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7년 5월 13일

자꾸 미루고 또 이르다고 할래?

제19대 대선 속 소수자 인권

 

 

'나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 집회 ©연합

‘나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 집회 ©연합

 

지난 4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여성단체들의 주최로 집회 ‘나는 오늘 페미니즘에 투표한다’가 열렸다. 한겨레에 따르면 위 집회의 기획단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대선 주자들은 인권의 원칙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소수자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1. 여성: 페미 대통령 선언, 낙태죄는 여전

여성 이슈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여성 대표성을 확대하는 “여성동수내각”,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성평등 임금공시제”, 성차에 기반한 폭력 전반을 포괄하는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 등 성평등 공약을 내놓는 등 이례적으로 주목받았으나 낙태죄 폐지 등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한 홍준표 후보의 성범죄 모의 사실과 공공연한 여성혐오 발언, 그리고 서울경제 등의 언론이 “유승민 딸, 청초한 외모 눈길” 등의 기사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성추행 사건에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국민딸”이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사용하는 등 오히려 대선을 통해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여성신문 진주원 기자는 지난 4월 <문재인·안철수, ‘낙태죄 폐지’에 머뭇 머뭇>을 통해 “두 사람 모두 여성들이 요구하는 ‘낙태죄 폐지’만큼은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형법은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을 한 의사를 형사처벌”하지만 “성관계 파트너인 남성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으며 낙태죄로 인해 “여성은 터무니없는 수술비용을 요구받거나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권에서 낙태죄 폐지 의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는데, 지난해 9월 정부가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공포”해 “이를 계기로 촉발된 낙태죄 폐지 촉구 시위와 발언”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당선된 문 대통령의 공약에 낙태죄 폐지 등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는 공약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지난 2월 16일에는 “인권단체들이 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민주당과 문 후보를 규탄”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차별금지법은 헌법으로 보장된 평등권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국민의 권리”라며 “그동안 어디 말할 곳 없이 참고 견뎌온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2. 성소수자: “저 사람 맞나요”, 기본토대조차 없어     

성소수자 이슈의 경우 당시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 논란을 통해 잠시 이슈로 떠올랐으나 이후에는 홍 후보의 혐오 발언을 이용한 유세에서만 언급되었을 뿐 여전히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 등 성소수자 단체가 10년 이상 주장해온 주요 의제조차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대선 후보가 “동성애”를 “성소수자”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등 남성 동성애자 외의 성소수자인 여성 동성애자・양성애자・범성애자・무성애자・인터섹스・트렌스젠더・젠더퀴어・논바이너리・퀘스쳐너리 등의 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제도 또한 꾸준히 요구되어 왔음에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4월 문 대통령은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해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반대의 뜻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최근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논란으로 인해 성소수자 단체를 포함한 인권 단체들이 “군대 내 동성애를 사실상 불법으로 규정하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군형법 제92조6 폐지”를 재차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해명이 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한 문 대통령은 “군대 내 동성애가 허용되면 성추행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으나 현재 군대 내 성범죄는 군형법 내 다른 조항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어 “군형법 제 92조6는 과잉입법이며 성범죄 억제력이 없다”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인권 단체들의 주장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모든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의 인권을 보장하는 토대가 될 수 있는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들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사실상 반대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커플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에 대한 제도적 대안마련”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으나 이번 대선에서는 성소수자를 위한 공약을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장애인 참정권 기자회견 ©뉴시스

장애인 참정권 기자회견 ©중앙일보

 

지난 9월 선거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17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사회 흐름과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대하면서, 약간의 동정 어린 눈길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말했다.

 

