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년 4월 28일

[기고] 여행의 단상(2) 완전한 대화

스몰토크란 멋쩍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하는 간단한 대화를 가리킨다. 정보 전달보다는 분위기를 바꾸는 게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대개는 서로가 신경쓰거나 책임질 필요 없는 내용을 이야기 주제로 한다. 친해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렇지만 친해지기 또한 업무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대화는 ‘지금 여기’ 이외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게 만들곤 한다. 결과적으로 친밀해지기 위해 하는 스몰토크가 더러는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강박과 중압감으로 다가오고, 나중에는 정보적으로도정서적으로도 스트레스만을 남기고 마는 저품질 대화밖에 되지 못한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스몰토크의 많은 부분이 반전된다. 낯선 곳에서 만났기에 서로의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가까워져야한다는 의무감 없이 자유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 또한 서로가 지금 이곳이 소중한 여행길에서는 하릴없는 수다 대신에 지금 이곳과 관련있는 대화를 바란다. 너도나도 여행자인 입장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다른 배경을 신경쓰지 않고, 당장 지금 펼쳐진 상황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만났다면 지금 이곳의 음식에 관해서, 미술관에서만났다면 방금 본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바로 헤어질 사이에 더이상의 문답은 애당초 필요 없어서다. 어쩌면 여행중 스몰토크야말로 가장 완전한 대화 형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관광코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관심사가 두드러지는 장소에서라면 대화의 밀도는 훨씬 높아진다. 굳이 인적드문 이곳을 찾아온 여정만으로도 이미 서로의취향은 일정 부분 합의 됐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여길 온 거지? 내가 이곳을 찾은 사연만큼이나 그가 이곳을 찾은 사연이 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타지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건 행운일 따름이다.

 

가끔은 이야기가 길어지기도 한다. 떠나는 버스가 늦게 온다거나 미술관 문이 돌연 닫았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물론 이때에도 서로의 소개 따위가 중요하지않은 건 여전하다. 삼십 분 더 머무르게 되었더라도 어차피 우리는 헤어질 사이일 테니까. 다만 조금전 얘기한 음식과 작품에서 뻗어나간 다른 대화들이 시작한다.이곳에 찾게 된 여정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분명히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만나자마자 알 수 있었지만,이곳에 오기까지의 지난 여정 모두를 공유한다는 건 정보의 측면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예술작품을 말해도 상대방은 알아듣지를 못하고,상대방이 ‘이것만큼’이나 좋지 않냐며 되묻는 어느 이야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한 공감대는 금세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부딪힌다.

 

지금 여기에서 잠깐 하고 마는 대화를 넘어서, ‘지금 만난’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취향을 공유할 수 있었던이유도 지금 만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서로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반하듯, 앞으로의 이야기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정보의 공유가 필요한 것이다. 의사전달의 일차 재료가 사용 언어라면, 본격적인 소통을 위한 이차 재료가 요구된다. 뜻밖에 벌어진 일련의 대화에서 얼마만큼의 주석을 달고 읽을 수 있을까.

 

이럴 때 현실적으로 와닿는 게 바로 고전의 중요성이다. 어느 시대 어디 누구나 읽기를 권장받는 작품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 속에서 고전은 쓸모없는구닥다리로 간주되기 일쑤이지만, 여행지에서의 대화와 같이 시공간이 일상을 초월할 때면 고전만큼 유용한 게 없다. 지금 당장 인기 열풍인 베스트셀러는 아무리말해도 ‘날 정보’에 불과하지만, 오래 전부터 어디서나 얘기 주고받던 고전에 관해서는 충분히 정보 공유를 전제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바로 사유를 공유하는 대화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전, 즉 클래식은 거센 바다를 헤쳐나가는 ‘함대’라는 뜻의 라틴어 클라시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루해만 보이던 클래식을 통해 대화가 가능해지자, 어느 상황에서건 사용할 수 있는 이 고전이라는 재료가 새삼 중요하게 와닿는다.

 

현실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지만, 만남의 과정에서 이야기는 현재-과거-미래 순으로 흐른다. 당장의 만남에서 서로의 느낌이 맞는지를 확인한 다음,상대가 어떻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됐는지 그가 보낸 삶의 궤적을 궁금해하고, 서로 다른 출발점이었지만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걸 공감함으로써 함께미래를 상상한다. 종종 우리는 상대방의 현재 상태보다 그 사람의 다른 배경을 조건으로 내걸어 대화를 어긋장내기 일쑤인데, 여행중 스몰토크는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행운을 다른 이야기의 장으로까지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재료까지 구비하고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사르트르는 자신의연인 사강과 만나 하는 이야기를 “기차 역의 플랫폼에 서서 처음 만난 여행자”의 대화에 비유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 이외의 것들을 따지거나 들추지 않으면서,두 지성은 그들이 지나온 오랜 시간을 교류할 수 있었다.

 

기고자 최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