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3월 28일

섹스 무비로서의 블랙 팬서

이제는 미남을 죽일 때다.

 

미인은 반드시 끝에 가서 죽는다. 할리우드 고전기 ‘작가 감독’들이 배태한 영화 대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악상을 끝맺지 못한 마를렌느 디트리히에게 총살을 가하는 조셉 폰 스턴버그의 <불명예>(1931), 로맨스를 생각하며 마을에 온 미인을 트라우마에 빠뜨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1963), 마릴린 먼로의 개인성을 사회적으로 말살한 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등 방식도 아주 다양하다. 할리우드 작가 감독들은 미인을 완전하게 대상화하는 작업에 모든 역량을 쏟은 뒤, 그녀를 죽인다. 이들이 이뤄낸 정전(正傳)은 작가주의라는 미명보다는 섹스 시네마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여러 이론가들은 할리우드가 미인을 죽여온 이유를 밝혀, 우리의 시각 체제에 끼친 악영향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로라 멀비는 할리우드 내러티브 영화 속 여성 이미지를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male gaze과 시각적 쾌락의 메커니즘에 대한 논리를 펼쳤다. 후대 페미니즘 영화 이론가들은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을 두는 위 이론의 사례들에 적절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그러나 시선의 주권을 쥐는 쪽은 남성이고, 시선의 대상으로 서는 쪽은 여성이라는 논리의 토대는 아직 유효하다. 그리고 남성이 주류인 영화계는 남근중심주의를 굳건히 하고자 여성 대상화를 강화한다. 죽음보다 대상화하기 쉬운 일은 없지 않은가.  

 

고전기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두 여성 감독은 다른 방향으로 악에 접근했다. 도로시 아즈너의 혁명적인 작품 <Merrily We Go to Hell>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기계로서의 사랑 개념을 부수었고 이다 루피노는 전 작품을 걸쳐 여성(과 남성)인물에게 로맨스가 아닌 감정을 할당했다. 이들의 계보는 현재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모두 할리우드의 남성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리우드 남성들이 낸 상처를 치유할 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 누구보다 할리우드의 남성들이 바뀌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블랙 팬서>는 할리우드 영화, 심지어 마블 제작 영화이다. 그 때문에 미국 영화가 구축해 온 특정적인 시각 체계가 거쳐갈 수밖에 없다. 미국 영화라는 맥락 아래에서 미인은 대상화에 희생되다가 끝에 가서 죽어야만 한다. 놀랍게도 <블랙 팬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대상화의 희생자이자 미인은 금발 백인 여성이 아닌, 흑인 남성이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할리우드 고전기에도 여러 남성 배우들이 섹스 심볼로 대상화된 적 있다는 반문도 있을 법하다. <블랙 팬서> 속 킬몽거의 경우, 아름다운 남성상을 향한 관객의 욕망은 이미지를 보는 경험과 동시에 충족된다. 반면 기존 남성 섹스 심볼의 경우, 영화는 배우의 이미지보다는 서사의 정황이나 인물의 성향을 통해 관객의 욕망을 생성한다. 사실상 이때 관객이 하는 일은 대상화라기보다는 감정 이입에 가깝다. <블랙 팬서> 이전까지의 관객이 스크린 속 남성을 받아들일 때 필요로 한 것은 감정이었지 눈이 아니라는 뜻이다.


<블랙 팬서>의 ‘미인’ 킬몽거는 뒷모습을 보이며 등장한다. 미인 살해로 악명 높은 히치콕의 <마니>의 첫 장면 역시 정면으로 걸어 나가는 마니의 뒷모습이다. <블랙 팬서> 속 다른 인물들이 왕족의 화법을 유지할 때, 킬몽거는 마치 혹스 영화의 미인들이 그러하듯 유쾌하고 속물적인 말투를 고수한다. 그리고 그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의 니노치카처럼 세계에 대한 아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느와르 영화에 등장하는 팜므파탈과 같이, 사회에서 통용하는 악의 편에 서서 유희, 또는 감정에 기꺼이 온몸을 내던진다. 카메라는 종종 킬몽거의 근육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클로즈업으로 양식화되고 파편화된 여성의 몸, 그 자체를 영화의 내용으로 만드는 스턴버그처럼 말이다. 킬몽거는 맨몸에 가운만을 걸친 채 돌아다니다가 결국 죽고 만다. 영화사에서 예시를 찾아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현대 시각 매체 속 여성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로는 <블랙 팬서>를 단지 성 기능을 뒤집은 재치있는 영화 정도로 오해할 소지가 크다. <블랙 팬서>가 정말 중요한 영화인 이유는 남성 성적 대상화를 하나의 경험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일에 성공한 데 있다. 시네마스코프의 평론가 아담 네이먼은 블랙 팬서에 대해  “블랙 팬서 자체는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마이클 B. 조던은 A++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지면의 한계로 <블랙 팬서>가 성공한 바에 대해 이론적으로 상술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위 트윗에서도 볼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은 <블랙 팬서> 자체보다는 마이클 B. 조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단지 마이클 B. 조던이 배우로서 가진 매력보다 그가 영화 속에서 현전하는 방식이 위와 같은 감상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블랙 팬서>는 그간 이론이나 농담, 패러디 정도로 소비되던 사안을 극영화의 모습으로 실천했다. 무엇보다도, 할리우드 안에서 가장 할리우드 같은 마블에서 말이다.

 

김태원 정기자

lemonadegogo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