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7년 4월 28일

독립잡지 기획4
VOSTOK

‘Vostok'(이하 ‘”보스토크”)은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최초로 우주를 여행한 유인 우주선이다. 1961년, 보스토크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며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렸다. 그로부터 55년후 새로운 보스토크가 이륙했다. 사진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며, 더 나아가 구축하려는 잡지이다. 이번 독립잡지 기획에서는 작년 11월 창간된 사진잡지인 『보스토크』를 소개하려 한다. 사진잡지라는 하나의 타이틀은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사진과 현대미술, 디자인, 독립출판이 섞이며 만드는 새로운 지식과 예술을 지향한다. 창간사에서는 “『보스토크』 매거진은 동시대의 사진을 억누르는 낡은 본질주의나 동어반복을 거부하며, 새로운 비평과 기획이 활동할 매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보스토크』의 1호는 사진을 지배해온 남성 중심 역사에 반기를 들며 “페미니즘: 반격하는 여성들”이라는 페미니즘 기획을 내놓았다. 최근 불거진 로리타 논란부터 사진계 성폭력 사례 설문조사까지 하나의 주제를 잡고 파고든 글과 통계적인 수치까지 더해진 완성도 있는 잡지였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은 글과 어우러지며 ‘카메라를 든 여성’의 존재를 입증한다. 1호의 글과 사진은 서로를 순회하며 페미니즘과 사진 사이의 양립을 주장한다. 사진은 남성역사를 굳건히 갖고 있었던 가부장적 방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방벽을 파괴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보스토크』의 창간호는 ‘무기로서의 사진’을 주장한다.

 

이어서 나온 2호는 ‘뉴-플레이어 리스트’를 다룬다. 새로운 작가, 필자, 공간, 행사를 모아 국내 사진 지형의 한 단면을 조명한다. 새로운 작가들의 사진과 글이 어우러지며 『보스토크』 2호에서는 사진 지형의 미래를 예측한다. 『보스토크』 2호의 기획은 새로운 작가나 필진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며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보스토크』는 창간사에서 밝힌 새로운 지식과 예술을 만드려는 시도에 충실한 것 같이 보인다. 그들은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제도나 권력자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우리 역시 절대 권력화되지 않겠다”고 덧붙인다. 보스토크가 우주를 향했던 것처럼 이들은 새로운 예술계를 향한다. 그들의 무기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 『보스토크』의 편집장 박지수에게 들어보았다.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보스토크』를 출간하게 된 계기 및 의도와 과정을 듣고싶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진책이 잘 안 팔린다고 하고, 반면에 잡지를 사보는 사람들은 볼 만한 사진책이 없다고 한다. 과연 볼 만한 사진책이 없어서 안 팔리는 걸까, 아니면 워낙 안 팔리니까 볼 만한 사진책이 안 나오는 걸까? 『보스토크』에 모인 6명의 편집동인은 사진이 시각예술 분야 중에서 콘텐츠로 가공할 수 있는 확장성이 큰 매체이며, 독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그 확장성과 매력을 개발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 이유를 제대로 된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생산자 중심으로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사진잡지들은 창작자들의 생산물을 그대로 가져와 소개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옮겨온다.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독자에겐 설득력이 없거나 매력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눈이 밝은 에디터들의 에디터십(editorship)이 해법이라고 여겼다. 에디터들이 창작자의 1차 생산물을 발굴하고, 이를 유의미하게 가공해야만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콘텐츠가 되고 시장에서 유통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시작이 『보스토크』였다. 잡지는 가장 빠르게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스토크』의 창간사에서 “<VOSTOK> 매거진이 다루는 것은 사진과 현대미술, 디자인, 독립출판 등이 맞닿아 있는 경계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지식과 예술”이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보스토크』를 단순히 ‘사진’잡지로만 규정하기에는 꽤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방향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진잡지”의 정의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보스토크』는 ‘사진’잡지다. 그동안 사진잡지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고, 사진 영역 바깥의 필자들을 섭외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사진이 있다. 원래부터 사진의 영역은 광범위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그동안 사진잡지들이 사진의 영역을 매우 축소해서 다룬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사진과 맞닿은 넓고 다양한 경계를 다루려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거라 본다. 새로운 사진잡지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사진잡지에서 하지 않았던 시도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이 잡지의 여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될 지 궁금하다.

 

위에 언급한 창간사의 한 문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독립출판’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독립출판을 새로운 지식과 예술을 창출해내는 하나의 부분이라고 보았나?

 

종이책의 위기 이후, 종이책의 생존방식은 오히려 분명해졌다. 온라인에 없는 콘텐츠를 담는 것이다. 또한, 종이책을 사는 독자들의 성향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를 원하고, 자신의 취향과 동기화되는 책을 선택하는 것다. 여기서 취향은 단순히 선호가 아니라 주제와 내용 그리고 책의 디자인이나 물성까지 종합적인 감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취향은 기획상품처럼 만들어낸 일련의 대중지향적인 책을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성향에 맞는] 다종다양한 콘텐츠가 요구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생산자의 취향과 소비자의 취향이 일치하는 콘텐츠가 지속가능성을 얻게 된다. 대규모의 시장은 아니지만 200부, 300부, 500부 규모로 유통하면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과 작업이 다양하게 창출되고 있다고 본다.

 

잡지를 읽어보면 항상 많은 필진, 작가들과 함께하는 것 같다. 이들의 모집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동시대 영상비평을 주제로 하는 『OKULO』의 경우, 의도적으로 20대에서 30대의 젊은 필진과 비평작업을 함께 한다. 『보스토크』는 필진 모집에 기준이 있는가?

