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7년 4월 14일

독립잡지 기획 1
OKULO

책은 지나치게 많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부족하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만나는 절판된 책들부터 번역의 문제로 구하지 못하는 수많은 글들은 아쉬움과 궁금함으로 얼룩져 결국은 그 색을 잃어간다. 우리에게는 책이 아주 많지만 그 책들 사이의 넓은 공백도 함께 갖고 간다. 현실적 이유와 한 토막의 게으름때문에 우리가 놓치는 다른 이들의 ‘표현’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공백에 좁게라도 색을 칠하는  책이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 또한 곳곳에 보이는 독립 서점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독립잡지들이다. 우리는 종종 잡지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이의 표현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걸 토대로 또다른 표현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하나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 책은 그래서 다양해야 하고, 더욱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놓치는 다른 이의 생각과,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창작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현재의 예술이 어떠한 움직임을 갖고 있는지, 그 모양이 어떤지를 보기 위해서 몇 가지의 예술관련 독립잡지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그들이 어떤 색의 물감으로 공백을 메꾸고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공백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점이 어디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이 기획을 통해 여러분이 창작과 표현의 결을 다양화했으면 한다. 누구나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고 내지 못할 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소개하게 된 잡지는 영상작업을 포괄해 다루는 영상비평 계간 잡지 「OKULO」(이하 “「오큘로」”)이다. 지난 해 3월 2일 창간호를 발간한 「오큘로」는 지난 1일, 4호를 출간했다. 젊은 필진들이 편집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지면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는 「오큘로」는 영상비평에 대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발행인 유운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큘로」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2012년 이후에 한예종 영상이론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에 수업을 들었던 이론과 학생 4명이 찾아와서 이론관련 공부모임 지도를 부탁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2주에 한 번씩 만나며 시작했었다. 2년 정도 공부를 하다보니 그 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해보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스터디 모임을 찾아다니면 얻게 되는 지식은 많지만 일종의 세미나 중독이 되어서 자신의 의견을 정하고 글로 그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봐왔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은 주제를 잡아야 하고, 그에 대해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과 보충할 점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잡지 출간의 목표를 잡게 되었고 2015년 1월 11일부터 본격적으로 학생들과 잡지 창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창간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영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외부의 모든 영상작업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원래 정했던 잡지 이름은 시계 수리공들이 끼는 작은 안경을 뜻하는 ‘루페(LUPE)’였다. 하지만 창간 준비가 늦어지면서 그 이름의 신생 출판사가 등록되어버렸다. (웃음)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한 이름이 ‘오큘로’였다.

 

한국에는 「오큘로」 외에도 영화 잡지들이 존재한다. 「씨네21」이나 「맥스무비」 등이 그렇다. 앞서 소개한 잡지들과 「오큘로」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에는 「씨네21」이나 「맥스무비」, 「매거진 M」이 있다. 후자 둘은 정보지보다는 산업지에 가깝고 「씨네21」은 산업지이면서 동시에 비평지의 성격을 갖는다. 사실상 비평을 하는 잡지는 「씨네21」밖에 없다. 90년대에는 한국에 영화잡지 열풍이 불었었다. 「키노」, 「필름컬쳐」, 「씨네21」 등의 수 많은 잡지들이 있었다. 물론 2009년을 기점으로 모두 폐간되어 사라졌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외국의 영화비평잡지들은 격월간, 계간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리적인 시간과 글의 질을 따져봤을 때 너무 짧은 시간은 적당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대부분의 한국 영화잡지들은 주간지로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을 제공하기보다는 거의 소개글에 가까운 글들만 실리게 되었다. 해외의 계간지들도 완전한 학술지가 아니다. 교양적인 글들도 계간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학술지를 제외하고] 계간으로 읽힐 수 있는 교양지는 없었다. 그래서 애초에 시간을 길게 잡고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리서치를 통해 충분한 시간동안 글을 쓰도록 하는 형태를 잡았다. 아직 완전히 대중적인 잡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상작업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교양지의 꼴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계간으로 출간되는 잡지의 좋은 점도 있지만 한계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대비가 있었는지 듣고싶다.

 

단점은 역시 뉴스나 리뷰가 많이 뒤쳐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는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보완하려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앞선 1년은 온라인에 대한 정비가 부족했는데 올해부터는 관심있는 전시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격주에 한 번씩은 업로드하려고 한다. 작년에는 오프라인 잡지에 신경을 썼다면 올해부터는 계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온라인 컨텐츠에 신경쓰고 싶다.

 

학생들과 시작해서 그런지, 젊은 필진을내세운다는 점에서도 타 영화잡지와 차별점을 갖는 것 같다. 젊은 필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가?

 

나는 2001년에 「씨네21」에 등단해 영화 평론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28살이었는데 평론가들 중에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계속 지나도 내가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해있었다. (웃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고 어린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거나, 평론가라기보다는 연예인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겁이 났었다. 평론가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10년 후에 옆을 봐도 같은 사람이 앉아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평론계의 느린 세대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었다. 그래서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젊은 평자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필진들과 일을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었나?

 

일단 아는 평론가분들께 학생들과 잡지를 낸다고 하니까 “잘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20대 초중반에게 일을 맡긴다면 “너무 어려서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불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일이 주어지고, 자리가 생기면 그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마음이 맞는 발행인을 만나 배급이 쉬웠다. 그래서 독립잡지로서는 여건이 좋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 분은 정말 드문 경우였고 대부분은 젊은 필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OKULO』 발행인 유운성 (사진: 서안)

『OKULO』 발행인 유운성 (사진: 서안)

 

그렇다면 반대로 젊은 필진들에게 갖는 기대는 무엇인가?