#3. 장애인: 좁디 좁은 참정권, 적폐는 단계적 폐지  

장애인의 경우 투표권 자체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제기되었다. 지난 5월 4일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자유한국당 당직자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 지적장애인을 사전투표에 동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투표를 종용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의 <정신병원에 있는 29년간, 단 한 번도 투표하지 못했다>라는 기사에 따르면 정신병원・장애인 시설에서는 선거에 대한 안내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거처한 곳에서 투표하도록 하는 거소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부정선거로 인해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선거공보물, 투표용지, 투표소 위치, 대선관련 방송 등에서 “장애유형별로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장애계의 꾸준한 요구에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편 2017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계 3대 적폐로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정책을 제시하고 셋 모두를 완전 폐지할 것을 주장해왔다. 장애등급제의 경우 장애의 경중을 따져 등급별로 지원함으로서 다양한 “장애상태와 환경요건에 따라 지원”받을 기회를 막아왔으며, 부양의무제의 경우 빈곤층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모・가족 등의 부양의무자가 소득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하여 소득을 낼 수 없는 상태에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장애인을 가로막는 경우나 장애 자식을 둔 부모가 무한정 책임을 지는 경우를 빈번히 발생시켰으며, 수용시설 정책의 경우 장애인을 강제로 사회에서 격리하고 “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했으며 “인권유린 사태를 다수 발생”시켜왔다. 비마이너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장애계가 요구해온 3대 적폐 청산 요구를 공약으로 일부 수용”했으며 “장애인들이 요구해온 내용을 상당수 반영”하고 있다. 다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방안은 단계적인 폐지를 말하고 있어 완전 폐지를 주장해온 장애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지난 9월 선거일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점 앞에서는 청소년 단체들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집회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열었다. 위 집회의 선언문에 따르면 이들은 “[촛불집회로] 함께 만든 이 대통령 선거에, 청소년은 참여할 수 없다”며 “청소년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말했다.        

 

 

청소년 참정권 집회 ©청소년 운동 및 시민사회단체

청소년 참정권 집회 ©청소년 운동 및 시민사회단체

 

#4. 청소년: 선거연령 하향만? 청소년 정책은 미약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와 백남기 농성장, 이번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학칙에 의해 징계를 받는 등 참정권을 침해받는 경우가 많았으며, 비청소년 참가자가 청소년 참가자를 “기특하다”는 등 대상화하는 것이 논란이 되어 집회 주최측이 “나이와 관계없이 존댓말을 쓸 것”, “나이 등으로 차별하는 언행을 삼갈 것”을 공지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에 청소년 단체들은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청소년이 정치적 요구를 사회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가정, 일터 등 일상 속에서뿐만 아니라 집회에서조차 청소년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정치권이 관심이 가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을 시작으로 한 청소년 참정권 확대 보장을 요구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을 약속했지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이 요구해온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 보장하는 여러 정책이나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교육현장 내] 체벌 및 언어폭력 근절”, “학습시간 축소”, “전국 수준 학생인권법 제정”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부분 찬성・사실 반대”해 청소년 공약은 다른 공약에 비해 미약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언문에 따르면 청소년은 현재 정당가입이나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많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정치적 활동과 집회 참여를 징계의 사유”로 삼고 있어 “기본적인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으며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정책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 필수적인 “헌법적 권리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겨레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청소년 단체가 요구한 “선거권・피선거권・정당가입 및 활동・표현의 자유(선거 운동) 보장”에 대해서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에만 동의하고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 된 바 없다”고 답했으며, 지난 5월 2일에는 “청년 정책 브리핑”을 통해 “정당가입 연령 제한 폐지”까지를 약속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위해 모인 소수자 단체들 ©여성신문

차별금지법 제정 위해 모인 소수자 단체들 ©여성신문

 

지난 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소수자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나중에, 다음에,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묻자. 혐오와 폭력이 벌어지는 바로 지금, 이 현실에 대해선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고 말했다.

 

소수자의 대선은 다르다

투표권이 없는 이주자들 또한 대선을 맞아 이주자의 대선을 치렀다. 여성의 대선, 성소수자의 대선, 장애인의 대선, 청소년, 이주자의 대선은 “국민의 대선”과는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며, 여성 성소수자의 대선, 장애청소년의 대선 또한 매우 달랐을 것이다. 만약 같은 것이 있다면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이주자⋯”, 이들 단체가 지난 10년 간 함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는 강남역10번출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주인권연대 등 28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차별은 반대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명확한 답변을 미뤄왔으며 지난 2월에는 “기존 인권위법으로 충분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한국일보에 따르면 박찬운 전 국가인권위 인권정책본부장은 “인권위법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차별금지를 명문화한 국가인권위 설치법에 불과”하며 “구체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법 부합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고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가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이러한 차별행위가 있을 때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를 규정한 일반법”이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에 숨지 않는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는 지난 4월 대선 중 긴급 브리핑을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새 정부에 당부한 바 있다.

 

 

 

정한별 기자

wjdgksquf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