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7년 4월 29일

“저는 이상한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 공론화

 

지난 4월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 아카이빙 계정이 트위터를 통해 개설되어 관련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한편 대나무숲을 통해 게시된 우리학교 음악원 피아노과 위계폭력 사건을 제보하는 글에는 위계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지난 3월 서울예대에서는 위계폭력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처럼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은 분명히 수면 위로 공론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위계폭력을 ‘집단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 ‘예술작업을 위해 당연하고 불가피한 규율’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한편 학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활동하는 모임인 “서울예대 연락해요”는 지난 3월 대자보를 통해 “우리는 ‘예술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어왔던 규율과 강압에 대해 얘기해야만 한다”며 “억압하고 강요해야만 질서가 잡히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위계폭력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위계폭력을 공론화하는 제보에 위계폭력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리는 것은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이러한 댓글의 유형으로는 제보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거나 제보의 내용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제보가 집단의 존속에 위협이 된다고 보거나 집단 내부의 특성・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 제보자를 사회 부적응자나 ‘어린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 위계폭력이 과정이나 추억으로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있다. 특히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 제보의 경우 예술계의 특성을 들어 위계폭력을 정당화하는 댓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술대학 내 조직이 “현장진출을 위한 준비, 일반 사회와의 구별을 위한 과시적이고 의례적인 행동, 공동창작조직”이라는 요소를 군사주의 문화를 채택하는 논리로 사용한다고 구기환은「예술대학 조직문화에서의 제도화된 군사주의」에서 밝혔다. 서울예술대학교 연락해요[이하 연락해요]는 지난 3월 첫 번째 대자보를 통해 “군기 문화는 예절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두 번째 대자보에서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을 비판하며 “이 모든 일들은 예의를 배우기 위함과 동시에 동기애를 고양하기 위한 의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은 “현장진출을 위한 준비, 예절 교육, 공동창작조직 내의 동기애” 등을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우리학교 음악원 피아노과 위계폭력 사건을 제보한 대나무숲 글에 달린 위계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댓글들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앞뒤상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제보자가 위계폭력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맥락의 주장을 하는 댓글이나 “과 특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규율이 필요하다”는 맥락의 주장을 하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위계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공동작업을 위해 “필요”하거나 “효과”적이라고 해도, 공동체를 위한 “규율”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아무리 누군가에게는 당연하다고 해도, 그 질서가 위계의 아래에 위치한 이에게 폭력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위계폭력이다. 또한 공동체가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규율을 사용할 때는 구성원 모두의 합의나 미리 합의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그 합의가 강요된 것은 아니었는지, 정말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공정한 토의의 결과였는지를 항상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의 규칙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오래 전부터 유지된 위계질서의 가장 아래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은 ‘신입생’이 공동체의 규칙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이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거나 새로운 규칙을 제안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대학 공동체의 주요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서울예대 위계폭력 비판하는 대자보 훼손돼  

한편 지난 3월 서울예대에서는 위계폭력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자보를 게시한 연락해요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어떤 것은 갈기갈기 찢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고, 어떤 것에는 ‘정신차려 OO아’, ‘ㅄ’, ‘ㄲㅈ’ 등의 말이 쓰여져 있었다”고 밝혔다. 연락해요는 서울예대 “학내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군기문화 및 성폭력 등)을 근절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모임”이다. 연락해요는 다양한 창구를 통해 제보를 받고 있으며 연락해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현재 위계폭력을 고발하는 제보를 포함한 56개의 제보가 게시되어 있다. 또한 지난해 3월 연락해요는 “매년 신입생이 들어오는 새 학기가 되면 인사 받기 부담스러워서 도망 다니시는 선배들”과 “꼭 관등성명의 인사를 해야 하나?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녕하세요 배지”를 제작했다. “배지를 단 사람을 보면 선후배를 떠나, 관등성명이 아닌 편안하고 친근한 상호인사”를 나누는 것이 배지의 사용법이라고 한다.

