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3월 28일

#다시만날수있을까요

사라져 가는 예술영화전용관: 국도예술관

 

떠올려 보자. 너무나 명백하게 옳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나머지 그것을 고수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 죄악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입장이나 태도가 무엇인지를. 내게는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입장이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다.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자세라서 누구든 옹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이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히 반대 의견을 내세울 리 없다고까지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언젠가 예술영화와 그 영화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던 나는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이 틀림없이 나와 같은 의견을 가졌으리라는 강한 확신에 차 있었고, 그랬기에 그 자리에서 듣게 된 다음의 한 마디가 지금까지도 이토록 강력하게 기억되는 것일 테다. “글쎄… 그것보다는 차라리 잘 되는걸 더 살리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관객 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이윤이 크게 남는 편도 아닌 예술영화전용관을 위해 들여야 할 시간과 돈과 노력을 차라리 장사가 되는 상업영화에 투자해서 더 발전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냐는 것이 요지였다. 화가 났다. 그러나 그 화는 상대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한탄조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력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예술영화전용관을 지키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믿고 있는 나조차도 그의 의견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약간의 두려움. 결코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럼에도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무서운 가정, 즉 이대로라면 그의 말처럼 예술영화전용관은 언제든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그날 내가 쏟아낸 분노의 숨은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또 하나의 예술영화전용관이 2018년 1월 31일 상영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부산의 국도예술관은 2005년에 개관했으며, 2006년에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된 이래로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해왔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면 주택가를 한참 걸어야 할 정도로 교통편이 썩 좋지만은 않았고, 매번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라서 때로는 혼자 상영관을 독차지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국도예술관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 이름을 지켜왔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대 메이저 영화관에서 좀처럼 상영하지 않는 국내외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도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곧 국도가 안녕을 고해야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상업적 이윤을 기준으로 공간을 평가하고자 했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과 부딪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체 독립영화 관객 수의 감소로도 타격을 입었던 국도예술관은 결국 2017년 12월 31일 건물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고야 말았다.

 

이제 국내에는 18개의 예술영화전용관만이 남아 있다. 이들 중 몇몇은 언제나 그들이 조마조마하게 우려해 왔을, 그럼에도 갑작스럽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안녕을 고하게 될 지도 모른다. 혹은 어느 날 새로운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겨나거나, 사라졌던 영화관을 다시 만나게 되는 반가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내일이 국도의 오늘과는 크게 다르기를 내심 바라지만, 그러한 바람에 모두가 한 뜻으로 동의하리라는 믿음은 너무나 순진한 것임을 잘 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해 주지 않은 영화진흥위원회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모순적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더 공정하게 해내고자 상업적 이윤이라는 지원 원칙을 세웠을 것이다. 건물주를 탓할 수도 없다.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은 18개의 영화관을 잘 지키자는 뻔한 이야기만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내게 당연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나는 경험했으므로. 차라리 조금 다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예술영화’라는 주제가 이야기될 때면 무엇을 예술영화라고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논의가 등장하곤 한다. 물론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런 류의 영화들 대부분을 이미 ‘잘 되는 것’의 대척점 위치에 놓고 규정해 버리는 태도다. 어쩌면 사실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빠른 진단을 두고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면, 이 단편적인 진단은 무수한 과정과 설명이 생략된 껍데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의 가치가 흥행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이것을 말하고자 한다.

 

김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