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7년 4월 15일

“위계질서 뿌셔뿌셔, 학내폭력 뿌셔뿌셔”

매년 3월 봄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대학가 똥군기”, “OT·MT 중 성폭력·가혹 행위 발생”을 알리는 보도다. 보도에는 “또”, “끊이질 않는”, “고질적인”, “병폐” 등의 단어가 주로 등장하며, 몇몇 언론은 성폭력·가혹 행위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학생 인권침해 행위”, “선·후배 간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건전한 학생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책이다. 하지만 법이 인정하는 인권침해 행위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용인되는 위계 폭력인 성차별, 나이주의 등이 대학 내 학내폭력을 구성하기 때문에 교육부의 대책은 학내 폭력 자체를 근절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3월 펭귄프로젝트는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들의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제를 개최하고 “지금 여기, 대학에는 평등이 필요”하며 “우리는 성평등에서, 즉 페미니즘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육부, “건전한 대학 문화 정착되길”

교육부는 지난 3월 “비정상적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보도자료를 통해 “[2014년부터] 매년 입학 전 「대학생 집단연수 운영 안전 확보 매뉴얼」”을 각 대학에 보내며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는데도 “일부 대학에서 성추행 수준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한 점에 대하여 유감을 밝힌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행사는 가급적 1일 이내 완료하되 2일 이상 진행 시 책임자를 지정하는 등의 내용을 추가하여「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운영 지침」을 시달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본 지침이 대학에 전파되어 적극적으로 시행”된다면 “새내기를 보내는 학부모의 염려를 덜고, 신입생이 희망차게 대학생활에 정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 2월 보도자료를 통해 “새 학기를 맞아 대학 내 학생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대학 내 선·후배 간 불법행위 대상 집중신고 기간 및 각 대학-관할 경찰서 간 핫라인이 개설·운영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건전한 대학 문화가 정착되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도 교육부는 문제를 “학생 인권침해 행위”와 “선‧후배 간 불법행위”로 보고 공적행사에서의 지도감독과 법을 통한 해결을 통해 “건전한 문화”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대책으로 삼은 것이다.

 

 

대학교 학내 폭력은 위계 폭력

하지만 법이 인정하는 인권침해 행위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용인되는 위계 폭력이 대학 내 학내폭력을 구성한다는 점, 이러한 폭력은 특정한 공적 행사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수업 중에도 용인되거나 심지어 교수를 통해 권장되면서 반복된다는 점, 특히 교육부가 목표하는 “건전한 문화”가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나 “불만” 없이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의 질서에 “정착”하는 표면적 평화가 될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 교육부의 대책은 학내 폭력 자체를 근절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 학내 폭력은 도를 넘은 특정인·특정집단이 아니라 교수-학생, 선배-후배, 남성-여성 등을 나누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한 쪽에게 부여하는 위계질서, 한국 사회를 유지해왔고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위계질서를 성실히 수행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 대학교 학내 폭력에서 주로 작동하는 위계는 “여자니까 ~하다”는 식의 발언을 하거나 남학생끼리 모여 여학생의 외모를 품평하는 등 여성에게 특정 성역할을 강요하고 성적대상화하는 성차별, 학번에 따라 선후배를 나누고 후배만 선배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등 선배에 대한 대접을 요구하는 나이주의이다. 또한 이러한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MT, FM, 상명하복을 지킬 것 등을 강요하는 군사주의이다.

 

 

선후배 위계를 만드는 나이주의

「오늘의 교육 34호」에 실린 <나이주의, 왜?>에서 공현 기자는 나이주의에 대해 “나이에 따른 차별, 그리고 나이에 따라 사람을 규정하며 사회적 규범을 요구하는 제도나 이데올로기, 넓게는 사회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말한다. 공현 기자에 따르면 이 개념의 뿌리는 “에이지즘(Ageism)”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에이지즘은 “1970년대에 미국 사회에서 제안된 개념으로, 그 당시에는 노인에 대한 차별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개념이 더 풍부하고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나이주의는 “10대를 [정치에 참여할 사고능력이 없는 ]초·중·고등학생으로 간주하는 것”, “40대 여성이라면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어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노인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특정한 나이대의 사람을 특정한 사회적 역할에 연결”시키고 역할 수행을 강요하거나 나이에 따라 권력을 부여하고 위아래를 나누는 것 등 폭넓은 범위의 차별까지 나이차별에 포함시킨다. 연장자와 연소자를 구별하여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존댓말을,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반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한국식 나이주의의 대표적 예이다. 나이 많은 것이 권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이주의는 한국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선후배 문화와도 연결된다. 선후배 문화는 대학생에게 학번을 매겨 선배와 후배를 구별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쓸 권력을, 존대를 요구할 권력을, 무언가를 명령할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연차에 따라 차별하는 문화다. “나이보다 엄격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대학의 학번이나 직장 입사기수도 변종의 나이차별인 셈”이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에서 김은형 기자는 말한다.

