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12월 5일

나는 지난 1년간 무엇을 배웠나

연극원 공통필수 이대로 좋은가

 

지난 3월로 연극원은 개원 23주년을 맞이했고 나는 올해 만으로 스무 살이 되었다. 지난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주목해볼 만한 것 중 하나로 교양과 공통필수 과목의 문제를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통필수 과목이란 우리학교의 6개원이 각자 지정한 각 원의 필수 이수 과목이다. 일반 종합대학에 대입하여 생각해 본다면 각 단과대 필수 지정 과목 정도가 해당될 수 있겠다.

 

모든 교육에는 뚜렷한 목표와 철학이 존재한다.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이입이 아니라, 한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한 인간을 구성하는 과정이기에 철학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학교의 철학은 ‘기존 대한민국 예술교육에 대한 대안’이었다. 더이상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예술교육, 과거 16세기 프랑스의 아카데미를 연상시키는 국가 후원 예술양성제도는 분명 획기적인 시도였고 높게 평가받을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학교의 교육이념 중 가장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도제식 교육이다. 흔히 콘서바토리(Conservatory)라고도 불리는 이 교육체계는 갈수록 소위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말 아래 규합하는 교양 위주의 세계 대학 교육 추세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아니, 어쩌면 세계 유수 대학들을 대변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그 이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높은 강도의 교육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 인재를 길러낸다”는 교육이념은 그 자체로 우리학교의 존재론적 당위를 대변한다.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라는 말처럼, 이곳은 다수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수자(minority)를 위한 곳이다.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국가의 후원 없이는 존속될 수조차 없는 소수의 가치를 붙들어 놓는 곳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학교의 공통필수 과목은 특별하다. 그것은 ‘교양’도 아니며, ‘전공’은 더더욱 아니다. 공필과목은 각 원의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쌓아야 하는 소양이라는 점에서는 교양에 해당되지만, 각 수업이 다루는 범위는 대체로 각 원의 활동과 연관된 매우 좁은 분야다. 일반 4년제 종합대학의 ‘공과대학 전공필수’나 ‘사회대학 전공필수’와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각 원의 성격이 뚜렷하게 반영되는 편이다.

 

그렇다면 연극원의 공통필수는 어떠한가. 현재 2015-2016 교육과정상의 연극원 공통필수 과목은 △극장실습 1 △극장실습 2 △연극하기 △감상과 실제 △박과 사위 △연극사 1 △연극사 2 △전통연희의무대적수용 △한국연극전통의발견으로 총 26학점이다.

 

<연극하기>는 연극원 1학년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연극을 만들어보는 작업이고, <극장실습>은 실제 연극원 내 공연 작업에 학생들이 실습생으로 참가해 한 학기당 지정 시수를 채우는 수업이다. <박과 사위>는 장구와 전통춤을 배우는 수업인데, 대부분의 과는 장구만 배우게 된다.

 

연극원 공통필수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협업으로서의 연극을 강조한다는 것과 전통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이 있다. 문제는 주로 전자에서 발생한다. 협동작업은커녕, 변변찮은 토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자란 한국의 학생들에게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공동 작업은 불편하고, 견뎌내기 힘들다. <극장실습> 같은 경우 실습 신청 시스템이 인터넷 카페를 통한 선착순 지원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한 학기 60시간 이수라는 시수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또한, 갈수록 젊어지는 입학 연령의 문제도 존재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입학생과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오는 입학생 간에는 확실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학교는 전적으로 후자를 위해 설계된 학교다. 교양 교육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알아보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연극의 생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고등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을 기대하고 들어온 학생들은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요구는 학교의 전제와 모순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공통필수는 이 문제의 첫 실마리를 푸는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그 이전까지 연극원이라는 커다란 틀의 밖에 존재했던 이들을 하나의 극단으로 모아 그들이 ‘함께 작업하는 법’을 배우게 만드는 체계가 존재해야만 한다. 중요한 건 학생들이 ‘그전까지 어떤 사람이었느냐’가 아니다. 연극원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입시를 치렀고, 학생들을 뽑았다. 일단 학생들을 뽑았다면 그 이후의 책임은 학교가 지어야 한다. 단순히 학교의 이름을 쫓아 온 학생이건, 연극계에서 활동하다 온 학생이건, 연극을 태어나서 처음 접한 학생이건 모두 모아서 어떻게든 한 편의 연극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 그들이 ‘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연극원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물론 가능만 하다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어쨌거나 학교는 학생의 평생을 담보해주는 곳이 아니고 우리는 학교에서 준비를 마친 뒤 사회로 나가서 ‘스스로의 연극’을 만들어야만 하니까. 그러나 학생이 그 출발점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학교는 역시 도와줄 의무를 진다.

 

그러나 당장 <극장실습>과 같은 교과목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소모적인 단순 노동의 반복이다. 연극원의 일원으로써 학교의 공연과정에 참여해본다? 취지야 좋지만 정작 실습에 나가게 되면 하는 일도 없이 소파에 앉아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시간은 안 가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뭘 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나오게 된다. 학교 공연의 프로세스에 대해 배울 기회는 희박하기만 하다.

 

<박과 사위>는 좋은 평가가 나오는 수업이지만, 어디까지나 ‘힐링 수업’이라는 이유에서다. 연극에서의 한국 전통 수용이라는 취지는 결국 말뿐인 허울이다. 그냥 아침에 나와 장구를 치면서 한국의 전통이 가지는 가치를 깨닫고 그걸 연극에 적용한다? 한국적인 인재를 기른다? 차라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길놀이를 보고 깨닫는 게 더 많지 않을까. <감상과 실제>는 그 악명높은 소문대로 단순 교양 강의와의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야 융복합 시대의 예술가로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를 감상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대체 왜 교양과목이 아니라 연극원의 공통필수여야 하는가?

 

공통필수가 필수 이수과목으로서 그만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강제성에 대한 당위가 충분히 주어져야만 한다. 물론 그 당위에 대한 설득은 학교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결정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받는 교육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다.

 

공통필수 교과목이 ‘빠져도 되는 수업’으로 전락한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수업이다. ‘반드시’ 필요한 수업이라면 당연히 빠졌을 때 큰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인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들이 전과 다르다”, “학교의 이름만 보고 온 사람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한다”는 학교의 푸념을 원하지 않는다. 공통필수에 실망하는 사람 중에 ‘연극을 하다 온’ 혹은 ‘연극을 하기 위해 학교를 온’ 학생들도 있다는 것을 왜 학교가 직시하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다. 우리는 확고한 신념과 당위에 기반을 둔 수업을 원한다. 중요한 것은 ‘수업이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수업에서 힘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 테니까.

 

 

김극실

연극원 재학생

무거운 물건을 들 땐 허리를 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