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7년 5월 15일

독립잡지 기획(5)
독립출판이 그리는 궤적

문화부에서는 그동안 독립잡지 기획을 통해 4가지의 독립잡지를 살펴보았다. 영상 비평 잡지인 『오큘로』, 문학 독립출판사인 『문학과 죄송사』, 대중음악 비평 잡지 『크리틱스 레코드』, 마지막으로 사진 잡지 『보스토크』이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학술지나 주간지가 해오지 못했던 것, 기성 출판사가 갖고 있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비용이나 독자층의 모집 등으로 인한 한계적 상황에서 시작했으나 각자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조금씩 상향된 질의 작업물을 내놓고 있다. 이들을 소개했던 독립잡지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호에서는 독립잡지의 필요성과 궤적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이번 기획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독립 잡지를 많이 읽고, 더 나아가 자신이 작업한 바를 어떠한 형태로든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본 기사가 기획의 취지로 돌아감과 동시에 독립출판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한다.

 

독립출판, 왜 필요한가?

 

독립출판이란 대형 출판사를 통한 통상적인 책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기획, 편집, 인쇄, 제본해서 책을 출판하는 것을 이른다. 독립출판물은 기성 주류문화와는 달리 상업성을 떠나 책을 내는 편집진이 알리고 싶은 지식, 혹은 나누고 싶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하나의 통로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독립출판의 반대편에 서있는 것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성 출판사이다.

 

기성 출판사는 출판사, 유통사, 서점, 언론사의 견고한 네트워크 속에서 출판작업을 이어간다. 이러한 고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책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읽히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도태되는 글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기획에서 다룬 잡지인 『크리틱스 레코드』의 경우, 기존의 비평씬에서 종종 무시되었던 대중음악 비평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수행했다. (제 278호 6면 참고) 또한 이번 기획에서 다루지는 못했으나 후죠시 문화를 비평, 성찰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발한 잡지 『메타후조』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대중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주제를 다루는 잡지라든가,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지향하는 잡지는 시스템 속에 포함되지 못한다. 기성 출판사가 보다 넓은 독자층을 겨냥해야 하는 반면, 독립출판은 해당 분야를 관심있게 읽는 일종의 ‘매니아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독립잡지 기획에서도 살펴보았듯 잡지는 그들이 타켓팅 하는 독자층이 존재한다. 『오큘로』는 동시대 영상 비평에 관심있는 독자를, 『문학과 죄송사』는 공모전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작품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를 겨낭하는 식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성 출판사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빈틈에 발을 들이며 몇몇의 독자층에게 신선한 지식을 제공한다. 그만으로도 독립출판은 제 몫을 하고있는 듯 하다. 책을 읽고 지식을 소비하는 독자는 사실 큰 범주로 묶기가 아주 어려운, 다종다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독립출판은 대개 텀블벅(Tumblbug)등의 크라우드 온라인 펀딩 시스템을 통해 출판에 필요한 돈을 모으고 관심있는 독자층의 두께를 가늠한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금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목표 금액과 모금 기간을 정하여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의 자본 조달 방법 중 하나다. 그렇기에 크라우드 펀딩 자체는 예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텀블벅은 문화·예술계 펀딩에 집중하고 있다. 텀블벅의 펀딩 분야는 △미술 △패션 △게임 △출판 △만화 △영화/비디오 △음악 △테크놀로지 △디자인 △요리 △사진 △공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은 소규모 창작자의 자금 조달뿐 아니라 생산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크라우드 펀딩 분야 중에서도 독립출판물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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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가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사람들은 동료를 찾기 위해 출판한다”고 주장했다. 브르통이 주장한 바는 인쇄매체, 혹은 잡지와 같은 출판물이 지식의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 ‘장소’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후원’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관심있는 또다른 이를 모색하는 광장이 될 수 있다. 독립출판물 역시 마찬가지다. 잡지는 오프라인 행사나 온라인 플랫폼, SNS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지식, 새로운 볼거리를 위해 계속해서 잡지를 발전시킨다. 잡지를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 루도비코는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에서 “이런 종류의 출판은 주로 대안적인 출판물로 바이러스성 의사소통 모델을 통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 사이에 아이디어를 알리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현재의 독립출판은 이런 점에서 하나의 작은 아고라로 기능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다른 독립 출판물의 존재 이유는 개별 책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과감함에서 찾을 수 있다. 임경용 더 북 소사이어티 대표는 독립출판의 미덕으로 “책에 대한 인식의 확장, 가능성의 확장”을 꼽는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자기 형식대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것이 나온다고 한다. 요즘에는 가까운 제본사나 프린터만 있다면 자유로이 책을 내고, 지식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만의 책을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취미나 작업을 각자 출판하고, 지인에게 나눠주기도, 소장하기도 한다. 혹은 정말 독립 서점에 납품하면서 더 넓은 독자를 만나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은 그 존재 자체로 출판물의 지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립출판의 역사와 현재

