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6년 11월 30일

엘렌 페이지는 꾸러기 부치다?

많은 레즈비언이 엘렌 페이지는 꾸러기 부치[이하 “꾸부”]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한때 트위터에서는 ‘담다디 부치’(담다디를 부르던 시절의 이상은 같은 모습을 한 부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영화 <캐롤>의 상영 당시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캐롤(케이트 블란챗)을 ‘여왕팸’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가씨>의 숙희(김태리)에게서 ‘부치’를 읽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 트위터의 모 사용자가 개설한 <’샤먼 부치-대통령 팸’ vs ‘샤먼 팸-대통령 부치’> 투표에서는 약 7:3의 비율로 전자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팸/부치라는 용어를 처음 듣는 사람은 이제 없겠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짧은 설명을 덧붙이겠다. 한국 성적 소수자 문화인권센터(KSCRC)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성적 소수자 사전>에 의하면 ‘팸(femme)’은 “레즈비언 커플 중 여성스러운 레즈비언”을 지칭하고, ‘부치(butch)’는 “레즈비언 커플 중 남성적인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말이며 두 용어는 서로 대당관계를 갖는다. 10년도 더 전에 개제된 것이어서 그런지 용어의 대상을 레즈비언으로 한정하는 등 조금 투박하고 올드하다는 인상이 있지만, 설명하는 이와 설명을 듣는 이 모두에게 이보다 더 간편하고 편리한 정의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앨랜 페이지 ⓒ Malibu Magazine

앨랜 페이지 ⓒ Malibu Magazine

 

 

한편에는 위에서 예로 든 사례와 같이 부치와 팸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쓰는 여성 퀴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레즈비언이 주축이 되는 여성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팸과 부치라는 용어를 쓰는 데 대한 불편함과 반감을 표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여성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부치와 팸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퀴어 젠더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특정한 정체성으로 자신과 타인을 범주화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부치/팸 개념에 대해 이보다 더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그러한 구분이 이성애 성 역할의 답습에서 기원했다는 지적이다. 이성애 안에서 규범적으로 작동하는 젠더 역할, 즉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그대로 따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닌데, 같은 내용의 지적이 70년대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70년대 페미니즘 진영의 급진적 분파인 레즈비언-페미니즘은 부치/팸이 이성애를 모방하는 복제품에 불과하며 성적 평등주의에 위배되는 퇴행적 실천이라고 주장했다.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이 성적 평등주의를 위해 상정했던 것은 양성성을 바탕으로 한 여성 간의 레즈비언적 관계였다. 팸/부치 관계에 있어 그들에게 특별히 더 문제시되었던 것은 부치라는 정체성이었다. 부치는 남성성 과잉과 남성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남성 동일시의 결과였고, 부치/팸 관계는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와 동일한 것이었으므로 전혀 ‘여성주의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부치의 남성성은 일종의 병으로 치부되었고, 팸의 존재는 가부장적 이성애 질서 속의 헤테로 여성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여겨지면서 삭제되거나 흐릿해졌다. 같은 시기 이런 주장들에 대해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반대를 표명하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물론 있었으나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80년대부터 시작된 레즈비언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부치/팸 비판’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부치/팸은 70년대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억압적인 이성애 젠더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치와 팸은 젠더가 본질적, 자연적,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이성애적 젠더 구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전복적인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70년대 급진 페미니즘 역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테제로 대표되는 지적 흐름 속에서 젠더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치/팸 논쟁에서는 남성성을 생물학적 남성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한정하고 부치의 존재를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과의 동일시 정도로 환원하여 젠더가 구성되는 과정을 생각하는 데 있어 생물학적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80년대 레즈비언 하위문화 연구의 경향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는 부치/팸 관계의 전복성을 긍정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남성에게 한정되지 않은 남성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학문 장에서의 오래된 논쟁에도 불구하고, 부치/팸 구분이나 용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선 페미니즘/퀴어 연구들에 의해 부치와 팸이라는 레즈비언 젠더, 그리고 그 둘의 관계가 ‘이성애를 모방한다는 혐의’에서 풀려나면서 더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여성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부치/팸 구분은 강제적인 규범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부치와 팸으로 범주화되지 않는, 혹은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범주화하지 않는 많은 퀴어 여성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부치와 팸이 정태적인 정체성의 한 범주로서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점점 자기 표현의 장치로도 쓰이면서 다양한 분화가 내부에서 이뤄졌다. 비투비(두 명의 부치로 이뤄진 커플), 팸투팸(두 명의 팸으로 이뤄진 커플)부터 시작해서 겉부속팸(겉은 부치인데 속은 팸인 사람)이나 앞서 언급한 ‘담다디 부치’라는 용어까지 모두 그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이제 부치/팸 구분과 그 둘의 관계는 이성애중심적이며 억압적인 젠더 관계에 균열을 낼 가능성뿐만 아니라, 남성성을 굳이 남성성이라고 써야만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새로운 젠더의 장을 사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함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