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7년 6월 25일

‘우울’과 ‘창작’의 기로에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은수 교수 인터뷰

 

우울과 자학에 시달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이런 말들은 예술가를 꾸미는 형식적인 수사법이자, 수많은 자살한 예술가들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동안 우울이 현실이라는 것을 겪은 지금, 우리는 어떡하면 이 우울을 안고 앞으로도 예술을 해나갈 수 있을까. 청년과 예술가의 우울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은수 교수를 찾았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람의 수가 2011년도에 비해서 2015년에 평균적으로 12%가 늘었다고 한다. 그중 20~24세 청년들의 증가율은 약 24%로, 이는 평균 증가율의 두 배 정도이다. 유독 대학생 연령층의 우울증 증가율이 다른 연령층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번째는 직장이나 일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인데, 현재 사회가 취업도 굉장히 문제가 있고, 기회도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 이 정도 노력을 했으면 사실 좀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었을 텐데, 지금은 수월하게 내 커리어를 결정할 수 없는 환경적인 부분도 영향을 많이 줄 것 같다. 두번째로는, 윗세대 분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편견이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세대가 젊어질수록 내 감정 상태나 우울증, 스트레스 같은 것에 훨씬 더 경각심을 가지는 편이고, 정신건강의학과에 훨씬 자유롭게 오는 편이다. 따라서 인식 자체의 변화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으로 비관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또한 그런 면들이 정신질환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다.

재밌는 질문이다. 아시겠지만 여태까지 유명한 작가들이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로 사망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예술적인 부분이 정신과적인 질환으로 이어진다기 보다는, 기존 연구를 보면 창조성과 충동적인 것, 기분 변화가 연결점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예술가들이 아무래도 예민한 부분이 있지 않나. 감수성도 풍부하고, 주위 환경에도 민감하고, 스스로의 부분들에도 민감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기는 부분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고, 사회적인 부조리에 대해서도 문제 인식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연구에 나와 있더라. 또한 스스로의 결점에 대해서 그냥 넘길 수 있는 부분들을 [예술가들은] 한 깊이 더 들여다보고, 고민을 하게 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걸 표현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하게 되지 않나. 그런 특성들이 예술가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할 수 있는 부분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예술가들이 순수한 우울증보다도 경조증이나 조증에 이완이 되어 있다는 보고들도 많이 있다. 경조증, 조증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굉장히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지고, 충동성도 는다. 만약 일반인에게서 조울증이 생긴다면 거기서 그냥 끝날 것이, 예술가들의 경우 예술성이 증폭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우울증이나 조증 같은] 상태가 창조력이나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그래서 예전에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한창 하다가, 공백기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이런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작곡가분이 몇 해 동안 40개 곡을 작곡을 했다가, 한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가. 이러는 이유가 경조증이나 조증이 굉장히 그런 예술성이나 창조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게 정신 병리에 영향을 미쳐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울증 또는 정신질환, 자학적인 상태가 예술가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시선이 일부 존재한다. 우리학교에서 2011년도에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우리학교에서 면담 조사를 진행했다.(참고기사 제279호 “우울한 학교 이대로 괜찮은가”) 그 조사에서 본교의 어떤 교수는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학은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고까지 얘기를 한 바 있다. 이런 ‘창작을 하는 사람은 우울해야 하고, 항상 자기 자학을 해야 한다’는 시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

그런 부분이 원동력이 된다는 건 이해한다.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면, 그걸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우울감 같은 것을 깊이 있게 경험해 본 사람만이 다른 종류의 감정들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여러 종류의 감정을 풍부하게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성을 증폭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감정상태는 건강하지 않다고 본다. 나의 경우도 환자들의 상황에 공감해야만 한다. 직접 경험할 수는 없더라도 그분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만약 나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선 안 되며, 나까지 그러한 상태에 이끌린다면  [그러한 상태는 병으로] 다뤄야 한다.

 

굉장한 작품들을 생산한 작가들을 두고 사람들이 “그들의 어두웠던 과거가 이 작품의 원동력이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술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지점에 대해 환상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자학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일부는 그 상태에 있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더라.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해보려 하는 건 좋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본인에게] 위험할 정도로, 자살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이라면 그건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울하고 자학적인 상태도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다면 예술로 충분히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예술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쉽게 발언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지만, 위급한 상황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예술가들에게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이고, 독자나 관객이 [예술가의 우울로부터 창작된] 작품들을 따라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것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라스 같은 사람들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글이라든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무조건 이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걸 계속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런 감정을 분할할 수도 있는 건지. 그리고 이 사람들이 자살이나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

그렇지 않다. 실은 비슷하게 고민하시는 예술가 분하고 얼마 전에 대화를 나눴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관점은 이해하겠다. 작품 창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떤 우울감으로 본인이 유지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주위에서 뭐라고 안 할 거다. 자기 작품 활동을 위한 것인데.

