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민지 감독 인터뷰 전문

우리학교 영상원 출신 영화감독 마민지가 데뷔작 <버블패밀리>로 EBS가 주최한 다큐멘터리 영화제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버블 패밀리>는 80년대 한국 경제사라는 거시사와 IMF라는 국가적 사건의 영향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 가족의 미시사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EIDF의 대상은 제 1회 때부터 해외 작품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국내 작품인 <버블패밀리>의 수상은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학교에서도 이번 달 초부터 본부 전광판에 마민지의 이름이 올랐다. 지난 주 <버블패밀리>는 또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제 DMZ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문화부는 DMZ 영화제 상영관 중 하나인 백석 메가박스에서 마민지 감독을 만나보았다.

 

마민지 감독 ⓒ마민지
마민지 감독 ⓒ마민지

1. 현재 방송 영상과 전문사 재학중인데 전문사 과정과 버블패밀리 제작을 어떻게 병행했었나.

 

영화를 처음에 기획을 했던 것은 학부 영화과에서였다. 2013년 쯤 졸업학기 쯤 되서 졸업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리서치를 하면서, 부모님의 역사가 우리 가족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경제사를 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문사 입학할 때 학업 계획서를 이 영화를 찍겠다고 하고 들어왔다.

 

방송영상학과 전문사 과정이 그만한 시간을 주었나.

-그렇다. <버블 패밀리> 제목 아이디어는 김진혁 선생님이 주었다. 또 홍현숙 감독님 수업도 들어서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을 그분과 나누었고 전규찬 선생님과는 리서치와 관련된 도움을 주어서 방송영상과 교수님 세 분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2. 학부 때 영화과였는데 영화과는 극영화 제작을 목표로 하지않나. 다큐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나는 졸업 영화로도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원래는 논문을 쓸 생각이었다. 성북동에 현장 필드 조사를 나갔다가, 이것을 글로만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로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에스노그라피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웃음)

영화과 학부과정에서는 영화 세 편을 찍게 한다. 첫 영화를 찍고 두 번째 영화를 찍고 곧바로 영화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아닌 다른 것, 문화연구나 인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학을 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 다른 학교의 문화인류학과나 문화 연구 전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방영과 전문사로 학교에 돌아왔다.

 

3. GV 시간에 질문에 대해 묻고 싶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특수해서 그 경험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간에 감상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버블 패밀리> 소재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반대로 이 영화가 대중적인 이야기였다고 답한 관객도 있었다. 그는 아파트 키드가 80~90년대 생에겐 흔한 케이스라고 말씀했는데, 마 감독이 제작할 때는 이것이 보편적인 소재라고 작업을 했는지. 특수한 소재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특수한 소재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정말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태국에 출장을 갔는데 자신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태국인 영화감독을 만났다. 알고 보니 IMF는 태국에서 시작된 것이더라. 태국에선 그걸 똠양꿍크라이시스라고 부르더라. IMF를 태국발 경제 위기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감독도 자기 부모님도 그때 건설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가 IMF 때 망해서 자기 처지가 지금 똑같다고 말했다. 80년대 당시 아시아의 급격한 경제개발 속에서 건축을 포함한 물질적인 성장을 했던 가족들이 굉장히 많았고, 이 IMF 때문에 망했던 것이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똑같이 있는 것들이 되게 신기했다. GV 때도 “저도 똑같이 그랬어요.” 혹은 “우리는 부동산 해서 살아남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4. 이전 인터뷰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늘리면 너무 사적이고 푸티지 사용을 늘리면 너무 거시적이라서 이 밸런스를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했다. 이런 노력을 한 이유가 내가 바라본 도시, 내가 바라본 관점. 즉, 나의 관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굳이 거시사를 얘기하기 위해 푸티지(특정 사건을 담은 옛날 자료화면)를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는 생각한다. 거시적인 것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으니까. 다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거 다 내가 뉴스에서 봤어. 내가 다 봤던 거야 라고 하는데 80년대 후반 중반 이후 출생자들에게는 이것을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을 해야만 그 당시의 어떤 어르신들이 맨날 말하는 그땐 좋았지를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거라 생각을 했다.