 

하지만 연장자에게 존대해야 하는 문화와 선후배를 나누는 문화 자체는 차별을 논할 때 주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 기자는 “나이주의가 여느 차별과 다른 것은 한 사람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선배가 시시콜콜한 잡무를 떠맡기면 나이가 조폭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후배가 양해도 없이 말을 놓거나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 지시를 거부할 때 솔직히 불쾌감을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사람의 예를 든다. 김 기자는 이처럼 “양가[모순적인]의 감정이 매우 일반적”이며 그만큼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의식하기나 인지하기도 힘든,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나이주의라고 말한다. 교육부 또한 보도자료에서 “새내기를 보내는 학부모의 염려를 덜고”라고 말하면서 “새내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새내기는 새-에 비하의 의미가 포함된 ‘내기[풋-내기]’가 붙어 생긴 말이다.

 

 

위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군사주의

한편 서울대저널의 <모두를 위한 ‘연령주의’는 없다>에서는 대학 내 선후배 문화에 대해 “이런 문화는 대학만의 특유한 현상은 아니”라며 “한국의 학생들은 초중고 시절부터 학년 간의 엄격한 구분과 상급생에 대한 복종을 주입받으며 연장자 혹은 상급생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되고 “이는 [학교 밖] 사회에서도 반복된다”고 말한다. 또한 “연공서열제[조직에 오래 있을수록 높은 지위를 얻도록 대우하는 제도]하에서 연소자에 대한 상급자이자 연장자의 권한은 당연시되고 또 유지”된다며 견고한 연공서열제를 가지고 있는 군대, “한국의 남성들이 지는 병역의 의무는 이 기제의 아주 중요한 도구”라고 밝힌다. 또한 그 예로서 “1960년대 이후에 사회가 많이 병영화됨에 따라 학교 분위기를 예비역 출신의 보수적인 남성 교사들이 주도했고 그 결과 나이차별주의가 강화됐다”고 말한다.

 

대학교 학내 폭력을 말할 때 ‘군기’라는 단어가 쉽게 연상되듯, 군대와 위계 문화의 연관성은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다. 여성주의 위키 사이트 페미위키에 따르면 군사주의(militarism)란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규율, 전체주의, 감정의 배제, 극단적 효율 추구, 폭력을 동원한 목적의 달성 등 군대의 조직적, 문화적 특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상 또는 태도”를 뜻한다.

 

나윤경 교수는「신자유주의적 주체, 한국 대학생들의 선후배 관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에서 “한국 대학생들의 공식적 자기소개 방식이 되어 버린 FM[field manual : 훈련 교관이 병사들을 훈련시킬 때의 지침] 정기적으로 있는 MT[membership/training : 단체의 구성원/훈련], ‘단체기합’, ‘얼차려’, ‘사수’ 등의 일상적 용어와 행위들은 한국 대학생들의 대학생활 일부가 상당히 군사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나 교수는 “학생들은 선배들이 MT를 ‘준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대학생들의 MT(membership training)가 영문 그대로 구성원들의 집단 훈련임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후배들을 훈련‘시키고’ 있음을 진술한다”며 “그 내용은 위에 인용된 학생들의 출신 지역과 소속 학교를 망라하여 동일한데, 그 이유는 훈련을 ‘주는’ 군 유경험자 남자 선배들이 ‘군대’라는 동일한 곳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군사주의가 가하는 성차별

나 교수에 따르면 “복학생들은 그들이 군대에서 받은 그대로의 훈련을 대학에서 재현”하며 “복학생들의 폭력성, 나이, 그리고 남성이라는 성별은 대학에서 엄청난 권력으로 변하여 후배 학생들을 제압”한다고 한다. 또한 나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일부 여학생들도 “복학생 남성들의 위치, 즉 선배가 되고 나면 그 남성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군림”한다.

