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7년 11월 30일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중랑구 뮤즈갤러리에서

 

전시 기획자, “개인이 개인으로서 인정받는 사회를 위한 페미니즘”

 

성이 호르몬과 신체 구조처럼 생물학적인 차이로 규정되는 것이라면, 젠더는 문화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모든 사회는 어떤 문화권에 속해있다. 문화는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을 만들며 더 나아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미까지 결정한다.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근래의 한국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젠더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성이 본래 자신의 성과 다르다며 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관념은 성전환수술이라는 의학 기술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처럼 성과 젠더를 주제로 생성된 담론은 하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런 담론들은 문화가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엄연히 이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처럼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문화부는 ‘더 나은 젠더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매뉴얼’이란 제목의 기사들을 기획했다. 때마침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중랑구 뮤즈갤러리에서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시는 여성에게 있어 치부이며 숨기고 다녀야 하는 튼살을 포스터로 내걸었다. 전시가 문화의 금지를 겨냥해 어떤 형식의 저항을 했을 지가 궁금해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문화부는 전시 오프닝이 있는 주 월요일에 기획자 윤지수(미술원 미술이론과 16)를 만나보았다.

ⓒ안서연

ⓒ안서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전시에는 7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했다. △김수민(미술원 조형예술과 16) △박채린(이화여대 섬유예술과 1학년)△임하정(수원대 공예디자인과 2학년)△조미현(미술원 조형예술과 16)△정민지(미술원 조형예술과 16)△정화연(미술원 조형예술과 16)△최경원(미술원 조형예술과 16)이 그 일곱 명이다. 페미니즘이 주제인 전시를 열고 싶었던 우리학교 조형예술과 학우 한 명으로부터 부탁을 받으면서 윤지수는 이 전시의 기획을 담당하게 되었다. 윤지수의 전시소개문에 따르면 전시 참여자 8인이 지향하는 페미니즘은 넓게 보면 획일화된 젠더에 맞서 사회 구성원이 지닌 고유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개인이 그 고유성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이다. 윤지수는 ‘각 작가들이 지닌 역사, 취향, 습관 등의 개별적 특성들이 전시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노력했다’고 기술했다. 그러기 위해 ‘각 작가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라는 포괄적인 주제 외엔 작품에 있어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으며 기획자의 개입도 최소화하려고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이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제목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의 책 「사피엔스」(2015)의 책 구절에서 따왔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 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생물학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는 능력을 주었고, 일부 문화는 여성들에게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의무로 지었다. 생물학은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했고, 일부 문화는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금지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책의 내용처럼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사회의 체계와 위계질서는 단순히 생물학적 성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성 性은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위계질서를 만들고 있는데, 이 위계질서는 생물학적 성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의 밑바닥에는 문화가 만드는 편견과 억압이 존재한다. 전시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꼭 나누고 싶어서 제목을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라고 지었다.

정화연 작가의 작업 속 절단된 나체들은 그녀의 자화상이다. 작품 속 기괴한 형상으로 절단되고 제멋대로 접합된 신체처럼 그녀는 타인에 의해 잘리고 편집되어 인지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는 얼굴이 없다.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없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으며, 의견을 표현할 입이 없다. ⓒ윤지수

정화연 작가의 작품 ⓒ윤지수

 

전시 소개에서 퍼포먼스 영상, 사진, 회화, 오브제, 한국화, 유화 등 형식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 미술 형식이 어우러졌을 때의 장점이 있었나.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으나 8명이 모이고, 각각이 어떤 작업을 할 건지 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전시는 형식이 아니라 넓은 영역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장점 같았다. 예를 들면, 페미니즘 자체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어서, 한국에서 페미니즘의 적용 대상을 이성애자인 여성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척도에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배제된다. 그렇지만 이 전시에서는 그렇게 배제된 이야기들도 다루어져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기획자의 개입이 작가 개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페미니즘이란 큰 주제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주고 받았던 피드백이 있었나.

