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년 12월 17일

모니터 정치문화의 장밋빛 환상

‘명탐정’ 주갤에 대한 환호가 말해주지 않는 것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녹화된 영상 사진을 들어보이는 더민주 박영선 의원. ⓒ국회방송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녹화된 영상 사진을 들어보이는 더민주 박영선 의원. ⓒ국회방송

 

지난 12월 7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2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한 영상을 공개했다. “시민의 제보”를 통해 전달받았다는 이 영상은 2007년 최태민·최순실과 관련한 의혹을 질문하는 장면이 담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검증 청문회 영상이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간 최순실과의 연관성을 적극 부정하고 최순실을 모른다고 발뺌해왔다. 그러나 영상 속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법률위원장으로 해당 청문회에 동석해 있던 김 전 실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청문회 시작 12시간만에야 김 전 실장은 “이제 와서 최순실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다”며 뒤늦게 말을 바꿨다.

 

김 전 실장의 위증 정황을 제보한 시민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씨’] 주식 갤러리[이하 ‘주갤’]의 한 네티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발단은 얼마 전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로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 연락처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데서부터였다. 주갤러(주식 갤러리 이용자)들은 손혜원·박영선 등 실제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 비서관의 메신저나 문자메시지, SNS를 통해 청문회 질의에 관한 제보를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김 전 실장의 모르쇠를 잡아내고 행방이 묘연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적을 추적하는 등, “주식 빼고 다 잘하는” 주식 갤러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국회의원과 시민 사이 직접 소통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로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정치인들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실시간으로 정치 참여와 견제를 가능케 한 주갤의 사례는 전례없는 새로운 현상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및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웃픈’ 풍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우연하게, 돌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국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선 지 15년이 흘렀다. 그만큼 한국 정치사에서 인터넷의 입지는 결코 작지 않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었던 ‘노사모’의 적극적 유세 행동은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정책을 수행하게 하는 데 주된 지지기반이 됐다. 이후 시민들이 모니터 뒷편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 지향해야 할 새로운 정치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직접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진화’라는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전망은 한없이 장밋빛일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의 캡쳐 화면. ⓒDcinside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의 캡쳐 화면. ⓒDcinside

 

상황과 방식은 다르지만, 국회의원과 네티즌이 직접 접촉했던 사례는 10여년 전 2000년대 초중반에도 같은 디씨 내에서 등장한 바 있었다. 디씨 정치사회 갤러리[이하 ‘정사갤’]에서의 일이다. 정사갤은 2010년대 초중반 국내야구 갤러리 등과 함께 디씨의 우경화 및 ‘패드립’ 등으로 이루어진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정사갤은 열린우리당-민주당 성향의 이용자들이 절대다수였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사건을 겪으며 강한 반(反) 한나라당 정서를 보였다. 특히 보수진영의 대표 저격수로 나섰던 전여옥 의원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팽배했는데, 정사갤 갤러들은 전여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지만, 정작 “전녀오크(당시 전여옥 의원을 비하하는 용어)”를 꺾어주겠다며 나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도리어 전여옥의 논지에 밀려 간담회를 끝냈다고 알려져 있다.

 

“여옥대첩”으로 불리우는 위 사건은 전여옥 의원의 지지층, 반대층 양쪽에게 모두 비웃음을 사며 기존 이용자들의 대거 이탈을 불러왔고, “키보드 워리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정사갤의 극우화 및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성 메이저 언론을 통해 다뤄지지는 않았으나, 노사모만큼이나 온라인에 파급력을 끼쳤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가 생겨나는 데에도 배경적 토대를 제공했다.

 

“여옥대첩”과 “주갤 김기춘 위증 정황 제보사건”, 이 두 사건은 대조적인 스탠스를 보이고 있는 한편 상당히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갤의 방식은 십여 년의 역사가 축적된 디씨 특유의 “키보드 워리어”적 소통 방식에 근간을 둔다. 물론 SNS가,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가, 유튜브가 끼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방식 자체는 일종의 ‘현피’ 문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잠언적 문장처럼, 현재 주갤의 모습은 흡사 십 년 전, “여옥대첩” 이전의 정사갤을 떠올리게 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BS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BS

 

여기에 “주갤 김기춘 위증 정황 제보사건” 이후 주갤 이용자들이 행방이 묘연해졌던 우 전 민정수석을 추적하는 모습은 진지하게 다시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주갤 이용자들은 지난 13일 돌연 19일 청문회(현 22일로 연기 확정)에 출석하기로 밝히기 이전까지 우 전 민정수석이 출두하는 동영상 4백 여개 중 우 전 민정수석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번호나, 그가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소를 자동차 번호를 올리는 등 우 전 민정수석의 추적에 몰두했다. 주갤 이용자들이 우 전 민정수석을 추적하는 방식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XX녀” 등 일반인을 단죄한다는 명목하에 이름, 얼굴, 주소, 직업 등을 추적해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털기”와 거의 일치한다. 한 주갤 이용자는 복무중 군 내부규정을 어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게시하면서 “반응 좋으면 딸도 깐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물론 국가적 규모의 범법 의혹을 가진 인사와 일반인의 사례를 완전하게 등치시키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만이 아니라 자칫 “XX녀 신상털기” 때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흥처럼 소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재고해야 한다. 지난 여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Pokémon GO)》를 패러디해 “우병우 고”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우병우의 소재지를 찾아내면 포상금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현재 검경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대신 국회의원들을 견제·감시하는 시민들의 태도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단적 광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민주 박영선 의원이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 이용자와 나눈 카카오톡 캡쳐 화면.

더민주 박영선 의원이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 이용자와 나눈 카카오톡 캡쳐 화면.

 

그밖에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최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전 총장의 비리를 밝혀 정유라 씨의 부정입학 및 학점특혜의혹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던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주갤이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 대학 네임밸류를 지키기 위해 이기적인 태도로 연일 학교를 점거해 시위를 벌인다는 식으로 조명되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으로 성취를 폄훼당하는 한편, 온라인 속 주갤 이용자들의 정치 참여는 시민의 새로운 정치 참여 방식으로 떠받들여진다. 과연 공평하고 정당한 시선으로 양쪽에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이후, 한국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환상에 나날이 젖어가고 있다. 전에 없던 정치적 풍경을 열어가고 있는 이때,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새로운 방식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환영하고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전에 없이 새롭다는 것은 낙관적인 미래 역시 보장되어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에 보내는 환호에 묻혀 자칫 더 중요한 테제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를 선진 의식으로 채워나가는 것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다.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모니터 속 정치문화이지만, 우리는 늘 세상이 모니터 바깥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신호 기자
mat3ch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