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6년 11월 30일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성평등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태도

 

양성평등상담실을 성평등상담실로 개칭해야한다

이름은 중요하다. 우리는 사물을 직접 마주하기 전에 그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모양새나 쓰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이름으로 서로를 식별한다.

 

우리학교 홈페이지의 여성활동연구소 소개글에 따르면, 여성활동연구소의 ‘여성’은 “사회의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여성과 남성간의 임금 격차, ‘유리 천장’과 같은 사회적 성차별 문제에서부터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까지, 이러한 측면에서 여성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다. 그런데 여기서 이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어떻게 ‘여성’이 다른 사회적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통칭할 수 있는 이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맥락에서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단서를 제시할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가 살기 좋은 세상일 때 비로소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간의 임금 격차가 사라질 때, 유리 천장이 박살날 때,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지 않을 때 세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또한 소수자는 다른 소수자들과 필연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다. 모든 차별받는 자들은 억압의 굴레를 함께 벗어던져야 한다. 한 사람이 받는 억압의 굴레를 다른 억압받는 자에게 전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은 ‘다른 사회적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통칭할 수 있는 이름’이 된다.

 

한편 여성활동연구소 산하에는 양성평등상담실이라는 부설기구가 존재한다. 양성평등상담실은 △성희롱, 성폭력, 성차별, 성지식 등에 대해 상담 서비스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 성희롱 · 성폭력예방및처리에관한규정」에 의거, 상담소에 접수된 사건의 조사 및 처리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지원 △평등한 성문화를 위한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실시 △성희롱 ·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와 자료 발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양성평등상담실은 △성의식 향상을 위한 소집단 프로그램 △신입생을 위한 성폭력 예방 교육 실시 △학생지원센터 내 양성평등상담실 운영 등의 사업도 진행한다.

 

 

양성평등이란 단어는 남녀평등이란 단어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어보이고자 하는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어떤 성별이 먼저 언급되는지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굳이 ‘양성(兩性)’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양성평등’ 이라는 단어 역시도 잘못되었다. 성별이분법에 입각한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배제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 절반은 남성이고 절반은 여성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 외의 젠더 역시 존재한다. 젠더 정체성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젠더 정체성이 유동적인 사람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젠더가 공존하는 젠더를 가진 사람도 있다. 이외에도 무수한 젠더 정체성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차라라이>(2015)를 보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사람들은 부기스 문화를 따르는데, 이 문화는 젠더를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시스젠더 여성, 시스젠더 남성, 비수, 차라라이, 차라바이다. 차라라이와 차라바이는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케이스다. 차라라이와 차라바이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젠더 정체성을 토대로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차별받지 않는다. 성별이분법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남성에게는 ‘남성다움’을, 여성에게는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남성과 여성의 젠더 이분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부기스 문화는 젠더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는 차라라이와 차라바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젠더 역할은 이처럼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따라서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국가, 사회, 개인이 특정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차별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양성평등이란 단어는 젠더이분법 하에서 다양한 젠더정체성을 차별하는 용어다. 양성평등상담실의 ‘양성’은 사회의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지우는 이름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소수자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 단어가 내포한 차별을 인지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주는 차별적 의미에 상처받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학교에서 성 인지를 비롯해 성폭력, 성희롱 사건을 다루는 기구인 ‘양성평등상담실’이 그 이름 자체로 젠더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되는 일이기도 하다. 조속히 우리학교 양성평등상담실을 성평등상담실로 개칭해야 한다.

 

성평등 이슈에 있어서 학교측의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을 바란다

우리학교에서는 수년 동안 수업이나 학생들의 공연, 작품 등에 있어서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올해 2016년 1학기에는 예술교양학부 ‘프로이트심리학’ 강사가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발언을 했다는 제보가 페이스북 한국예술종합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와 누리와 대자보를 통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잇달았고, 학교는 결국 해당 강사를 해촉했다. 또한 2학기에는 여성혐오 내러티브를 담은 페리에x한예종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학교나 페리에 관계자 그 누구도 필터링하지 않은 채 게시한 문제가 있었다.

 

최근 학내 여성혐오 문제를 크게 환기시킨 것은 트위터 ‘한예종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들이었다. 학과별로, 원별로 생긴 이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들은 학교 내의 여성혐오 발언이나 여성혐오적인 상황을 아카이브하고 여성혐오를 가시화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계정 운영자 혹은 피해 호소인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거나 계정 운영자를 색출해내겠다는 위협 때문에 아카이빙 계정을 폐쇄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 때문에 현재 새로 만든 연극원이나 영상원 영상이론과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은 공동 운영자의 실명을 공개하며 계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아카이빙 계정 운영자들은 모든 부담을 개인적으로 짊어져야만 했다. 현재 학교는 ‘바른 성(性)문화 정착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통해 아카이빙 계정에 올라온 사례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논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학교 측에서 조금 더 빨리 이러한 입장을 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 역시 존재한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 선출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미국의 몇몇 대학교는 전체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학교에서 트럼프의 승리로 인해 불안감이나 공포를 느끼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을 지원할 것이며, 학교는 평등의 가치를 믿고 마이너리티의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미국 일부 대학의 이와 같은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처를 보고, 최근 학내 여성혐오 이슈에 대처하는 우리학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학내 여성혐오 문제 대응에 있어서는 여성활동연구소가 발벗고 나서고 있는데, 여성활동연구소 뿐만 아니라 학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트위터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이라는 방식으로 ‘폭발’한 학내 여성혐오 문제는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측은 성폭력, 성희롱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어떤 제도적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학생과 교직원, 교수진 역시 여성혐오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젠더 감수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학교 측이 제시한 대안인 ‘바른 성(性)문화 정착을 위한 태스크포스’가 임시적인 조치로 끝나지 않도록 학교측은 양성평등상담실에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양성평등상담실이 상설기구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 인원을 확충하고 예산을 증대해야 하며 독립성 역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물론 행정적 절차로 인해 늦어졌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무엇 하나라도 차근차근 해결해야 할 때가 아닌지 말하고 싶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수라

영상원에 다니고 있는 바이섹슈얼 페미니스트입니다.