 

또한 연락해요는 지난 3월 개강을 맞아 위계폭력을 비판하는 첫 번째 대자보를 부착했다. 대자보는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신입생들은 교내에서 과 잠바를 입고 명찰을 하고 인사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연락해요는 대자보를 통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주도하는지 알 수 없는 군기 문화는 예절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락해요는 “우리는 ‘예술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어왔던 규율과 강압에 대해 얘기해야만 한다”며 “인사를 강요하는 것, 과복을 입게 하고, 명찰을 매게 하는 것, 모두 부당”하다고 말했다. “우연히 몇 년 일찍 대학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벌주고, 집합을 시킬 권리”는 생기지 않으며 “그 누구도 인사를 강요받고 비합리적인 규율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연락해요는 “연극, 영화라는 장르적 특수성은 변명이 될 수 없다”며 “단체 생활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조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독단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희생을 전제로 한 방식은 이미 퇴색한 방식”이고 “억압하고 강요해야만 질서가 잡히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락해요는 “상명하복의 위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은 차이에 대한 감각과 다양성 또한 부재할 것”이라며 “[개인의 자율을 보장하는] 이런 변화는 걱정하는 것처럼 예대를 망치긴커녕 자유롭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며, 지금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말로 대자보를 끝맺었다.

 

 

작은 것들의 정치

연락해요는 활동을 하면서 “너무 급진적이다”, “조급해 하지 마라 학교는 변하고 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대자보를 통해 밝혔다. 또한 연락해요는 “어째서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규율들을 폐지하자는 것이 급진적”이냐며 “성범죄, 폭행죄 같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들을 간신히 막아놓은 것에 위안하고 머물러선 안 된다”, “학교 내의 수직적인 군기 문화가 남아있다면, 언제든지 재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내에 여전히 위계폭력을 유발하는 문화가 남아있다면 진정한 해결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알리 공동기획 기사 <학내 성폭력, 지금, 여기>에서 김종혁 기자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공동체적 해결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에 따르면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외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성폭력 사건이 해결되려면 사건이 발생한 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이 [⋯] 피해자의 입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공동체는 집단 권력을 행사하여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공동체에서 배제시키거나, 사건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며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데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김 기자에 따르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중심으로 해당 사건이 공론화되고, 공동체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되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해야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여러 전문가가 입을 모았다고 한다.

 

한편 홍성수 교수는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대해 「대학 내 반성폭력정책의 과제와 전망」에서 “[사건에 대한] 법적 처벌과 더불어 ‘작은 것들의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공식적이고 대안적인 정치 행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법과 국가를 경유하지 않는 이러한 ‘작은 것들의 정치’를 복원하는 정치적・사회적 실천이 대학 내 반성폭력정책의 중심적 과제로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개념은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집단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로 여겨지던 무언가를 SNS라는 공론장으로 끌고 나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예술작업을 위해 당연하고 불가피한 규율로 여겨지던 무언가에 위계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우리 학과”, “우리 창작집단”의 사적인 일로 여겨지던 위계폭력이 공적인 사건이고 대학 공동체 전체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 이들 모두가 “공동체적 해결을 위한 공론화”이자 “작은 것들의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저는 이상한 세계에 살았습니다”

지난 3월 훼손된 서울예대 내 위계폭력에 대한 두번째 대자보는 “고백합니다”, “저는 이상한 세계에 살았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글쓴이는 대자보를 통해 “신입생이던 저는 이해하기 어렵던 일이 많았다”며 “입고 싶지 않은 과잠바와 명찰, 원하지 않는 관등성명, 체육대회 연습 필참, 그리고 ‘해맞이’”에서 일어났던 위계폭력에 대해서 말했다.

 

글쓴이는 해맞이에서 일어났던 위계폭력에 관해 이야기 한 후에 “학교 다니는 게 무서웠다”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년을 보내고 돕바를 입고 후배”를 받았고, “더 이상의 가혹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탈출했다고 생각했고, 모든 일들이 지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생겼다”. 글쓴이는 “어느 날 공연에서 군대 내 가혹행위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글쓴이는 “그 일들이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살아있다는 것”을 그 때야 알았다고 한다. 글쓴이는 “그 일들을 겪을 당시에 저는 ‘여긴 원래 이런 곳이다’ 싶어서 참고, 버티고, ‘이겨냈다’”며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버티고 이겨내면 그 일들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 일들은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있을까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더 이상 이런 일은 없다고. 네, 압니다. ‘해맞이’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해맞이를 하게 했던 그 생각, 의지들도 없어졌습니까?”

 

글쓴이는 “이 이상한 세계를 제 세대에서 없애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드리는 것이 죄스럽다”며 “저는 이상한 세계에 살았다”, “그리고 제가 살았던 이상한 세계가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라는 말로 대자보를 끝맺었다. 대자보 전문은 서울예술대학교 연락해요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callmebabysi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한별 기자

wjdgksquf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