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을 넘어서, 신자유주의 속 예술대학의 위치는?

지난 5월 3일 정부의 프라임 사업 선정 대학 발표에 따라 각 대학의 학과들은 통폐합의 위기에 직면했다. (제265호 “대학이 기업의 하청업체인가요?” 기사 참조) 정부의 국가보조금 지원 없이는 운영되기 힘든 대학의 특성상 국내 대학들은 교육부의 대학 정책이 변화할 때마다 그에 맞춰 기조를 바꿔야 하는 실정이다. 국립대학으로 재정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학교는 그간 프라임 사업과 같은 한국 대학의 문제에 상당히 떨어져 있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교원의 평가나 복지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대학정책

국내에서 이와 같은 대학 정책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다. 최초의 문민 정권으로 들어선 김영삼 정부가 취임 1년만인 1995년 내세운 5.31 교육개혁은 이후 대한민국 교육의 향방에 대한 청사진이 되었는데, 이것이 당장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육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5.31교육개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 중 하나는 대학설립자유화(대학설립준칙주의) 정책이었다. 한국방송대학교 법학과 임재홍 교수에 따르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골간으로 하는 김영삼정부 5.31교육개혁 정책의 중심적 지위에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 정책은 고등교육영역을 시장으로 보고 자본의 진출입을 자유롭게 한다는 완전경쟁시장이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러한 가정은 고등교육영역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간 정부보조금 차이 △대학교육이라는 상품이 구입하면 쉽게 철회할 수 없다는 점 △교육의 품질이라는 것보다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의 서열이나 명성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로 “완전경쟁시장이론에 따른 시장화정책은 시장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한다.

 

임 교수의 말대로 김영삼 정부가 야심 있게 추진한 대학설립자유화 정책은 실패하였다. 정책 시행 이후 전국 각지에서 난립한 대학들은 학력 중심 사회를 부추기고 한국사회의 기형적인 대학진학률을 만들어냈다. 이는 이후 국가의 산업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드러내게 된다. 송영중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또한 개인의 실력보다도 학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정책 시행 이후 강해졌다고 말하면서 “지금도 전문계 고교 상당수가 대학 진학을 위주로 교과과정을 구성하는 등 직업교육과 산업현장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산업’ 속 국립예술대학의 시작

예술대학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도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대학이 그 실적보다는 이름으로써 평가되고, 마치 하나의 브랜드화(化) 되는 경향은 오히려 1995년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우리학교가 설립된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점이 기존 예술계 입시의 문제점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은 이와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이 시행된 1995년보다 5년 전, 1990년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정책에 따라 문화공보부에서 문화부와 공보부가 떨어져 나오게 된다. 독립된 부서로서 다시 출발한 문화부는 문화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기 위해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 당시 이어령 문화부 초대 장관에 의해 이 계획에 국립예술학교의 설치가 포함된다.

 

당시 교육기관의 설립은 전적으로 교육부의 소관이었다. 이어령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윤형섭에게 국립예술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윤 장관을 설득한 끝에 한예종 설립 안건은 마지막 국무회의에 가까스로 등재될 수 있었다. 당시 장관들은 부처마다 산하에 교육기관을 두려고 했던 터라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이에 이어령 장관은 “만약 어떤 아이가 여기 파라고 하면 석유 나오고, 저기 파라고 하면 가스가 터져나온다면, 에너지 특수학교를 만드십시오”, “만약 기저귀 찬 아이가 모내기에 천부적인 재주가 있어서 성인이 평생 심을 양을 하루 만에 몇 트럭씩 심는다면, 그런 아이들을 위해 농림학교를 만들어야지요”라며 예술인재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위트와 농담을 섞은 재치있는 담화를 통해 그 회의에서 한예종 설치는 통과될 수 있었고 바로 다음 해인 1991년에는 마침내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이 제정된다.

 

국립예술대학의 수난

하지만 힘든 고비를 넘겼음에도 국립예술학교가 운영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를 거치며 우리학교는 운영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명박 정부 아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예산 삭감을 비롯하여 통섭교육 중지 등을 요구한 것이 문제였다.