 

5.IMF가 역사가 된 한국 사회에서 이런 나의 이야기가 가진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잘 모르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보면 DMZ 영화제 GV 질문자가 ‘공론장’이란 단어를 썼듯이 이 영화가 상영되면서 공동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영화제작 계기가 된 에피소드 중 하나가 있는데, 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님 한 분이 질문을 하셨다. 청년 세대인 너희가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경험 했던 것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그게 나한테는 IMF였다. 그런데 교수님이 말씀하기를 “나는 그렇게 외환위기가 너희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기성 세대들 사이에서 IMF는 지나간, 한번 마무리 된 사건이었다. 나는 청년 세대 중에 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겪었겠지만 이것을 주변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나에겐 이것이 인생의 사건이었는데, 왜 이것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느냐 하는 분노와 답답함이 컸다.

 

그리고 또 답답했었던 것은 어머니 같은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부동산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노동운도 관련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역사에도 기입되지 않고. 그런데 이런 아주머니들을 리서치 해보니까. 이런 어머니들이 너무 많았다. 강남에 출근하는 비정규직 어머니들, 이런 욕망을 가진 비정규직 여자들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왜 없지. 하고 굉장히 답답했다.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었다.

 

6.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다큐멘터리 상영회에서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영화가 경제를 이야기를 할 때 소외되었던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 되어 서사를 이어간다. 이렇게 되어 있다. 이런 맥락으로 초대가 되었겠구나 하는 짐작을 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내가 의도를 한 것이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동안 어떤 심정적인 동화가 컸다. 특히 서사구조나 이런 걸 신경쓰니까 잊게 되었다. 편집하면서도 의식을 별로 안하고 있다가 천주희 선생님의 발제문을 보고 울었다. 그 문화 연구자께서 그런 맥락을 읽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했었다. 그 억울하고 슬픈 감정 때문에 만들고 싶었던 부분이 제 마음 한 켠에 있었는데 이것을 읽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택시타고 오면서 울었다. 어머니도 읽으시고 울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우셨냐?

어머니도 생각을 안해보셨던 부분이셨다며 보시고 울었다.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읽을 줄 몰랐다.

 

7.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다큐멘터리 GV에서 차기작 준비도 여성주의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나?

 

차기작 대신 윤가현 감독의 <불꽃페미액션>이라는 다큐멘터리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로 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규제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꽃 페미액션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삭발하고 겨드랑이 털 기르고 해서 유쾌 발랄한 영화가 될 것 같다.

 

8.이것이 사적 다큐여서 카메라가 일상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언제 찍고 찍지 말아야할 지 윤리적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인데 넣기 망설여진 장면이 있었는가.

 

망설였다기 보단 가족의 내밀한 것들을 딸이기 때문에 찍을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았는데, 어머니와 약속을 했었다. 엄마가 불편한 것을 나중에 이야기를 해서 빼겠다라는 것이었다. 그게 엄마가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그것이 아니라 어머니 직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트레일러 작업을 할 때는 일정부분 들어간 것이 꽤 있었다. 하지만 최종 편집 과정에서는 편집 들어가기 전에 프로듀서와 편집자에게 “어머니 직장 장면이 포함되는 것, 어머니 직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간 장면 이런 것들 다 빼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시작을 했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출퇴근 하는 장면으로 대체가 되었고 굳이 이런 이미지를 넣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아버지는 전혀 일을 안하시는 거냐.

그렇다. 본인은 한다고 생각하시만. 매일 출퇴근은 하긴 한다. 어디론가.

 

그런데 아버지가 베개 속에 감춰둔 그 돈은 어디서 생겼나.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것 같긴 하다.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을 하셔서 받으신 돈으로 그걸 잘 안쓰고 베개에 넣어 두셨다. 은행에 놔두면 빛 때문에 차압될까봐 걱정 되서 현금으로 보관하시는 것 같다. 그걸 어머니가 베개를 빨려고 하시다 발견을 한 것이다.

 

9.<버블 패밀리>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나.

 

전주 영화 때 프리미어를 하고 국내 상영을 하고 공동체 상영도 아름아름 하고 있다. 배급사를 찾고 있고 바람으로는 평창 올림픽 때 맞춰서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개봉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독립 영화 시장 자체가 좋지 않아서. 영화가 두 버전이다 방송용 60분짜리가 있고 극장용 80분 버전이 있고 그래서 방송 버전으로 만들어서 핀란드에 보내주고 핀란드에서 티비 방영을 할 것이다. 참고로 <버블 패밀리>는 핀란드랑 같이 국제 공동 제작을 한 영화다.

 

하나경 기자

goodteller1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