 

독립출판은 대안출판으로부터 출발한다. 팸플릿 형식으로 배포되어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을 이끄는 것에도 큰 역할을 했으며 출판의 힘은 멕시코 혁명, 러시아 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긴 역사흐름을 갖는다. 또한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에서도 독립출판은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그들은 책의 내용을 통해서 아방가르드 운동의 필요성과 지향점을 제시했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운동같은 경우, 내용을 넘어 형식까지 과감하게 바꾸면서 출판물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과감한 시도는 기존의 인쇄 방식까지는 버리지 못했는데 이 개념을 변화시킨 것이 에디슨의 스텐실 복사기의 출현이다. 몇몇의 뜻을 같이하는 공동체들은 저렴한 인쇄비용과 주류 인쇄 시설의 바깥에서 자유로이 출판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기술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소규모 출판, 대안 출판의 역사는 독립출판의 현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방가르드 운동이 그 당시에 새로움에 대한 추구와 기존 예술에 대한 반전을 취지로 시작된 것처럼 독립출판 역시 기존의 출판물이 해내지 못했던 것들, 할 수 없었던 것을 겨냥하면서 출발한다. 몇몇의 독립출판물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도서번호)가 없이 출판되기도 한다. ISBN이란 책에 대한 일종의 주민등록제도인데, 이를 통해서만 기존 서점에 책으로 납품될 수 있다. ISBN이 등록되지 않는다면 책의 존재가 공식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ISBN을 갖지 않은 출판물의 경우, 독자들이 책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겠지만 몇몇의 독립 서점을 통해 독자와 비밀스레 만난다. 몇몇 출판물들은 이런 식으로 ISBN없이 독립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고는 한다. 독립출판이 그려왔던 궤적이 현재의 움직임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다는 또다른 증거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텀블벅의 총 후원금 66억여원 중 10억 여원이 독립출판 후원 금액이며 목표 금액을 달성한 1,507개의 프로젝트 중 558개의 프로젝트가 독립출판 프로젝트이다. 특히 매거진의 경우 558개의 프로젝트 중 167개이며 약 4억 4천만원 정도의 모금액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독립잡지에 대해 증대되는 관심에 맞추어 국내에서는 다양한 행사들도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독립출판물 축제라고 알려진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북 페어는 매년 개최될 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벌써 9회를 앞두고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출판의 새로운 방향을 만든 독립출판물들을 한 자리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독립서점의 개수와 접근성의 한계를 보완함과 동시에 더욱 다양한 출판물과 굿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이기에 독립출판의 부흥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이번 해에 열릴 북페어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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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의 매력 중 하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점이 독립출판의 가장 중요한 매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독립출판은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라, 생산자와 대화하고 유희하며, 더 나아가서는 독자가 생산자가 되어버리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데 제약이나 법칙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다. 오늘, 자신의 작업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조금씩 목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