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7년 11월 29일

예술가를 꿈꾸며(3)
윤채미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어떤’ 예술가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출발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승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길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우리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교내의 공연·전시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전시 공모에 당선되기 위해,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학생들은 밤낮으로 작업하고 연습한다.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들이 우리가 길을 만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번 학기 우리신문은 교내의 공연·전시에 참가한 학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길 위에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보려 한다.

 

지난 8일, 학교 카페에서 윤채미(연극원 연극학과 15) 씨를 만났다. 연극원 2학기 레퍼토리 공연 <헤다 가블러>의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윤 씨는 “날이 많이 추워졌다”며 하고있던 머플러를 다시 여미고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나갔다.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가는 윤 씨를 보며 “흔들리지 않는게 중요하다”라는 윤 씨의 말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윤채미 제공

윤채미 제공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연극학과 15학번 윤채미라고 한다. 22살이고 1년 휴학해서 4학기째 재학중이다. 휴학하는 동안에는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여러가지 했다.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는 처음에는 종로에서 한 번 하다가 홍대로 옮겨서 2달정도 일했다.

 

여행은 러시아와 유럽을 갔다왔다. 유럽은 한달반정도 프랑스, 벨기에, 독일을 자유여행으로 혼자 다녀왔다. 재미있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여행을 안 다니고 베를린에서 방 하나를 잡아서 한 달정도 오전에는 어학원 다니고 오후에는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었다.

 

이번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헤다 가블러>에 대해

극의 주인공인 헤다 가블러는 결혼을 했는데도 남편의 성을 안 따르는 여자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정체성이 아닌 아버지 집안의 정신적 가치에 자기자신을 동일화하는, 생물학적인 여성인 동시에 남성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모순된 여성이다.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자기 자신이 선택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 <헤다 가블러>는 이런 모순적인 인물이 여러 상황들과 모순되면서 주변 환경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헤다 가블러> 드라마터지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프로덕션에서 내가 나이도 제일 어리고 학번도 제일 낮았는데,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연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했다. 게다가 연출이 교수님이었는데 교수님한테 “이러이러하면 어떨까요” 라고 제시하는 위치가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런 환경이란 걸 알고 연출이었던 박근형교수님이 내가 리서치한 자료를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주셨다. 그리고 내 의견을 담은 쪽지를 전해드리면  [교수님이] 그걸 수용하고 반영한 부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교수님께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한게 아닌데 개인적인 오해가 생길 때도 있었다. 나는 공연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오해가 발생하니까 현타가 올때도 있고.(웃음) 내가 공연의 내부자인지 외부자인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외롭다고 느꼈다.

 

우리학교 연극원 주최로 진행되는 연극들이 많은데, 그 중 레퍼토리 연극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레퍼토리 공연은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사람들이 랜덤하게 모인다. 그리고 다른 공연은 자기가 하고싶은 걸 한다는 데에 의미가 큰 반면 레퍼토리는 교육적인 면이 더 큰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정기적으로 담당교수님인 김미희 선생님께 가서 피드백을 받았다.

 

연출, 배우 등에 비해 드라마터그라는 직책은 생소하다. 드라마터그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 역량이나 프로덕션에 따라서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공연에 대한 리서치만 하는 경우도 있고 캐스팅, 프로그램북까지 다 관여할 수 있는 엄청 큰 역할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드라마터그는 내부자적인 비평을 담당한다. 관객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떻게 전달될지, 공연이론적으로 작가의 생애는 어떠한지 등을 리서치해 작품 그 안에서 교정을 한다.

 

왜 연극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다. 원래는 어학특기자로 불어불문과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불어불문과에 입학한다면, 나는 어학특기자로 자격증을 따야했으니까, 불어불문과에서 요구하는 졸업요건인 불어 자격증이 학교에 합격할 때부터 있었다. 그래서 굳이 그 과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한예종을 오고 싶어하는 친구가 같이 한예종 시험을 쳐보자고 꼬셨다. 그 친구가 타로카드를 봐줬는데 연극학과를 치면 잘 나온다고 해서 그냥 쳤는데, 붙었다.(웃음)

 

그렇게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어보이니까 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희곡을 많이 읽는다는 점이 좋다. 여러 나라나 시대에 걸쳐서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뭘 썼는지 알 수 있으니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가치관이나 문화를 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연극이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얇게라도 알아야해서 다양한 분야들을 배워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았다. 이전에 어학특기자 했을 때의 것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연극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와 비교하자면, 개인적인 인상으로 영화보다 연극에 나오는 대사들이 더 섬세하다. 영화는 완전 구어체인 반면 연극은 문학과 생활 사이에 있는 말들이 많아서 더 시적인 것 같다. 그리고 배우의 소리나 열 같은 것은 영화에서 느낄 수 없다. 한 공간 안에서 그걸 같이 느낀다는 것이 되게 다른 것 같다. 연극이 사회문화적인 텍스트도 더 강한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연극은 연습을 실내에서 할 수 있다.(웃음)

 

지금까지 참여했던 공연들이 궁금하다

첫 드라마터그는 <눈 뜨는 봄>이라는 학교 야합연극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잘 못했던 것 같다. 리서치하는 방법도 미숙했고 연출, 배우들과 소통하는 방법들도 노련하고 부드러웠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학기에는 <리타의 보따리>와 <헤다 가블러>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리타의 보따리>의 경우, 수업의 일환이었는데 그걸 발전시켜서 공연까지 올렸다. 연출님이 초빙교수로 오신 질 베르 로모르 교수님이었는데, 우리보다 템보가 느리셔서 배우들과 스탭들이 맘고생을 많이 했다.(웃음)

 

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것들이 있다면

일단 입학할 때 부모님께서 하시던 그거해서 뭐해먹고 사냐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데 지금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다는 것?(웃음) 연극인 것도 연극이지만 우리 세대의 한계점과도 겹쳐지는 것 같다. 그리고 보는 눈이 넓어졌다. 국제고를 다녀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우리학교는 그 정반대 성격의 사람들이 많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른 대학에 비해 가정환경이라던가 이전에 살아왔던 배경이 다양한 것 같다. 하지만 가끔씩은 우리학교 사람들이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남들과 다르고 싶어서 하는, 예술가병 걸린 느낌? 그런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존중해주고 더 인격체로 대해주는 분위기가 있기는 한데, 그러다보니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 수업이든 공연이든, 그 사람과 개인적인 감정없이 얘기해도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학교 사람들은 방어적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게 말하면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은 것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안좋은 방향으로] 되는 것 같다.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지 궁금하다

하루에도 열번씩 바뀐다. 연극 내부에서 뭔가를 하고싶은 건 별로 없다. 한다면 오히려 외부자적인 면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홍보관이라던가, 미디어, 게임 스토리 짜는 것이라던가. 연극을 활용하는 분야들 쪽으로 나가보고싶다.

 

뭐가 됐던지간에 후회없는 삶을 살고싶다. 그리고 나이 들었을 때 나잇값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약간 실수해도 봐주고 이런 게 있는데 점점 그 용납되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매년 실감이 난다. 경제적으로 어떻게 독립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하고. 나 한명 인간 구실을 하면 성공적인 삶인 것 같다.(웃음)

 

 

김주연 기자

mid122j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