 

군사주의는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면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 또한 정당화한다. 나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적지 않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성매매를 처음 경험하고 익숙”해지며 “그 때문에 제대 후에도 많은 남성들은 성매매에 대해 윤리적인 감수성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품으로 취급했던 그 경험은 캠퍼스에 돌아와서도 동료나 선후배 여성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에게 성적인 시선을 드리우게 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나 교수는 “이 남성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남성중심적 맥락의 강력함 때문에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대학교의 ‘일상’이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대학교 학내 폭력은 나이주의, 군사주의, 성차별 등이 중첩된 결과이다. 이러한 위계질서 속에서 약자에 속하는 이는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다. 특히 약자에 속하는 정체성을 여럿 가지고 있고 위계질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선배가 아니고, 나이가 어리고, 남성이 아닌데 위계질서를 따를 것을 거부한다면 더 심한 폭력에 노출되게 된다.

 

 

“학교 본부가 학내 폭력에 관심 가지지 않아”

나 교수에 따르면 “선배들에 의한 폭력이 학교나 사회에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대학 구성원들이 폭력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의미화하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권위가 ‘친밀함이나 결속력을 위한 필요악’ 혹은 ‘추억’으로 의미화되면서 성찰과 비판의 여지를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체기합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필요하다는 전체 응답 비율은 27.3%로,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수치”였다고 한다.

 

또한 나 교수는 “대학교육에 관한 담론이 구성원들의 학습권이나 만족감을 축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시장 논리와 맞물려 다양한 영역에서의 순위 매기기로 이루어지면서 대학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교육담당 행정부처는 물론 대학 자체의 주요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대학교 학내 폭력이] 가끔 언론을 통해 선정적으로 보도될 뿐 그것에 대한 심각한 논의와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은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위계질서는 그 자체로도 폭력이며, 위계질서에서 위에 속한 이들이 아래에 속한 이들에게 행하는 성폭력·가혹 행위가 용인된다는 메시지를 매 순간 전달한다. 또한 그럼으로써 아래에 속한 이들을 위축시키고 위에 속한 이들이 성폭력·가혹행위 등의 폭력을 행할 수 있도록 한다. 주류 언론이나 교육부, 학교 본부가 문제로 보는 “학생 인권침해 행위”, “선‧후배 간 불법행위”, “[직접적] 성폭력·가혹행위”는 현 시대에 통용되는 어떠한 도덕적 선을 넘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고, 가해자가 사과하고 학교 본부가 대책을 세우는 사태까지 이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일상 속에서 권장되는 위계질서 자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 때문에 현재 피해자에게 충분히 직접적이고 충분히 가혹한 학내 폭력은 수면 아래에서 멀쩡히 작동한다. 주류 언론과 교육부, 학교본부가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직접적] 성폭력·가혹 행위” 또한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뿌셔뿌셔 위계뿌셔”

한편 지난 3월 30일에는 서울 신촌에서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가 열렸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 200여 명은 “기쁘다 펭귄 오셨네 혐오를 뿌수자 / 대학이여 다 일어나 다 평등하여라”라고 노래하고 행진했다. 

 

또한 이날 참가자들은 “지금 여기, 대학에는 평등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시작된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선언>을 통해 “수많은 남톡방에 남겨진 말들과 군사주의를 불편 없이 반복하는 대학문화, 매년 새터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교수들의 혐오발언, 학생대표자와 그 후보들이 저질러온 수많은 성폭력을 마주하고도 대학사회는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 민주주의는 불평등의 해결 없이는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이를 미뤄온 역사들이 지금 얼마나 추악하게 발견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걸어 지나는 거리에서 우리는 더 많은 펭귄들을 만나고, 더 많은 반란의 불씨를 남길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존엄한 삶을 위해 평등한 대학,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대를 지금 여기에서 시작한다”라는 말로 3월 30일의 선언문을 끝맺었다.  

 

 

정한별 기자

wjdgksquf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