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3월 14일

무용원 위계폭력, 이제부터라도 바뀌어야

얼마 전 친구로부터 기사 링크와 함께 “너희 과는 괜찮냐”는 우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링크를 들어가 기사를 읽어보니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처음 보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작년 12월 무용원 모 계열 4학년 학생들이 후배인 1학년부터 3학년 학생들을 집단폭행했다. 이후 학교는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를 열어 사건을 파악하고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조치를 취했다. 전통예술원 남자 상견례와 음악원 피아노전공의 위계문제가 대나무숲을 통해 공론화된 후 8개월이 지났고, 학내위계폭력 해결을 위한 T/F가 구성된 지 7개월이 지났다. 위계질서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이번 사건은 많은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지 3일 후인 2월 23일, 무용원 학생회장 손정민 씨는 언론에 보도된 무용원 기사에 대한 정정요청 글을 누리에 게시했다. 해당 글은 무용원 실기과 한국무용 전공 당시 4학년 학생들이 가해자임을 밝히며 사건 설명과 함께 짤막한 피해자들의 입장을 담고있다. 하지만 이 글은 언론에 보도된 기사내용의 사실확인에만 그칠 뿐 위계폭력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무용원 학생회의 공식적인 첫 입장이 단지 기사 정정요청이라는 점은 아쉽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과정 또한 주목할 점이다. 무용원 학생회장 손정민 씨가 누리에 게시한 글에 따르면, 징계위원회가 가해학생들에게 내린 징계항목 중에는 ‘가해자 학생들의 사과문게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과문은 서초동 캠퍼스에만 게시되었다. 석관동 캠퍼스와 본부, 누리 등 서초캠퍼스를 제외한 교내 다른 곳에서는 사과문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사과문 게시 기간은 2월 1일부터 28일까지로 방학기간이었다. 학생들의 왕래가 적은 방학 중인 2월에 서초동 캠퍼스에 가는 몇몇 사람들만 이 사과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이 지난 후 외부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야 전교생과 사회에 공론화되었다.

어찌되었든 공론화가 되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학교차원의 해결책 모색이다. 무용원 내에서 자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집단 내 선후배라는 질긴 고리를 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무용이나 음악 등 순수예술계는 위계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가하는 선배나 교수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 한마디가 피해자들의 커리어와 직결되기 때문에 쉽게 목소리 낼 수 없다.

경향신문에 실린기사[1]에 따르면, 순수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르면 5~6세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교수에게 일대일 레슨을 받는다. 그러한 도제식 관계는 평생 예술활동의 기반이 된다. 이 기사에서 우리학교 무용원 강사인 이희경 음악학자는 “몇 년 전 제자 성추행 문제로 파면당한음대교수를 제자들이 오히려 옹호하며 피케팅시위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교수가 잘리면 자신의‘라인’도 날아가는 등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순수예술계는 교수와의 관계를 통해 평생 일을 해야 하는 구조라 미투를 제기하기 더욱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특수한 구조를 고려하면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권력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2월 27일 김봉렬 총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 위계 및 성폭력 보도 관련 입장’이란 글을 게시해 입장을 발표했다. 학교도 최근 일어난 사태들의 무게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는 엄격히 처벌하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교는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달에 진행될 총학생회장단 및 원학생회장단 선거는 그 기대가 크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그 의견을 학교에 전달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플랫폼이 학생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학교는 미투운동의 물결과 함께 위계로 인한 피해사례들이 고발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은 학생들의 이런 요구를 들어야 할 것이다.

[1] <경향신문>, ‘미투 봇물 속 침묵의 예술대학가 왜?’, 2018. 3. 2

김주연 부편집국장

mid122j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