전시를 위한 회의를 크게 두 번 정도 했다. 첫 회의에선 전시 장소와 일정을 조율했고 앞으로 각 작가가 진행할 작품 작업의 대략적인 구상을 공유했다. 두 번째 회의는 중간 점검의 형식으로 했었다. 작가들이 가져온 작업 내용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시간이었다. 조미현 작가의 경우, 작품의 색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을 보여주며 어느 것이 주제와 어울리는지 물었었다. 조미현 작가의 작업은 낙지를 이용해 포르노를 만드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영상 속에서 낙지가 겪는 폭력에 비유했다. 원래 낙지의 색은 아이보리와 회색이 섞인 톤인데 그것을 조명으로 강렬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그 밖에 작가와 1대 1로 한 두 시간 정도 자유롭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페미니즘이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겪은 환경과 무관한 이론은 아니지 않나.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가 각자 다 있다. 그때 한 인터뷰를 조합해 작가 소개문을 썼다.

 

기획자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첫 기억,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달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자유롭고 진보적인 미술원이란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타원은 잘 모르겠으나 미술원 학생 다수는 페미니스트다. 성정체성이 다른 친구들도 많다. 예전에 들었던 여성 혐오적인 말들이 이것이 잘못된 거구나 깨닫게 되었다. 사회에서 요구한 것들 중, 어른들이 말했던 것들 중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다 무너졌다.

 

페미니스트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공유하던 사람들이지만,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나

늘 있었다. 여성 혐오적인 사건들이나, 성추행, 성희롱을 경험한 친구들이 젠더 문제에 대해 했던 말 저에게 급진적으로 느껴졌던 것들이 있었다. “쟤는 왜 저렇게 까지 말을 할까?”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사정을 듣고 나니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서 저런 말을 하는 구나” 납득하게 되었다. 성장 배경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범성애자 여성인 사람 모두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걸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되었다.

최경원 작가의 작품 ⓒ윤지수

최경원 작가의 작품 ⓒ윤지수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다 흥미로웠다. 박채린 작가의 경우 다른 젠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해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면. 데미걸 플루이드1) 그리고 걸 플럭스2)를 정체성으로 밝힌 사람들이 있었다. 젠더 종류로는 수십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자기에 적합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정체성으로 여기더라.

여자가 하는 여성 혐오라는 주제를 다룬 김수민 작가의 작품도 있다. 작가는 가족 내에서 할머니, 작은 엄마 등의 주체들에 의해 행해진 일종의 뒷담화를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해 이 작업을 시작을 했다.

그런데 슬펐던 것은 다들 얘기한 가정사에서 빠지지 않은 존재가 엄마였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엄마의 희생하는 면모를 얘기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펼치지 못하고 가정 내에 갇혀 사는 것 인간이었다.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 “엄마 너무 힘들어 보여”, “자기 인생이 없는 것 같아.” 등의 얘기가 나와서 슬펐다.

 

마지막 질문이다. 갤러리 이름이 뮤즈 갤러리인데 전시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

전혀 상관이 없다. 뮤즈아트센터에 소속된 갤러리인데, 공간대비 저렴하고 학생이라고 특별할인을 해주셔서 선정한 장소다. 뮤즈아트센터는 전시대관, 작업공간, 재능기부, 작가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서비스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하소연 기자

goodteller15@gmail.com

 

 

1) 데미걸플루이드(demigirl fluid)_ 데미걸과 젠더플루이드의 합성어. 데미걸은 데미우먼, 데미피메일이라고도 불리며 부분적으로 여성이라고 정의하거나 여성적 특성이 있는 사람이다. 태어났을 때의 성은 여성일 수도 남성일 수도 있다. 젠더 플루이드는 전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호주의 이 설문조사는 33개 젠더 정체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2016,허핑턴포스트)

 

2) 걸플럭스(girlflux)_여자과 젠더플럭스의 합성어. 젠더플럭스는 젠더의 강도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람을 말한다. 출처. fandom gender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