 그리고 작업물들에 힘이 다 빠져 있어요. 덕분에 작가들이 선명하게 보이죠.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실 이 인터뷰는, 사람들과 같이 <아스코>를 보던 중에 ‘유병서 만나서 얘기 한번 해보자’는 말이 나와 시작된 기획이었다. 하다보니 약간 중구난방으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흩어져 있던 질문과 답변들을 모아두었더니 어딘가 듬성듬성하면서도 재밌는 그림이 나왔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 정리된 원고를 받고도 그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유병서 씨는 말 한마디 한마디와 그 뉘앙스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말 때문에 열심히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본인에 대한 ‘나쁜 신화’가 강화되는 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고 했다. 부디 이번 인터뷰를 읽은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조금이나마 덜어냈으면 한다. (선나리, 유가온)

어떤 ‘작가’의 변 – 유병서 인터뷰”의 1개의 댓글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