 

그런데 이미 자살이라던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우울감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거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우울한 감정을 느껴서 작품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굉장히 아픈 상태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지 않나. 그마저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얘기를 안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게 사실은 병의 증상이기 때문에, 창작 활동을 위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는 관점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치료자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런 상태에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굉장히 병적으로 아픈 상태에서만 창조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사실은 그 방법에 있어서 변화를 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상태에서 벗어나서 창출해낼 수 있는 결과물이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결과물이랑 성질상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어떤 예술가 분들은 그걸 경험을 했지만 극복한 상태에서 자기가 경험했던 걸 갖고도 창작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다.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그 병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광부라고 치면, 건강에 안 좋은 작업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노동에] 제한을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예술 쪽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에 예술가가 부정적인 상태에 계속 빠져 있는 게 [그 상태가] 작업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그 사람의 작품을 찾게 된다면, 그 예술가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이지 않나. 그리고 개인 커리어 입장에서도 그러한 상태로 있는 게 내 예술을 위해서는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부분을 집어낸 것이다. 진짜 신체상 보았을 때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은 우리가 브레이크를 걸어놓는 법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이미 학교를 벗어나서 개인 예술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이제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사실 그건 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자살율이 OECD 국가 중 1위이지 않나. 그중 중고등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지역 사회 차원에서 우울증 정도, 우울감, 자가 척도로 자가 척도로 측정하는 스크리닝 검사를 많이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감정, 우울감이라는 것을 느끼는데, 이걸 얼마나 건강하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감정 자체를] 없앨 수 없지만, 이걸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하면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도 상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만약에 졸업하고 나서 개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우울이나 자살이] 문제다 싶으면, 학교 차원에서 이런 스크리닝을 하고 일정 이상의 점수가 되는 분들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아 보는 시스템을 만들면 확실히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술 작업의 본질적인 특성 중 하나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점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는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그 노동 자체가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성공한 작업으로써 결과를 맺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게 예술가들이 하는 일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감은 상태로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심리 상태에 놓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딜레마를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예술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걷는 길을 내가 걷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정말 좋아서 하는 것도 있을 테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도 있고, 책임감 때문에도 있고,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돈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어떤 길을 걷던 100% 좋은 길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 길을 왜 걷는지에 대해 스스로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분명 막연하게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이 좋아서 이걸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이 길을 걷는다면 가지 못하게 되는 길이 있고 잃는 게 생기지 않나. 그것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 건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불안감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고, 양가감정이라는 게 제일 힘든 거다. 싫은 감정만 있으면 차라리 쉽다. 그냥 때려치우면 되니까. 그런데 너무 좋은데 동시에 너무 힘든 감정이 존재해서 힘든 건데, 그 양가감정 자체를 균형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원은수 교수 ⓒ서안

 

우리학교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비평을 주고받아야 하는 크리틱 수업이 주를 이룬다. 크리틱 수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자신의 치부를 숨길 수 없고, 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나 비난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긴다. 우울에 빠지지 않고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단점에 대해서 지적받고,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건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이지만, 예술학교 사람들은 특수한 환경 때문에 [그러한 경험을] 일찍 겪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 그리고 정반대로 완벽주의적이고 실수 없이 무엇이든 잘 해왔던 성향의 사람들이다. 양쪽의 사람들은 양상은 다르지만, 깊숙하게 들어가면 공통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본인에게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건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크다. 성격이라든지, 대인관계에서 받아온 영향, 더 깊게 들어가면 부모-자녀 간의 관계도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상황이 힘들다면 개개인이 좀 더 스스로에게 깊게 들어갈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크리틱의 연장선상으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생들이 다른 사람과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돋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끝없는 열등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경쟁 체제에서 우울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쟁 자체도 힘들다. 계속 지속적으로 긴장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제일 힘든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해서] 좌절을 느꼈을 때인 것 같다.

 

그런 좌절감이나 실패감도 사실은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이고, 비판 받는 것도 스트레스 중의 하나이고, 내가 우울한 감정을 지속하면서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이고. 종류가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본 맥락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큰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견디나 라는 부분인 것 같다.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정상적인 범위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나쁜 게 아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결과물을 남길 때, 특히 예술 쪽에서는 [좌절감이] 필요한 감정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감도 우울감이지만  좌절감이나 비난 받았을 때 느끼는 자존심의 상처 같은 것들은 우리가 나중에 어차피 성숙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 번쯤 느껴야 할 경험이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자체는 개개인마다 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 거다. 취미 활동 같은 일상적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감정으로 이어질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분과의 유대 관계나 치료적인 관계를 통해 도움을 받으면서 극복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졸업한 이후에도 예술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우리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이다. 한국에서 예술을 직업으로 이어가려다 보면 맞닥뜨리게 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기에, 미래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안감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관점의 차이가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다. 어떤 예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금전적인 것을 고려해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실패나 타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 근데 그 두 경우가 예술활동 외의 활동을 했을 때 그 관점에 따라서 그걸 받아들이는 정도가 상당히 다른 것 같더라.

 

우리나라가 좀 더 선진화돼서 예술이 훨씬 더 풍성하게 될 수 있는 나라가 될 때까지는 바뀔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그래서 만약 어쩔 수 없이 내가 하는 것의 일부를 포기하고 우선적으로 뭔가 병행해야 한다면,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굉장히 다를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말 열정과 열의를 갖고 추구하고 싶은 것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것을 사용하겠다는 관점으로 가고, 그 관점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도움이 좀 될 것 같다.

 

 

서은수 기자

3unwa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