 

이에 당시 민주당의 최문순 의원은 “일부 보수적인 단체는 한예종을 좌파문화예술인의 온상이라고 공격한다”면서 “좌파라고 매도하는 민예총의 초대회장이 고은 시인이고 그 전 회장이 소설가 황석영 선생인데 이들에게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는 문체부 산하인 학교 특성상 포함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교육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11월 2일 우리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중창포럼에서 김채현(무용원 무용이론과) 교수는 이에 대해 “2000년대 초까지 교수진의 자존감 및 자율성은 지금과 비교하여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면서 “이후 몇 차례 정부가 바뀌었고 한예종 사태가 있고 정부의 대학 정책이 국내 대학 전반을 뒤흔들며 교권 위축 풍토를 가중시켜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용원의 학내 전임 교수진의 주당 교육 책임 강의 시수 대비 초과 시수는 다음과 같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났다.

 

[표 1] 무용원 학내 전임교수진 주당 교육 책임 강의 시수 대비 시수
[표 1] 무용원 학내 전임교수진 주당 교육 책임 강의 시수 대비 시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소개된 대외 활동에 대한 교수진 여론 중에는“2013년 감사원의 학교 감사 이후 공연, 전시, 연구용역 등 대외창작 및 연구 활동에 관해 교수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대외 활동 관련 여러 규정과 확인 장치가 있고, 대외 활동에 대한 감사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처리가 유야무야된 적도 있는 줄로 안다”며 “이에 따라 자칫 생트집 잡힐 경우를 우려하여, 지레 대외 활동을 포기하곤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교수는 교사와 다르다. 이 차이가 결정적으로 발생하는 지점은 교수가 단순한 교육자가 아니라 그 스스로 한 명의 연구자로서 역할 한다는 점이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은 단순히 정제되고 고착화된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다. 현실과 유리된 대학은 결국 고립된 상아탑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은 미적 관조의 대상도, 세속으로부터 벗어난 고고한 학문의 전당도 아니다. 우리학교가 추구해온 예술인재의 양성도 결국 사회로 그 예술가들이 진출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물론 대학을 단순히 산업체와 같이 생각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또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교육과 산업의 차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의 증거일 뿐이다. 임재홍 교수는 이와 관련해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고등교육정책을 집행하면 교육의 공공성이 부정되고 고등교육은 사유재로 인식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상업화정책은 오래지 않아 영리화로 연결된다”며 “비영리 대학(국·사립대 포함)들의 상업화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채현 교수는 해외의 영리 목적 대학(for-profit college)의 예시를 들어 “대학 교육의 본령과 어긋나 보이는 영리 대학이 국내에서도 공공연히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가 국내 대학 전반의 공공성을 훼손시키고 본교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교수의 권익과 복지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이런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학문재생산체계의 붕괴, 대학의 붕괴라는 비극적 상황이 예측된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 그 너머를 바라보며

지난 중창포럼의 말미에서 김미희(연극원 연극학과) 교수는 “이미 학문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예술장르간의 구분이 사라져가며 융복합적 사고와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현실”이라며 “소프트파워와 하이테크가 산업과 예술의 생산방식과 인지방식까지 급격히 바꿔놓는 이 시대에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의 목표 또한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대학의 틀과 구조를 바꿀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여기에 급격한 인구감소도 더해져 대학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 2] 입학 자원 감소 예상추이 ⓒ한국교육개발원
[표 2] 입학 자원 감소 예상추이 ⓒ한국교육개발원

 

김 교수의 말대로 대학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향후 수년간 한국 사회는 본격적인 저성장·저출산 시대로 돌입함과 동시에 대학의 정원보다 학령인구의 숫자가 더 적어지게 된다. ([표 2] 참조) 많은 대학이 사라질 것이고, 수요자가 줄어듦과 동시에 전국 각지에 난립했던 ‘대학 사업’들은 졸지에 부도를 맞이할 것이다.

 

통계자료가 방증하듯, 소위 취업률 따위를 내세운 사업체로서의 대학이 몰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한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을 결정하면서 이어령 전 장관이 한국에 세우고자 했던 ‘문화의 네 기둥’ 중 하나로 출발했던 우리 학교는 당장 눈앞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넘어서 다시금 앞으로의 ‘10개년 계획’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학교는 1990년대 이후 학벌 사회와 함께 거품처럼 일어났던 수많은 대학들이 몰락한 이후에도 남아서 예술교육을 계속해 나아가야만 한다.

 

17세기 프랑스가 아카데미의 설립 이후 이탈리아를 넘어서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듯 우리학교도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에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래로 나아가는 태도다. 학교의 미래를 위해서 당장의 정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학교 본부 측의 확고한 입장 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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