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년 4월 28일

[기고] 여행의 단상(1)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기

우리는 시간을 차별 대우한다. 당시에는 똑같이 흘러가는 숫자일 따름이지만, 어떤 시간은 기억되지도 못한 채 몇 분 몇 초에 그치고, 어떤 시간은 두고두고 기억하여 끊임없이 지속된다. 소중한 시간과 경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되뇌는 우리의 이야기가 그때를 소중하게 만드는 셈이다. 그로써 시간은 길이와 속도와선명도가 조정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경험은 그렇게 이야기되기를, 그래서 순간이 아니라 영원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시간끼리의 경쟁인지도 모른다.

 

그런 경쟁구도 안에서 여행은 대체로 승률이 높은 시간이다. 여행지 자체가 특수할 수도 있지만, 여행 가기 전부터 그곳을 상상하는 시간과, 여행을 다녀와 그곳을떠올리는 시간을 합하기만 해도 여행의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나서다. 실생활 곳곳에서 어느새 “내가 거기에서 본 건데”를 말하고 들을 때면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러워진다. 단지 그때 벌어지고 지나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또한 ‘돌아갈 것’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니 특수한 경험을 겪는 확률도 훨씬 높을 테고, 그만큼집중력을 높이다 보니 평상시의 고민 또한 여행이라는 사건을 통해 갈무리되기도 한다. 여행기는 소중한 시간을 겪을 수 있는 일종의 모테키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야기되던 시간 역시, 다른 시간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운명에 처한다. 지금은 이게 영원인 마냥 소중히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언젠가는 이 역시도 잠깐의 순간으로 지나쳐버린다는 불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련의 기록은 소중한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소장 심리에 기초해서, 궁극적으로는 지나온 나를 잃지 않으려는 정체성 심리를 대변한다. 어떻게 영원을 약속할 것인가. 어차피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소중하게 보낸 시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한층 더 간절한 마음이다.


쇼펜하우어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는 건 보통 사람이고, 재능 있는 사람은 마음을 쓰는 것에 시간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정말 여행이 우리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해준 시간이라면? 그렇다면 당장 여행에 마음 쓰던 것을 넘어서, 돌아와 지난 시간을 되뇌어 때로는 늘이기도 때로는 줄이기도 하면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중한 시간만큼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앞으로 쓸 여행기는 특정 순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맛집이나 여행코스 꿀팁이라기보다는, 여행의 순간에 일어났던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기고자 최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