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7년 5월 15일

“이제와서”가 아닌 ‘이제서야’

디자인과 성폭력 성명문 발표 이후 내부 회의 연이어 열려

성폭력 문제는 디자인과의 “공공연한 비밀”

오래된 일? “피해자 규모 결코 작을 수 없어”

 

지난 4월 초, 우리학교 석관동 캠퍼스 곳곳에는 “성폭력 없는 학교를 위한 모임”이라는 이름의 성명문이 붙었다. 이 대자보는 익명의 디자인과 강사 두 명을 언급하며, 이들의 성폭력 행위를 고발하고 학교 측의 제재를 촉구했다. 이를 기점으로 지난 4월 10일의 위계폭력 공론화와 함께 학내 성폭력 문제은 본격적으로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

 

이미 반년 전 큰 규모로 공론화가 이루어졌던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폭력 문제를 둘러싼 학내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지난 ‘아카이빙 사태’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겨울방학 동안 논의된 “바른 성 문화 정착을 위한 T/F”는 이제야 막 걸음마를 떼고 있고, 교직원 대상의 성평등 교육도 곧바로 학교 전체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초에는 학교 내부에 디자인과 내부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익명의 대자보가 게시되었다. 성명문의 형태를 띤 이 대자보에서는 디자인과의 두 강사와 연관된 일련의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며, 다시금 학내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더이상 좌시하지 않아” 성폭력 문제 공론화 위해 앞으로 나선 학생들

디자인과의 성명문이 처음 게시된 것은 4월 1일이다. 1차 성명문이 나온 이후 디자인과 내부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는 결국 교수와 학생 간의 과 내부 간담회로 이어졌다. 간담회는 지난 4월 7일 오전에 진행되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디자인과 교수진을 비롯하여 디자인과 학회장과 각 학년 대표가 참석했다.

 

디자인과의 한 학생[이하 C 씨]은 간담회에서 쟁점이 된 성명문의 5가지 요구사항이 사실상 디자인과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기존부터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이제서야’ 표면상으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의미다. C 씨는 “작년에 아카이빙 사태가 대두될 때 디자인과 내부에서도 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얘기를 못 했다”면서 “수업을 듣는 인원이 소수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내부고발자를] 충분히 색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카이빙 활동에 소극적이었다”면서 “그러나 이제 더이상 그런 문제를 소극적으로 지켜만 보고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해당 문제를 공론화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상황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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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에 대한 얘기에서 C 씨는 “교수진이 ‘성명문에 붙은 내용 중 첫째 사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술원 내에서 그 문제가 해결중에 있다’고 전했다”면서 당시 교수진은 “[피해자의 신원이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직접 받을 경우 피해자의 신병이 노출될 수 있으니 양성평등상담소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전했다.

 

양성평등상담소가 거론되는 이유는 우리학교의 현행 처벌 방식에 있다. 현재 학내 성추행·성폭력 관련 처벌은 대게 양성평등상담소를 거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양성평등상담소는 먼저 피해자에게 직접 요청서를 받아 사건을 접수해야 하는데, 이떄 양성평등상담소는 일종의 중재 기관으로서 피해자의 신원을 알게 된다. 이에 C 씨는 “[교수진이] 심증만이 아니라 진술이나 이런 걸 직접적으로 듣기 원하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다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사이에서

C 씨는 “두 가지 사안이 해당 사건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하나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피해자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을 때 처하게 될 곤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학내 제도상으로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신원 공개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이다.

 

중재 기구인 양성평등상담소를 통한다고 해도 학칙에 기반한 처벌에는 필연적으로 피해자의 신원 공개가 요구된다. 이는 양성평등상담소가 제소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양성평등상담소는 가해자를 격리하고 피해자의 신원을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를 신뢰하지 못하는 학생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C 씨는 다른 중재기구에 대한 질문에 “지난 아카이빙 사태 이후 조성된 미술원 내 T/F에 대한 얘기도 들려오는데, 미술원 T/F가 이미 끝났다는 사람도 있고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는 사람도 있고 제각각이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C 씨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피해자 보호의 문제 때문에 수업 이름만 밝혀도 피해자가 너무 간단하게 특정되어버리기 때문에 나같아도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C 씨는 “개인의 심증은 처벌에 대한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없지만 모두가 알고 공론화가 되는 상황이 아닌가”라며 “어떻게 보면 심증으로 들어가서 처벌이 이루어져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교수진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신중하게 처리를 하려는 인상을 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교수진이 사건의 규모에 대해 인식해야”

C 씨의 말에 따르면 첫 간담회가 이루어진 이후, 디자인과에서는 학과 내 정기 회의가 별도로 구성되어 이번 사안에 대해 주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첫 성명문 발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C 씨는 “지난 디자인과 MT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며 “어떻게 보면 첫 대규모 회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C 씨는 이번 회의에 대해 “학생과 교수 사이에 온도차가 있다”고 평했다. C 씨에 따르면 당시 교수가 제시한 것은 “대자보나 성명문을 게시하기 전에 익명으로 교수진에게 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설하라”는 것이다. C 씨는 당시 교수가 “의견이 나온다면 수용해 줄테니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에 C 씨는 디자인과 내부에서 “교수들이 [사건에서] 발을 빼고 자기 몸을 보전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C 씨는 이와 같은 교수의 태도에 대해 “교수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양성평등상담소로 넘어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 씨에 의하면 “더이상 자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C 씨의 말에 따르면 “그런 스탠스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으니까 학생들이 많이 답답해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온도차는 MT 회의에서 나왔던 교수의 발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C 씨에 따르면 당시 교수진은 성명문에 대해 “이제와서 그러느냐”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회의 자리에 있었던 몇몇 학생들은 교수진에게 “이제와서가 아니라 [여태까지 있어왔던 일에 대해] 어렵게 용기를 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C 씨는 디자인과 내부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B 강사의 성폭력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다”라며 “해당 피해자의 규모가 작을 수 없는데 [교수들은] 이를 소수의 학생들이 문제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교수들이] 규모에 대해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C 씨는 “교수들은 지금 사건이 처리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매번 논의를 꺼낼 때마다 양성평등상담소나 T/F에서 논의가 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C 씨는 이와 같은 교수의 발언이 “처리를 안 한 내 잘못이 아니라 양성평등상담소에 제소를 안 한 애들 잘못이니 관심을 안 가져도 된다는 뉘앙스로 들린다”면서 “교수들은 회의 자리에서도 T/F가 있다, 양성평등상담소로 제소를 해라, 그리고 플랫폼을 만들어라 이 3가지 얘기만 한다”고 전했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실력보다는 인성이 중요하지”

이와 같은 ‘온도차’는 디자인과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14일 무용원 내부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교수와 학생 간의 온도차를 두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원에도 위계질서가 있느냐”는 한 무용원 교수의 발언에 학생들이 “교수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태 몰랐다고 하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한 것이다.

 

C 씨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교수들은 대자보로 처음 접했지만 학생들은 계속 목도해 왔던 것”이라며 “앞으로 교수와 학생 간의 온도차를 좁혀 나가기 위해 디자인과 내부에서 정기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내부의 학생자치의 힘을 키우자는 의견이 MT에서 나와, 앞으로 정기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디자인과의 학과장은 개강총회와 같은 자리에서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실력이나 그런 것보다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C 씨는 “[그 말에 따르면]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말에 맞는 행동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없는 학교”를 이룩하는 일이 비단 양성평등상담소나 T/F 같은 중재 기구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디자인과 내부 성폭력 문제의 향방을 놓고 보다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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