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7년 3월 9일

오스카, 트럼프의 어둠 속에 ‘달빛’ 비추다

스크린 밖을 향하는 영화계

베리 젱킨스, “앞으로 4년간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아”

 

지난 26일 오후(현지시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막이 올랐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은 할리우드의 대표 영화 시상식이자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는 시상식이다. 오스카는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가 수여하는 상으로,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 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주어진다. 다만 오스카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동안 백인 중심적인 시상 경향과 타인종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받아 ‘화이트 오스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오스카에서 노미네이트 된 후보나 수상자 중 유색인종인 사람들이 많았고, 작품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인종문제, 여성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의 오스카가 수상소감을 통해 스타들의 생각 혹은 소신을 대중 앞에 내세우는 자리로도 평가받아온 만큼, 제89회 오스카는 반-트럼프의 물결이 넘실댔다. 스타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시상 자리를 빌어 대중에게 전달했다.

 

파란 리본 단 루스네가

파란 리본 단 루스네가

 

‘반(反)트럼프’로 넘실댄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오스카를 흔든 것은 지난 1월 당선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이다. 트럼프는 20일 취임 이후 반이민 정책들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 장벽을 쌓아 이민자를 규제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불법체류 신분 주민 보호를 실행하고 있는 50여개의 ‘이민자 보호도시’에 대한 강력한 연방 제재 조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무슬림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미국 입국을 30일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역시 포함되어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는 이민자에 배타적인 정책 이외에도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 등으로 빈번히 도마에 올랐다. 그는 2004년에 발간한 책 「부자가 되는 법」에서 “‘어프렌티스’에서 초기에 승리한 여성들은 상당 부분 섹스어필에 의존했다”며 어프렌티스에 출연한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을 서슴지 않았고, 한 여성 기자에게 “당신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당신은 기자가 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하며 반발심을 샀다.

 

이번 오스카에 참석한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인종, 종교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스타들이 ‘미국시민자유연맹(이하 “ACLU”)’을 지지하는 뜻을 가진 파란 리본을 달고 레드카펫에 올랐다. 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지미 키멜은 시작부터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며 “작년 오스카 상의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올해 사라졌다”고 말하며 트럼프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이번 오스카에서 작품상과 각색상을 받은 <문라이트>의 감독 배리 젱킨스는 수상소감에서 “당신을 위한 거울이 없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의 뒤에 아카데미와 ACLU가 있다”며 “앞으로 4년간 우리는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며 시상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파르하디 감독은 영화 <세일즈 맨>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글로 전한 수상소감에서 “전 세계를 아군과 적으로 나누는 행동은 전쟁을 정당화할 뿐”이라고 뼈있는 비판을 내놓았다. 파르하디 감독을 포함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5명의 감독은 ‘국수주의와 광신의 풍조에 대한 반대’라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미국의 파시즘적 분위기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은 성명에서 “성별, 인종, 종교, 성정체성으로 구분하며 생겨난 공포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누가 수상하든 이것을 국경의 개념으로 생각하길 거부한다”고 밝혔다. 파르하디 감독은 작품활동으로 이민문제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소재로 다뤘으며 2012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이처럼 오스카는 문화예술계에 몸 담은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밝히는 하나의 길로 자리매김했다. 1972년 제44회 오스카에서는 영화 <클루트>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인 폰다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수상소감을 거부한 사례도 있으며 바로 다음 해인 1973년에는 말론 브랜도가 미국 정부의 원주민 차별에 반대하며 수상을 거부한 바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부문의 시상식에서 스타, 혹은 예술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던 것은 오스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일에는 ‘2017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의 수상소감이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메릴 스트립은 수상소감으로 “할리우드란 여러 지역에서 온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집합체”라며 “할리우드의 이방인과 외국인을 내쫓는다면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무례함은 무례함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며 트럼프의 정책이 결국은 폭력과 무례함을 낳을 뿐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골든 글로브 이후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메릴 스트립은 과대평가된 배우”라며 자신을 비판한 메릴스트립에 대항해 입을 뗐다. 트럼프의 직접적 반응은 스타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이 실제로 정치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

 

‘참여’하는 유명인들, 비판적 의견도 존재

 

당선 이전부터 이어진 트럼프의 배타적 행정 정책 및 인권적 비윤리에 반발하며 스타들은 SNS 및 운동을 통해 개인적 활동을 이어나갔다. 엠마 왓슨과 마돈나 등은 ‘트럼프 반대 여성행진(The Women’s March)’에 동참하며 트럼프가 여성혐오를 멈추고, 여성들의 인권 신장에 앞장설 것을 요구했다. 이 외에도 트럼프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며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등의 스타들이 SNS를 통해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들의 개인적 움직임은 트럼프의 인권에 대한 좌시나 윤리적 문제에 대해 대중들이 주목하고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이러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개인적 움직임은 미국 및 서구 외의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기에는 조금 약했다. 각자의 힘이 곳곳에 흩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오스카는 스타들의 개인적 힘을 모아 전 세계로 퍼트리며 적지 않은 위력을 보여줬다.

 

최근 한국에서 역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인권 및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오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24일, 배우 김혜수는 서울 강남 신세계백화점에서 열린 행사에서 “WE SHOULD ALL BE FEMINIST(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착용했다. 김혜수는 이전에도 “여자 배우는 비중이 있어도 남자 캐릭터를 구하는 기능적인 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발언하면서 성별에 의해 배우의 활동 영역이 달라지는 점을 꼬집었다.

 

<올드보이>와 <아가씨>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진실로부터 배제된 유일한 캐릭터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며 여성인권과 자신의 영화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과거의 스타들, 혹은 예술인들이 대중의 시선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며 갇혀있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진보해가는 방식은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페미니즘 이슈나 인종문제 등 자신과 멀게만 느껴졌던 사회문제들을 스타를 통해 보다 가까이 느끼기도 하며 그를 경유해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도 한다. 이러한 행보는 최근 SNS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빠르고 파급력있게 전달되고 있어 이전의 발언들보다 큰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스타들의 이러한 참여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대중은 “하나의 가치에 편항적인 것은 그 스타의 수명을 줄이는 일”이라며 중립성을 요구한다. 한편,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느 게이는 엠마왓슨의 ‘히포시(heforshe)’ 캠페인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난 40년간 말해왔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박겉핥기 식’ 사회 운동을 비판했다. ‘행동없는 말’뿐이라며 스타들의 사회적 브랜딩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한편, 전 세계 6000명을 대상으로 한 USC 셰뎁 교수의 연구에서 응답자 중 78%는 “연예인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권위 있는 인물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원한다”고 답했다. 문화예술계는 점차 사회로의 움직임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오스카에서는 트럼프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의 파란 리본의 물결을 보여주었고, 직접적으로 흑인 게이 남성을 다룬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영화를 제작하고, 이를 대중 앞에 보여주는 영화제 과정 자체가 실천의 반경 안에 놓여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박귤 기자

kyulp1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