 

창간사에도 나와 있다시피 『보스토크』는 기존의 사진씬, 다시 말하면 사진학과,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을 거치지 않고도 유의미한 작업물을 생산해내는 작업자와 필자가 있으며,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기준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고, 이와 관련해서는 편집동인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 바로 “물건을 보고 판단하자”라는 말이다. 우리는 [필자를] 모집한다기보다는 그저 책과 전시, 웹페이지 한등을 통해서 ‘물건’을 찾아다닌다.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이나 글이 있다면 [편집 동인들끼리] 서로 나눠보며 그 물건을 독자들에게 소개해도 될 만한 것인지,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인지를 확인한다.

 

1호와 2호를 보니 크게 ‘포토에세이’와 ‘특집’으로 나뉜다. 포토에세이를 특집과 분리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포토에세이’는 대상으로 하는 사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굳이 하나의 특집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국내 사진씬에서 생산되는 글은 양이나 질적으로 풍성하지 않다. 필자역시 다양하지 않다. ‘포토에세이’ 기획은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사진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방식이나 사유를 엿보고자 기획한 코너다. 청탁할 때는 어려운 사진이론과 사진 미학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눈과 생각으로 사진 한 장을 끈질기게 바라보며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특집에 실린 글들이 다소 전문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있기에 포토에세이를 읽으면서는 자유롭게 사진을 바라보는 사유와 저마다의 감정을 느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글을 통해서 독자들이 사진의 매력을 새롭게 알아갔으면 한다.

 

1호의 특집은 ‘페미니즘: 반격하는 여성들’이었고 2호의 특집은 ‘뉴-플레이어 리스트’였다. 특집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나 주의하는 것이 있나?

 

동인들이 모여 잡지의 꼴을 이야기할 때, 특집 주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파고들면서 매호 완결된 책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어떤 주제를 정해서 어떻게 다루느냐가 곧 잡지의 정체성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러 다양한 형태의 코너와 연재를 구상하지만, 정작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담, 인터뷰, 탐방 등 여러 꼭지의 이름이나 형식은 생산자 중심으로 짜여져있고, 연재 또한 필자의 에너지가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에 따라 독자들의 관심도 끝까지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논의 끝에 구태의연한 구성을 피하고 특집에 에너지를 쏟아붓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뉴스라든가 전시소식이라든가 잡지라면 으레 있는 꼭지도 넣지 않았다. 온라인에 비해 한계가 클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특집을 다룰 때는, 크게 사진 바깥의 주제를 사진 안으로 끌어오는 방식과 사진 안의 주제를 밖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1호의 기획이 전자라면 2호의 기획은 후자에 해당된다. 각 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1호의 ‘페미니즘’ 특집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사진 콘텐츠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창간호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다. 2호의 ‘뉴-플에이어 리스트’의 경우는 젊은 작업자를 소개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해야 작가들이 주목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기존처럼 매호 고정적으로 1~2명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꼭지로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한 번에 모아서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봤다.

 

 

현대의 출판은 웹진이나 웹사이트의 형태를 갖거나,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많은 독자를 모집할 수 있는 것이 큰 이유다. 『보스토크』는 종이출판만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종이로 인쇄하는 형태를 택했는지 궁금하다. 다른 포맷을 사용할 생각은 없나?

 

국내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비용이 적게 들이면서 많은 독자를 모집한 웹진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료 구독 형태로 웹진이 유지되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종이잡지가 사양산업이 되면서 웹진이나 전자출판이 대안으로 거론되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료 구독 모델이 정착되기 어렵고 웹진 등 전자잡지의 광고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엄밀히 따져보면 비용이 줄어드는 부분은 인쇄비와 물류비에 해당된다. 편집부의 인건비, 디자인 비용, 원고료 등은 그대로다. 웹진이 인쇄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유료로 판매할 여지가 크지 않으므로 수익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리고 종이냐, 온라인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비용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성격이며, 그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거라고 본다. 『보스토크』 매거진의 경우 종이와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유불리를 떠나 생산하려는 콘텐츠의 성격과 독자 설정에 있어 종이출판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온라인에서 볼 수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종이잡지에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종이잡지에 담은 콘텐츠를 가급적 무료로 온라인에 배포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3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떠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3호는 5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미리 알면 재미없을 것 같다.

 

『보스토크』의 창간사에서 잡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박”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보스토크』를 언제까지 이어나갈 예정인가?

 

『보스토크』의 시작에는 텀블벅에서의 독자 후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원해준 독자들이 『보스토크』를 외면할 정도로 콘텐츠가 망가질 때는 주저하지 말고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처음 독자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았던 잡지의 정체성과 콘텐츠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 잡지를 만드는 인력이 나이를 먹을수록 잡지의 정체성이나 콘텐츠가 ‘젊음’을 잃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젊음은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와 함께 완숙하게 나이를 먹는 잡지도 필요하고, 그에 따른 미덕도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대의 젊은 작업자들과 새로운 담론을 적극 수용해야 할 『보스토크』가 오히려 그것을 못 따라가거나 외면한다면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모든 편집동인들이 스스로 업데이트를 하지 못할 때, 즉 『보스토크』가 아웃데이트(out-of-date)된 잡지로 변한다면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보스토크』를 창간함으로써 지향하는 목표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보스토크』의 편집동인은 6명의 에디터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사진을 비롯한 시각예술에 관심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전문분야와 경험이 제각기 다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진 관련 콘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잡지뿐만 아니라 단행본, 강의프로그램, 전시나 세미나 기획 등도 고려하고 있다. 유의미한 콘텐츠를 만들어 독자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노동과 생계를 즐겁게 영위하는 것을 원한다.

 

박귤 기자

kyulp1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