 

젊은 필진에게 기대했던 건 영화보다는 미술계 영상작업이나 독립영화 분야에 대한 것이 컸다. 개봉하는 영화는 일단 크게 걸리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 하지만 독립영화같은 경우, 관록이 있거나 훈련된 평론가들은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사를 하지 않는 이상 독립영화를 찾아다니면서 보는 기성 평론가가 거의 없다. 미술계 역시 젊은 작가나 신생공간에서 열리는 전시가 많은데 활동 경력이 많은 평론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어두웠다. 이들을 잘 아는 것은 오히려 젊은 세대였다. 아쉬웠던 건 이러한 젊은 세대의 반응이 SNS에만 멈춰있다는 것이었다. SNS 상에서는 반응이 좋은데 막상 그에 관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정작 그러한 영화나 전시에 가까운 사람들의 글은 찾을 수 없고, 나머지는 그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기성 평론가들로부터 방치된 작품들 중에는 실제로 살펴보면 흥미로운 영역들이 존재한다. 오히려 의미있는 작업들은 그 영역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작업들과 가까운 세대가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창간호에 실린 ‘김희천-강정석의 대담’은 나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생각과 그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엿볼 수 있었다. 젊은 필진에게 기대하는 점에 잘 맞았던 사례였다.

 

이제 출간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했던 기획이나 글의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편집진들끼리 회의를 거쳐 정하는 주제의 가장 큰 방향성은 어떤 기획이건 미술계, 영화계에 환원되지 않는 ‘동시대의 영상작업’이었다. 그게 영화일 수도, 설치작업일 수도, 심지어는 유튜브, 비메오, 아프리카티비, 뮤직비디오가 될 수도 있었다. 1호에서 다룬 오디오비주얼 리서치는 영화, 미술계 뿐 아니라 어디서도 발견할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다루었고 2호에서는 무의미하고 희미한 이미지가 갖는 힘에 대한 글이었다. 3호에서는 동시대의 영화에서 시간(duration)의 문제에 대해 다뤘고 4호에서는 동시대의 작업에서 픽션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뤘다. 토픽은 한꺼번에 큰 줄기를 잡고 시작하지는 않았고 그때그때 합의를 거쳐 정했었다. 다만 생각했던 것은 동시대 영상을 보편적으로 가로지르는 토픽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아직까지는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실렸던 기획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면 아쉬운 점들이 있을 것 같다.

 

1호부터 말하자면 주제와 인터뷰 모두 좋았는데 오디오비주얼 리서치에 대해 소개만 하고 끝난 느낌이 강했다. 조금 더 강론적인 부분이 풍부하게 드러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호는 실린 글 하나하나는 매력적인데 결속력, 통일성이 부족했다. 주제는 통일되어 있는데도 기획을 다 읽고 잡혀야 하는 공통적인 실마리가 없었다. 3호는 기획뿐 아니라 전체적인 인상인데 너무 학술지의 느낌이 강했다. 교양지를 염두한 것인데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계간이라고 해도 카페에 앉아 10분, 20분 읽을 수 있는 꼭지가 필요한데 3호는 거의 도서관에서 읽어야 하는 잡지였다. (웃음)

 

이번에 출간된 4호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앞서 말한 픽션기획과 함께 그동안 덜 논의되었던 동시대 미국영화 감독들에 대한 글이 실린다. 이러한 기획은 앞으로도 계속 기획할 것 같다. 주간지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월간, 격월간 잡지라면 뉴스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평적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계간지에는 과거의 일을 다시보는 것과 벌어지고 있는 것들을 조망하는 비평적인 글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지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미국영화계에서, 일본영화계에서, 아시아영화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새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잡지에서도 최근 주목할 작가들에 대한 기획이 꼭 있었으나 폐간과 함께 사라졌고 당장 개봉된 것도 그때의 리뷰만 몇개 남아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안좋은 의미의 작가주의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았어도 논의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그 외에는 최근 주목받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인터뷰와 구니토시와 만다 타마미라는 일본 작가에 대한 인터뷰도 실려있다.

 

「오큘로」가 현대 영화 비평의 지도에서 어떤 자리에 놓인다고 보는가?

 

한국에서만 나오는 잡지이고 번역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에 놓이는 지는 가늠하기 힘들 것 같다. 다만 기획을 봤을 때 1호부터 현재까지는 굉장히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영상잡지라고 해도 관심을 가질 법한 주제는 맞다. 아쉬움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이다. 돈이 뒷받침 된다면 글을 싣고 제작하기 용이할 것 같은데 여건의 문제로 항상 제약은 있어왔다.

 

대부분의 독립잡지가 걱정하는 건 잡지의 수명이라고 생각한다. 「오큘로」의 수명은 어떻게 전망하나?

 

처음에 호수를 기록할 때 ‘01호’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001호’라고 수정했다. 999호까지는 내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웃음) 애초에 발행하다가 안되면 접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어서 스폰서나 지원이 끊어져도 폐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출간하려 했다. 이전 호의 수익금으로 다음 호를 안정적으로 기획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것이다. 일단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계속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만에 하나 폐간된다고 하더라도 웹사이트는 계속 남아있게 할 것이다. 물론 편집진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면 잡지를 갖고 할 수 있는 행사나 강의, 스크리닝, 전시를 위한 지원이나 광고는 받을 생각이 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힘들지 않다.

 

박귤 기자

kyulp1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